화유 대처법
생리가 늦어진다.
자궁 내부는 깨끗해서 아무 이상이 없댔는데.
과도한 스트레스겠지, 고개를 갸우뚱하던 지난 몇 개월은 교수님의 아리송한 질문에 가장 그럴듯한 답변을 제시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조기 폐경일까, 자궁 내막증인가, 호르몬에 문제가 생긴 걸까. 아하 냉증! 내 몸이 차서 인가보다. 정말로 냉증이 답이구나!
그렇다면 엄마 말마따나 찜질팩으로 아랫배를 뜨겁게 지지면 생리가 팡파레 울리듯 터지고 말겠지. 그러고 보니 20대 어느 때에도 따땃해진 자궁은 기다렸다는 듯이 꾸물꾸물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이틀간의 만족스러운 찜질에도 나의 자궁은 응답이 없었다. 심지어 고요하기까지 하다니. 요리조리 아무리 둘러보아도 생리를 시작할 양반이 못되더라. 울고 싶어라.
말도 안 되지만 임신테스트기를 구매했다. 신혼 초 테스트기의 단호박을 먹고는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했는데. 당연히 이번에도 단호박이겠지만, 일단 뭐라도 해봐야겠는 마음이 들었다. 기어코 문제를 풀고야 말겠다는 불타는 나의 의지에 박수를 보내주시라.
새벽이라 잠이 덜 깼나. 어렴풋이 선 하나가 더 보이는 듯했다. 여보 눈에도 보이지? 뭐 있지? 우리 둘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테스트기를 살펴봤다.
하루 이틀이 지나갈수록 테스트기의 두 줄은 점차 선명해져 갔다. 혹시 테스트기의 오류는 아닌가 수없이 검색하고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나는 임신이란 신세계에 첫 발은 내딛게 되었다. 정보의 바다라는 말이 바로 이 말이구나. 임신에 대한 온갖 종류의 정보 틈바구니 속에서 나는 어푸어푸 허우적 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겨우 찾아낸 조개껍데기들을 모아 맞추어보니 나는 수정 성공하여 착상 중인, 곧 임신 극 초기에 해당하는 시즌이었다.
난자와 정자가 만났다고? 수정을 정말 했다고? 그게 지금 내 안에 자궁에서 착상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온몸이 희한했다. 생리 전 증후군과는 확연히 다른 증상들이 나를 기이하게 만들었다. 한편으로는 설레고 행복했다. 진짜 진짜 진짜 아이가 우리 부부에게도 찾아오는구나. 이것이 나의 현실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점점 커져만 가는 가능성을 품에 안고 남편의 손을 잡고 잠을 청할 때에는 그저 감동의 도가니탕이었다.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서 따뜻하게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감사한데, 아이를 보내주시는 것은 내게 정말 크나 큰 은혜와도 같았다. 평생 꿈에 그리던 나의 소망. 만질 수없어 마음으로 그리기만 해왔던 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그림.
이튿날 해본 테스트기의 선에 이번엔 분홍빛이 돌았다. 이전까지만 해도 흐릿한 회색줄이었는데 이건 정말 확실했다. 5분 내에 분명하게 나온 진분홍색 선을 보고 있자니 더욱 어안이 벙벙했다. 꺅! 두 줄이야! 하고 팔짝팔짝 뛰며 소리를 지를만한 성격이지만 혹시나 아니면 어떡해, 일단 잠자코 침대에 누워 남편을 기다린다. 발그레 상기된 마음을 알아줄 그가 오지 않았으니 조용히 있을 수밖에. 눈은 말똥말똥 눈동자는 동그르르 괜스레 안방 주위를 살피며. 그러다 문득.
하나님도 나를 이렇게 기다리셨을까?
이토록 간절하게 아이를 원하는 나를 보게 되니 나를 품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잠깐 보인 두 줄만으로도 감격에 벅차올라 어쩔 줄을 모르는데, 나를 지으시고 낳아주신 하나님의 마음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겠지.
그동안 상상해보지 못한 하나님의 마음이 내 안에 가득 들어차기 시작했다. 뭉게구름 피어나듯 몽글몽글.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고 느낄 때면 내 마음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구름이 떠오른다. 감사, 평안, 감격, 은혜를 넘치도록 담아둔 구름.
하나님의 간절한 기다림의 대상이 바로 나라는 게 참 감사했다. 하나님께 내가 그리 소중한 존재라니. 하찮고 귀찮게만 여겨지던 나의 존재가 하나님 앞에서는 그저 귀하고 사랑스러운 딸이라는 게 마냥 피부로 와닿더라.
더군다나 임신의 과정을 직접 느껴보니 생명 하나가 태어나기까지 무수히 많은 시도들과 시련이 있다는 걸가슴으로 깨달았다. 태어난 나는 우연도 실패도 아닌 기적과 충분함에 가까운 것이다. 왜 태어났나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계획하심 가운데 생겨났으니 이 땅에 있는거다. 눈이 작네 마네가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내 모습 이대로 나는 온전하다. 하나님이 실수로 단추 구멍 같은 눈을 주신 게 아니라는 거다. 할렐루야.
때마침 귓가에 들려오는 익숙한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렸다.
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 주께 왔사오니
복 주옵소서
이전에 이 찬양을 부를 때에는 언제나 애절했다.
왔사오니 라는 구절이 바로 그 절정이다.
하나님 제가 이렇게 갑니다!
저 왔어요. 온갖 풍파를 다 맞고 왔다구요.
나를 좀 받아주세요, 저 이렇게 열심히잖아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언제나 행위 중심이었기에 그랬나 보다. 내가 회개하면, 내가 울고불면, 내가 조금 더 잘하면 하나님 나를 받아주실 거야.
하나님은 언제나 나를 기다리신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못했다. 기쁘고 기쁘도다 라는 말은 결국 하나님의 고백이기도 한 것을.
하나님께로 가면 나는 항상 기쁘다.
내가 하나님께로 가면 하나님은 항상 더 기쁘다.
그것이 내게는 복이다.
신혼 초였던가, 아이가 생긴다면 태명은 복복이로 정해두었다. 하나님이 주실 복 중의 복이라는 뜻이다. 신혼 1년차에 접어드는 지금, 남편과 나는 아이의 인생 테마송을 주 음성 외에는으로 정했다. 여보, 찬양 불러줘. 또 불러줘! 하면 우리 남편은 인심 후한 무한리필집 사장님처럼 입가에 미소를 가득 담아 반복해준다.
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 주께 왔사오니
복복이 주옵소서!
결국 수정되었던 난자와 정자는 착상하지 못하고 뒤늦은 생리로 휩쓸려갔지만. 이 화학적 유산마저 내겐 하나님의 마음을 공감하게 되는 귀중한 경험이 되었다.
화유를 대처하는 나만의 자세.
기회를 얻었음에 하나님을 찬양하기.
기대가 무너짐에도 하나님으로 감사하기.
내 존재의 소중함을 알고 남의 존재 또한 귀하게 여겨주기.
아기를 낳는 것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 이번 일로 구체적인 기도제목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