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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Apr 24. 2024

나는 호빵맨이 될 수 없다!

사랑, 나를 내어주는 일

 크리스천으로서 살며 가장 큰 소망은 주를 사랑하는 것이고 마치 양면의 동전을 뒤집듯, 내 몸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또 다른 소망이다. 자기 중심적인 내게 가장 어려운 일, 나를 내어주는 일.


 

만화 주인공인 호빵맨은 자신을 참 잘 내어주는 아이다. 힘들고 지친 친구들에게 자신의 호빵을 한 움큼 크게도 떼어주는데 계속 나누어 주다 보면 다 소진되어 맥아리 없이 쓰러진다. 나를 내어준다는 것은 그만큼 나를 소비해야만 하는 것이다. 꼭 시소처럼, 세상 모든 만사는 대가가 따르는 듯하다. 결코 공짜는 없고, 그냥 되는 법은 없다.


 최근에 15개월 여자 아이를 기르고 있는 친구네 집에 다녀왔다. SNS에 올라오던 사진과 영상으로만 만나던 마냥 작고 사랑스러운 아이. 아직은 낯을 가릴 때라 나만 보면 얼굴을 찡그린다. 아가야, 나도 사실 낯을 가린단다. 결국 우린 친해지지 못했다. 그래, 나는 그리운 내 친구를 보러 왔는걸.


 한 아이를 낳아 기르더니 제법 어른이 되어 있던 친구. 생명을 낳고 기르는 것은 자신이 홀로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자 자신의 존재에 대해 겸허해진다고 했다. 자식일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만큼 되는 게 없더라는. 그래도 사랑하는 아이를 보며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살게 된다고. 어느새 자신은 놓고 오로지 아이만 신경 쓰는 통에 살은 불어나 있었고 손에는 피부병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런 엄마 곁에서 세상에 적응하느라 생긴 온갖 짜증과 불안을 모조리 표출해 내며 한 뼘 씩 자라나는 게 아이로구나. 엄마인 친구의 마음을 다 헤아리기 어려워 육아의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드냐고 물었다. 다름 아닌 아이의 성장 과정에 따른 행동에 꼭 알맞은 대처법을 찾아내는 게 참 어렵단다. 내가 보기에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하루종일 끊임없이 아이의 요구에 즉각 반응해주어야 하는 부분이 가장 어려울 것 같은데. 이미 이것은 엄마로서 디폴트값인가 보다. 그건 내 새끼라 당연히 하게 되고 아이의 불안 가득한 보챔 또한 그래, 그러려니 할 수 있다는 것이.


유부녀스러운 하루를 친구들과 보낸 후 행복하게 돌아왔지만 많아진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도 언젠가는 엄마가 되고 싶고, 엄마가 된다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좋은 엄마가 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고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막상 실제 육아의 현장을 하루종일 보고 나니 고개가 좌우로 흔들어졌다.


나는 못하겠다.


퇴사하고 가장 행복한 점은 바로 내가 마음대로 내 시간을, 나의 가정을 꾸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기를 낳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오늘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아이가 될 테니까. 내가 먹고 자고 누리던 모든 시간은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고, 내가 가진 힘과 체력 또한 아이를 향한 관심과 사랑으로 모조리 사용해야 한다. 나는 가뜩이나 멀티가 되지 않는 사람이라 한 번 몰입하면 단번에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내 마음에는 늘 순서가 있기 마련이며 방법들이 있다. 이렇게 저렇게, 남들의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는 모든 세밀한 프로세스가! 이것이 바로 내가 세상을 가장 효율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이다. 주변의 모든 사물과 사람을 내 나름의 예측 가능한 틀 안에 두는 일.


그런데 아이가 생긴다면?


과연 내가 하던 설거지를 내동댕이치고 아이에게 달려갈 수 있을까? 아니 잠깐만 이것만 닦으면 되는데! 정말 이 한 몸 일으켜 놀고 또 놀아줄 수 있을까? 아니 오분만 더 누워있으면 좋겠는데! 똑같은 반응을 무한반복으로 지치지 않고 해 줄 수 있을까? 아니 이 정도면 그만할 때가 되었는데!


지하철에서 주고받은 친구와의 대화가 그나마 위안이었다.


너 같이 일만 죽어라 했다면 자기도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을 거라며. 자기는 적당히 일하며 남는 시간이 심심해졌다고. 아이 엄마인 친구는 남편과 둘만 지낸 5년의 시간으로 충분했고 그 후부터는 심심하다고 하더라.


그 말들이 맞네. 나는 아직 내 생활을 누린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았고. 아직 남편과는 알콩달콩 배꼽 빠지도록 웃기만 해도 시간이 모자란걸! 그러니 나는 아이가 생각날 일이 없네!


