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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May 30. 2024

좋은 집? 주의 집! (1)

씨름은 기도로 하세요

 최근 꾸준히 기도해 왔던 사역지에 대한 응답을 받았다.


우리 부부, 아니 어쩌면 나만의 생각이었을지 모르겠다. 내 눈에 보기에는 완벽한 교회였다. 성실하고 정직한 담임 목사님, 성숙한 성도님들의 영적 토양, 새롭게 맡게 될 청년부 사역, 그리고 살기 좋은 생활권과 32평 아파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몇 개월동안 기도하게 하셨고 결국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대로 움직이겠다는 마음을 품게 하셨다. 지난 퇴사 방법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앞길을 주님께 맡기겠다 기도하니 하나님께서는 이곳에 머물라는 답을 주신 것이다.

좋아요, 하나님. 하나님의 뜻이라면 따르겠습니다.


머리로는 정말 그랬다. 나의 결정과 다른 하나님의 응답에 감사히도 원망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괜찮냐고 물어보는 시어머님께 여유롭게 어유 괜찮지요, 기도해왔어서 괜찮아요 말씀드렸다. 소식을 들은 모든 사람이 평안해지는 것을 바라보니 하나님의 응답이 확실했다. 하나님이 실제로 일하심에 놀라워하며 이 상황을 받아들이려는 참이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주님 주시는 사인에 온전히 순종하게 해 달라고만 기도했지,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나 보다. 체계적으로 세워둔 나의 모든 계획이 증발된 자리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현실은 꼭 쓰던 종이를 북 찢고 나온 그다음 빈 페이지 같았다. 여태 외로이 주일을 보냈던 나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홀로 주일을 지켜야 하고, 새로울 것 없는 이 동네에서 백수의 삶을 이어가야 한다. 더군다나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 햇빛 한 줄기 환하게 들지 않는 이 집에서 낮이고 밤이고 계속 살아야 한다니, 믿고 싶지 않았다. 그곳으로 가기만 했어도 나는 남편의 부서 사역을 활발히 도울 수 있었을 거고 푸르른 녹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거실 창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내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을 텐데. 그동안의 찬란한 계획이 무산되자 특별할 것 없는 지금의 일상이 더욱 어렵게만 보였다. 마음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사는 가야겠다.


8월 말이면 계약이 완료되는 집이니, 만약 재계약을 원한다면 월세나 보증금이 올라갈 것은 당연했다. 그 돈이면 차라리 대출을 얼마 받아 조금 더 나은 집으로 가는 게 계산에 맞았다. 아파트는 바라지도 않겠다. 햇빛이 들고 바람이 통하는, 지금보다 조금만 더 넓은 곳으로 가야만 앞으로 임신을 위한 대비가 될 것이다. 이 집에서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새벽에는 기도하고 낮에는 끊임없이 어플과 인터넷을 둘러보았다. 생각은 깊어졌다. 하나님이 이곳에 머무르라 하셨고 모든 것을 포기하게 하셨으니 분명 뭔가가 있어야 하지 않은가. 내가 너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그런 야무지고도 확실한 약속 같은 것. 엘리야에게 가라, 하시고 그가 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까마귀를 보내 먹게 하셨다. 순종할 때 필요를 살뜰히 챙겨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우리에게도 까마귀를 보내실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집처럼 큰 까마귀를 보내실 수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어쩌실 계획인지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때때로 사람을 통해 먹을 것을 가져다주시거나, 선물을 보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지만, 정말 큰 까마귀를? 집이 하늘에서 냅다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 아닌가!


괴로웠다. 뒤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할 날이 도적같이 오겠지만, 기다림의 시간은 정말 사막 한가운데를 맨발로 헤매는 느낌이다. 발바닥은 뜨겁고 오아시스는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은 명확한데 눈으로는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의 계획을 내려놓게 하신다면 새로운 계획을 짜서 보여주셔야 할 텐데 하나님은 아무런 일도 행하지 않으셨다. 그러면서도 말씀을 보면 자꾸 자신을 믿으라 하셨다.


또 다른 날은 하나님 한 분으로 인해 기뻐하라는 말씀이 들려왔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선물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이 창가에 비가 들이치듯 마음을 툭툭 건드렸다. 그러나 나는 풀이 죽었다. 코가 빠져버렸다. 솔직하게는, 번듯한 집 없이는 기쁘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이는 그를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하나님도, 나도 둘 중 어느 하나도 기쁜 쪽이 없다.


나는 상황과 형편이 중요한 사람이었군요, 하나님.


