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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Dec 25. 2023

하나님, 제가 왜 엄마가 되어야 하나요?

기다림 끝에 생각난 질문

남편을 만나기 전에도 그랬다.


기껏해야 이십 대 후반.

앞길 창창한 싱그럽고 아름답게 영글어진 청춘의 한복판에 서 있는 나이. 젊음과 패기로 무장한 아쉬울 것 없는 그 나이에 나는 결혼이라는 오아시스를 찾아 사막길을 돌고 도는 거지꼴을 하고 살았다.


꼴깍꼴깍 마른침도 말라가는 타는듯한 갈증이 일어났다. 결혼을 해야만 시원하게 해갈될 것이다.

이 사람이다! 아니 저 사람인가?

다른 무언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가 중요했다.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면 썩은 물도 상한 음식도 마다하지 않게 된다. 갈증을 채우고 허기를 달랠 수만 있다면!


수많은 노력에도 엄마의 바람처럼, 나의 계획처럼,

동화 속 백마 탄 왕자님은 도통 나타날 기미가 없었다.


결혼을 위해서는 타인이 필요하다는 것이 나를 미치게했다. 스스로 노력해서 되는 거라면 그래, 까짓것 밤을 새워서라도 해보자고! 하겠지만. 결혼은 한 몸이 더 나은 한 몸이 되는 게 아니라 두 몸이 한 몸이 되는 거니까.


온몸의 세포와 신경이 오로지 결혼에 가 있던 그때.


하나님이 나를 독신으로 예정하신 것은 아닌가 두려움이 휘몰아쳤다가, 하나님은 내가 홀로 완벽하게 서서 살아가기를 요구하실지 모른다는 어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 이유로 결혼을 해야만 하는가, 궁금해졌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독신과 결혼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알고 싶어 졌다.


나는 왜 결혼에 미쳐있는가. 세상은 왜 나를 하자 있는 물건으로 취급하는 걸까. 나는 왜 그러한 주변의 시선과 염려를 곧이곧대로 감내하고 있는가.


과연 하나님의 시선에도

나는 어딘가 부족한 불량품일까?


길고 긴 터널을 하나님이 함께 걸어주셨다.

빛 하나 들지 않는 그 어두컴컴한 곳을 터벅터벅 한 걸음씩.  어디로 들어와서 어떻게 나가는지 한 치 앞도 모르겠는 곳에서 오늘은 이만큼 내일은 저만큼을 그저 차분히 살아가도록.


그 터널 안에서 하나님은 내게 성령님의 존재를 크게 알려주셨고, 이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약속을, 그러니 홀로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을. 결혼하지 못해도 여전히 너는 나의 특별한 사랑이라는 것을. 이미 내가 네게 가장 좋은 사랑을 허락한 남편이라는 것을. 성경 말씀을 통해 일러주셨다.


칡흑같이 어두운 내 마음을

구석구석 약속의 말씀으로 새기시고

환한 빛으로 비추어주신 하나님.


그렇게 큰 은혜 가운데 그 터널을 나온 줄 알았다.

다시는 이런 어두운 터널은 지나지 않을 것처럼,

남편과 행복하게 살아가며 곧잘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빠에게 받지 못한 인정과 사랑을 넘치게 받으며. 남들의 반응과 관심은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며. 내 인생의 새로운 빛을 비추이며 나름 잘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인생의 숙제는 다시 나를 압박해 온다.

남편은 내일모레 39, 나는 33.


이제 아기를 가져야 한단다.


일은 다음에 다시 하면 되고, 이제는 아기를 가져야 할 때라고 엄마는 주말마다 이야기했다. 결혼해야 한다고백번 넘게 소리치던 엄마는 이제 다음 단계로 전념하실 모양이다.


열심히 일했다며 스스로 뿌듯해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내게 그랬다. 그만큼 당신의 난소는 더 나이 들었을 거라고. 아이를 가지려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난자를 얼려두라고.


맞아!

나도 남편을 닮은 귀여운 아들과 딸이 하나씩은 있으면 좋겠어! 난자를 냉동하는 일은 없겠지만 그렇다면 내년에 더 일하는 건 어렵겠지?


하지만 결혼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임신이더라.

두 사람의 각고의 노력을 합쳐도 안될 수 있는 거니까.

퇴사하고 몸 관리와 임신에 더 힘을 써볼 예정이지만, 난자와 정자가 수정하기까지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결혼을 바랄 때와는 다르게, 아니 어쩌면 결혼까지의 과정이 힘들었기에 그럴까. 왜 임신이 되지 않을까 골머리 앓으며 마음이 상할 것이 두렵다.이미 나는 남편과 충분히 살만하고 행복한데.


쉽게 되지 않을 임신이라면, 거저 찾아와 줄 복복이들이 아니라면. 나의 마음을 썩이면서까지 임신을 위해 꼭 울어야만 하는 것일까.


아빠는 내가 한나의 기도를 해야만 한다고 하신다.

당연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데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있는 거라며.


그러니까,

내가 왜 그래야만 하는지를 모르겠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발버둥 치라는 그 말이 동의가 되지 않는 거다.


나는 진정 아기를 간절히 원하는가?

만약 원한다면, 아기는 정말 원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움직여야 하는 그 어두운 터널에 입장하는 게 두려워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는 것일까?


왜 아이를 낳아야 하는 거지.

하나님이 지어두신 섭리니 그저 주옵소서 통곡하며 울며 기도해야 하는 것인가?


기다리다 지친 나는 결국 본질에 다가간다.

하나님이 만들어두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그 말씀의 진짜 의미를.


하나님,
제가 왜 엄마가 되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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