시어머님과 친정 엄마에게는 절대 비밀로 하겠지만 “아직 저는 생각이 없어요.” 가 결론이었다. 물론 “아직”일 뿐이기에 마음이 조급하기는 하다. 얼른 낳아야 아이를 위한 건강하고 젊은 엄마 아빠가 될 테니까. 난소와 난자는 나를 영영 기다려주지 않는다기에. 그래서 여전히 마음 편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결론은 나는 아이를 언젠가 갖고 싶지만,


첫째, 아직 아이를 위해 몰입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둘째, 과연 아이를 위해 나 자신을 내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셋째, 아이를 갖고 싶다는 건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넷째, 임신을 위한 건강한 몸과 정신이 아닌 듯하다.


잠잠히 기도했다. 하나님 저에게 이런 마음이 듭니다.

굳이 왜 아이를 낳아야 하나요. 제 것을 왜 나누어 살아야 하나요. 저를 왜 포기해야 하나요. 저는 절대 그렇게 못 사는 사람인데요.


억지로 하지 못하는 걸 깨달은 후부터는 힘이 빠졌다.일단 모든 마음을 아뢰고 맡겨버린다. 저 사람 절대 안 바뀌듯, 나도 절대 안 바뀐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설득하시고 바뀌게 하시니까.


그러던 어느 날 눈에 들어온 책이 팀 켈러 목사님의 태어남에 관하여,라는 책이었다.

 

신자의 두 번 태어남에 대한 것을 강조하며 한 번은 세상으로 나오는 태어남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듭남에 대한 해석이 담겨있었다. 얇고 짧아 가볍게 읽어보려고 집어든 책인데 하나님이 나의 고민에 대한 답을 주시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마리아와 요셉이 부모로서 고생하지 않고는 예수님이 세상에 복을 주실 수 없었듯이, 우리도 마음의 칼을 받아들이지 않고는 자녀의 새 생명으로 세상을 복되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자기 연민과 염려에 빠질 게 아니라 각고의 기도로 그 칼을 감당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에게 구원의 복을 베푸시려고 예수님이 실제로 못과 가시에 찔리시며 십자가에 달리시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대가를 치르셨음도 알아야 한다. 이것이 기독교가 부모들에게 주는 위대한 자원이다. 바로 그리스도의 모본인데, 그분이 보여 주셨듯이 생명을 양육하려면 늘 희생이 뒤따른다. 문명이 지속되고 사랑이 더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새 생명에 따라오는 희생도 기꺼이 환영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사람들은 위한 것이다.  “태어남에 관하여, 팀 켈러의 인생 베이직”

“사랑이 더하기를 바라는 사람은”이라는 부분에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듯했다.  


아링아, 너 사랑하면서 살고 싶다고 했지?


네, 하나님.


주님께 드린 기도는 항상 나의 본성과 반대되는 일이었다. 하나님 닮아 나를 내어주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나보다는 남을 챙기며 사랑하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주님 허락하신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예수님을 처음 인격적으로 만났을 때는 참 쉬웠다. 절로 되었다. 그런 사랑도 있다. 예수님께 넘치게 사랑받는 것이 너무나도 기뻐서 저절로 되는 사랑. 그 사랑에 눈 뜨고 발 담그고 살게 되는 것이 여전한 기도 제목이지만 하나님은 내게 현장을 허락하신다. 삶의 모든 순간을 통해 그분의 사랑을 연습하고 희생을 경험하게 하시는. 육아 또한 그 현장이라는 것이다.


부부의 연합으로 하나님께서 열매처럼 내려주시는 자식, 주님 주시는 기업. 사랑으로 받았으니 사랑으로 키워내야 한다.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사랑과 희생을 부모의 위대한 자원으로 삼아.


그 사랑은 나보다 아이를 먼저 두는 일이 맞다.

나의 설거지 계획도, 쉴 계획도, 일련의 프로세스조차 내려놓게 하는 일. 일이 아닌 사랑으로 부름 받은 나의 삶이기에. 그렇기에 새 생명에 따라오는 희생을 환영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마음의 준비가 된다고 아이가 당장 생기는 것은 아니겠지. 적어도 나는 못하겠다는 반항심은 잠잠해졌으니 하나님 역시 이번에도 일하여 주심에 감사하다.


나는 호빵맨이 될 수 없다.

진짜 호빵맨은 예수님이시니까.

호빵맨이 될 수 없을지라도 예수님의 사랑을 얻어먹고 살아난 사람일 수는 있겠다.


언젠가 만나게 될 나의 자식 또한 그리 자라나길.

예수님의 사랑을 먹고, 나의 희생을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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