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시리즈를 좋아한다. 책방 시절 <아무튼 계속>을 시작으로 세 출판사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라는 점도 너무 재밌고 프로와 아마추어 세계를 넘나들며 무언가 깊이 흠뻑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아무튼 시리즈를 추천했고 (이 중에 네 관심사 하나는 있겠지라는 마음!) 그보다 조금 더 가까운 이들에겐 당신이 만약 이 시리즈를 쓴다면 무슨 주제를 쓰겠는가 하는 질문을 종종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일상 깊이 들어와 있는 가장 좋아하는 것, 관심 있는 것을 나눌 수밖에 없어 상대방에 한발 더 다가간 느낌이 든다.
그렇게 나도 만약 언젠가 내가 이 시리즈를 쓴다면 상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주제를 골라왔다. 당연히 혼자 상상만 했고 데뷔작가도 아니기에 브런치에 내 마음대로 나의 시리즈를 연재하고자 한다. 혹시나 아무튼이라는 이름을 마음대로 붙여다 쓴 게 문제가 된다면,,, 알려주세요,,, 아무튼 시리즈의 진득한 팬의 마음으로 쓰는 것을 밝히며,, 이 글은 세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시리즈와 아무 연관도 없고 그냥 혼자 연재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좀 더 본격적으로 나의 아무튼 상상에 대해 말해보자면 최초의 주제는 '샌드위치'였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하나를 콕 집어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언제 먹는다고 생각해도 질리지 않고 오케이 되는 음식이 샌드위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음사에서 나온 띵시리즈를 읽고 (음식을 주제로 다룬 에세이 시리즈) 샌드위치는 띵 시리즈로 가야겠다고 혼자 결정,,! (사실 아무튼 영화 속 음식도 마찬가지긴 하다.) 그다음 혼자만의 주제는 '클래식'이었다. 클래식을 잘 아냐고 묻는다면 전혀 모른다는 답을 할 수밖에 없지만 순수히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 클래식에 대한 이론적 지식도 없고 어떤 음악을 들으면 작곡가나 피아노 협주곡 몇 악장을 맞출 능력도 없다. 그럼에도 클래식 공연을 보는데 돈과 시간을 쓴다. 들으면 감동하고 출근길 선곡은 80% 클래식 음악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디에 시간과 돈을 쓰는가, 에너지를 넣는가를 기준하여 본다면, 직장인의 얼마 없는 에너지와 여가시간을 클래식 공연 보는데 쓴다는 것은 그래도 좋아하는 게 맞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렇지만 이미 너무나 훌륭한 <아무튼 클래식>이 출간되었고 정말 재밌게 읽었다. 공연보기를 좋아하지만 지방에 거주 중이라 사실상 서울과 비교하면 공연 기회가 많이 없기도 하다. 크고 작은 공연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쫓아다니며 보지 않는다. 주변 사람보다는 조금 더 좋아하고, 음악의 장르 중에 가장 사랑하지만 무수히 많은 클래식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에서는 아마 백분위 98% 정도의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상상이지만, 사실상 한 권을 채울 만큼의 이야기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보단 혼자만의 구구절절한 고백이나 혹은 중학교 음악감상 시간에 수행평가로 했던 공연 감상기에 그칠지도 모른다.
아무튼 시리즈를 읽으며, 그리고 주변 지인들과 함께 만약 나라면! 무엇을 쓸까 상상의 시간을 가지며 좋아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도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잘하는 것과 별개로 좋아하는 마음도 우리는 순위를 매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가령 나 자신을 구성하는 것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커피여도, 커피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면 마주하는 수많은 전문가 혹은 전문가가 아니어도 취미로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의 세계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 순간 왠지 자신이 없어진다. '아 나는 그만큼 좋아하는 건 아니구나' 하고 움추러들게 된다. 좋아하게 되면 자연히 더 알고 싶고 일상에 끌어다 놓고 싶지만 사실 모두가 들여놓는 범위가 동일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무엇인가 좋아한다는 고백에 얼마큼 그에 대해 아는지 혹은 경험했는지 묻고 따지고 싶지 않다. 최근 팔로우 하고 있는 영화 계정에서 본 이야기인데, 영화 모임에 갔는데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해운대'라고 답했더니 순간 정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름도 어려운 거장 감독들의 영화나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은 심오한 영화를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면 영화를 잘 모르거나, 깊숙하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무의식의 판단 기준이 있는 것이다.
잘 아느냐의 문제는 다르지만 좋아하는 마음만큼은 본인의 기준에서 본인이 정하는 것이다. 내 마음대로 정하고 내 안에서 얼마나 큰 포션을 차지하는지를 기준으로 하고 싶다. 사실 앞으로 내가 쓸 글에, 그리고 나의 얕은 지식을 기반한 열렬히 좋아한다는 마음에 대한 방패이기도 하다. 누군가 와서 아니 영화를 모르네, 음식을 모르네라고 하면 당신 말이 맞다. 당신이 나보다 많이 안다. '그런데 이 정도로 모르면 좋아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라는 반응은 사양이다. 좋아하는 마음만은 나의 것이다.
앞서 말했듯 클래식을 좋아하는데 클래식에 대해 모른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은 너무 좋은데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그래도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다. 어느 누구보다도 더 좋아하고, 더 잘 안다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 그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나는 콘텐츠를 좋아하고 그중 가장 선호하는 콘텐츠는 활자로 구성된 책이다. 영상보다 책을 읽는 것을 더 선호하지만 종합 예술이라 불리는 영화도 좋아한다. 그리고 영화를 보다 보면 자꾸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영화 속 음식이다. 그렇다. 최초 주제를 샌드위치로 생각한 만큼 나는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이 많다. 맛집에 대한 관심사도 많고 이런 정보들은 자연히 머리에 저장된다. (아, 그래서 좋아하면 지식도 많을 거라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지식 없어도 아무튼 좋아할 수 있다.) 어떤 음식을 먹는 방식과 취향 대부분이 영화 속 관심에서 이어진 간접 경험에서 만들어졌다. 음식과 요리가 주제인 영화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에서도 먹는 장면은 등장한다. 때로는 주요한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그런 영화 속에서 마주했던 무수히 많은 음식들은 나를 영화에 더 깊이 빠지게 만들었다. 먹는 것이 나를 구성한다는 말이 있듯, 나를 구성하는 많은 음식 취향은 영화로부터 시작되었다. 일부 영화의 스포가 남발될 수 있으니 영화 스포를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은 영화를 보고 봐주시면 감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