평생 인생을 살면서 자꾸 잊어버리는 게 하나 있다면 나는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채워주실 인생 뭐 그리 걱정하느냐 말했지만 정작 나의 일이 되자 불안으로 사색이 되었다. 상황과 형편이라는 것은 내게 정말 큰 것이었다. 그러나 여태 현실은 아무것도 아닌 거라 생각했고, 그래야만 믿음이 좋은 사모라고 여겼던 것이다. 단순한 이사 문제라기보다, 사실 나의 믿음은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을 보니 낙담에 낙담을 더해 나를 닦달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모든 과정을 인정하시고 기다려주셨다. 인격적인 하나님이라는 말은 다름 아닌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신다는 말이었다. 기대치에 상응하는 결과만을 칭찬하는 분이 아니라, 나의 선택과 실패의 과정을 함께 지켜보시며 주님 닮은 열매를 맺도록 더욱 인내로 차근히 알려주신다는 것이다. 나의 믿음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믿음 없음 또한 긍휼히 여겨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바라보니 나 자신을 편안하게 내어놓고 기도할 수 있었다.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_마가복음 9장 24절 말씀, 아멘


믿고 싶지만 믿어지지 않는 나의 한계. 그러나 여전히 선포한다. 하나님 나를 어찌 책임지실지 막막하게만 보여도 하나님은 하나님 되신다는 것. 하나님이 하실 일에 나의 이해 따위는 사실 필요 없는 것이라고. 이해되지 않고 믿어지지 않아도 주여 믿겠나이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옵소서.


그리고 하나님은 내게 자족을 떠오르게 하셨다.


집을 알아보며 실제로 우리는 가진 돈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과 남편의 직업으로 받을 수 있는 대출 금액은 고작 3000만 원이 전부라는 것을 마주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적당한 집에 산다라는 것은 억대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도. 제발 1억만 있으면 좋겠다, 엄마 1억 없어? 아무도 없었다. 더군다나 1억을 바라는 것조차 우스웠다. 하나님은 요술램프 지니가 아닌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도,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희망이 없으니 차라리 포기가 편했다. 그제야 알았다. 기도는 나의 무능력을 처절하게 인정해야만 절실해지는구나.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되면 기도하지 않는구나. 나의 의는 조금도 없게 하셨다. 3월 말의 퇴사는 이때를 위함일까.


그렇게 다시 보니 지금 사는 집이 꽤나 깔끔한 것은 다시 인정할 만한 일이었다. 또한 하나님은 처음 이 집을 만났을 때의 감격을 기억하게 하셨다. 간절히 원한 신혼집이었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처음부터 좋은 것을 허락하셨음에도 어느샌가 나는 이 집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보다 나은 것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교만에 이르렀구나.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심히 많은 가축 떼를 가졌더라 그들이 야셀 땅과 길르앗땅을 본 즉 그곳은 목축할 만한 장소인지라_민수기 32장 1절 말씀, 아멘


그들의 눈에 보기에 괜찮은 장소에 머물기로 작정한 것을 보며 사람의 시선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서간다는 것을 알았고, 나 또한 이목의 정욕에서 자유하지 않음을 보았다. 나의 판단이 두려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집에 머무르기를 원하시는 것은 아닐까. 혹시 집을 옮기려는 것도 인간의 계획일 뿐이며, 마음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그러자 성경에서는 온통 이스라엘 백성의 고집부리는 모습만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싸우지도 말라 내가 너희 중에 있지 아니하니 너희가 대적에게 패할까 하노라 하시기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고 거리낌 없이 산지로 올라가매_신명기 1장 42절-43절 말씀, 아멘


과연 나는 다른가? 하나님이 가지 말라면 안 갈 자신이 있는가? 하나도 없었다! 내가 가고 싶으면 가고, 내가 멈추고 싶으면 멈추는 게 인생을 흘러가게 하는 방식인데 하나님은 꾸준하게 말씀하셨다. 너의 출입은 내게 있다고. 내가 가라고 하면 가고, 멈추라고 하면 멈추어야 하는 것이라고. 그들과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광야를 살던 그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안정을 추구하는구나. 안락한 삶을 원하는구나. 새가 새끼를 위한 안전한 둥지를 만들 듯 나도 그리 나의 터를 포근하게 하고 싶었을 뿐인데. 인간은 모두 어느 정도의 준비를 원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은 다름 아닌 자족이었다. 내게 허락하신 환경이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최고의 것임을 감사하는 태도.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조금씩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늘나라 백성의 태도로구나.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_신명기 1장 31절-33절 말씀, 아멘


조금씩 감사하기 시작했다. 집안을 더욱 깨끗이 쓸고 닦으며, 반짝이는 부엌을 보며 만족하고 깔끔한 흰색의 인테리어에 안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 하나님께서 먼저 가셔서 내가 있을 곳을 찾아보시니까.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고 끌고 가시니까. 절절히 깨달아지진 않아도, 하나님께서 품에 안고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다니까.


그래도 여전히 햇빛이 드는 집을 원했다.

과열된 마음이 가라앉기는 했지만 아직도 나는 밝은 집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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