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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식] 1.<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샐러드

드레싱은 on the side로

by 장글씨

처음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봤을 때가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장면은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떠난 해리와 샐리가 중간에 들른 다이너 장면이다. 서로를 재수 없고 이상하게 여기던 상황에서, 샐리만의 까다롭고도 독특한 주문방식에 해리는 묘한 매력을 느낀다. 식당에서 팁을 계산하는 방식 또한 극명하게 다른 둘의 성향을 보여주는데,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로 헤어지지만 긴 시간 몇 번 이어진 우연과 인연으로 둘은 친구가 되고 이내 연인이 된다.


아마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를 이야기하면 대다수 떠올리는 유명한 장면은 뉴욕 식당 중심에서 가짜오르가즘을 연기하는 샐리와 그들이 먹고 있던 고기가 산처럼 쌓인 파스트라미 샌드위치를 생각할 것이다. 물론 나도 이 영화를 보고 파스트라미 샌드위치를 알게 되었고 그 맛이 궁금했다. 뉴욕 여행 중 가보려고 저장도 해두었지만 체력 이슈로 방문은 하지 못했다. 결국 먹어보지도 못했지만 그런 압도적인 비주얼에도 나에게 더 인상 깊은 것은 바로 샐리의 샐러드다.


영화 속 샐러드를 생각하면 <줄리 앤 줄리아>의 콥샐러드 모임 (콥 샐러드의 정체성을 흐트러트리는(?) 것인데, 재료 중 좋아하지 않는 혹은 못 먹는 하나씩 빼고 주문하는 대학 동기 모임이다.)도 인상 깊지만 그래도 나의 샐러드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샐리이다. 처음 해리와 샐리가 같이 식사를 하던 다이너에서도 샐리는 샐러드를 주문할 때 요청한다. 드레싱은 'on the side'로. 드레싱은 뿌려서가 아니라 따로 달라는 것인데, 사실 샐리는 샐러드뿐만 아니라 호박파이에 올라가는 아이스크림도 따로 요청하는 자기만의 기준이 확고한 사람이다. 대부분은 그런 샐리를 예민하고 까다로운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나이가 들어보니 샐리의 식성과 취향이 너무나 이해가 되고 확실하게 자기 취향을 알고 있는 샐리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야채는 드레싱 맛으로 먹는 거라는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를 많이들 한다. 그리고 드레싱 자체의 맛도 맛있다. 그럼에도 드레싱에 절여진 샐러드는 먹고 싶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야채들은 생기를 잃고 축축하게 절여진다. 그럴 거면 샐러드가 아닌 겉절이를 먹지 싶은 마음이다. 한번 샐러드를 소스 따로로 먹고 나니 돌이킬 수 없는 세상을 만난 기분이었다. 하지만 샐러드를 소스 따로 요청 시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주변의 반응이다. 대부분은 '소스를 안 먹어요? 혹은 다이어트하나요?'라는 질문과 함께 특이한 식성을 가진 사람 혹은 까다롭고 예민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요즘은 저속노화나 기타 등등의 건강식이요법 등으로 소스가 몸에 좋지 않다, 소스가 살이 찌는 원인이다 해서 건강하게 먹으면 좋지 하는 반응도 많아졌다. 그런데 건강이 아니라 순수하게 맛을 위한 선택임을 주장하고 싶다. 사실 요즘 세상에는 샐러드 소스를 따로 요청하는 건 샐리가 살았던 시대만큼의 호들갑스러운 일은 아니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샐리처럼 호박파이 위에 올라가는 아이스크림 종류가 어떤 것인지, 만약 본인이 요청한 아이스크림이 아니라면 생크림으로 줄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커스텀 주문이 여전히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탄산음료 특유의 끈적한 단맛이 싫어서 잘 마시지 않는데 그럼에도 종종 상큼하고 시원한 에이드가 먹고 싶다. 그럴 때 카페에서 에이드는 사이다인가요 탄산수인가요를 꼭 물어보게 된다. 사이다라 답이 돌아오면 이내 다른 메뉴를 주문하게 되는데, 괜히 까다로은 척 구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멋쩍다. 밀크티도 마찬가지인데 파우더 단맛이 싫어 티백인지 시럽인지 파우더인지 물어보고 주문을 하게 된다. 음식을 남기지 않고 끝까지 즐기기 위한 노력이라고 느껴주면 고맙겠지만, 이것저것 따지는 깐깐하고 예민한 사람으로 비치는 것 같다. (깐깐하고 예민한 사람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주문 한 번에 그렇게 판단되는 것은 싫다고나 할까,,)


항상 의아한 반응을 보이는 서브웨이 샌드위치 소스 취향도 수줍게 고백하자면 올리브오일에 레드와인 비니거 그리고 소금 후추 네 가지 조합이 가장 완벽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3가지 소스만 선택이 가능하게 되어 레드와인비니거를 뺄지 소금을 뺄지를 고민하고 있다. 샌드위치에도 소스 따로 기능이 있다면 기꺼이 다양한 소스들을 맛보겠지만, 샌드위치 소스가 야채와 빵에 스며드는 것은 결사반대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영화를 좋아해 N회차 관람을 했다. 영화의 매력은 다양하다. 사랑스러운 샐리와 샐리의 복장을 보는 것도 재밌고, 혐관에서 로맨스로 발전하는 서사는 말할 것도 없이 클래식하게 오랜 기간 사랑받은 클리셰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때에도, 이해하려 하는 친구가 될 때에도 둘의 주고받는 대화도 재밌다. 영화의 끝에 서로 사랑을 깨닫고 해리는 샐리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진짜 사랑하는 것임을 증명하기 위한 그의 고백 중에는, '항상 샐러드 소스를 따로 주문하는 너의 그런 모습도 사랑해.'라는 뉘앙스의 대사가 있다.

첫 식사에서 예민하고 까다롭다고 느꼈던 샐리의 부분을 끝내는 너의 사소한 모습까지도 사랑한다는 해리의 마음이 느껴져 언젠가 나도 그런 사랑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했다.

그런데 소스 따로 파에게는 그런 모습도 사랑한다고 어머! 할 수 있는 대사이겠지만, 메이저 한 취향을 가진 소스를 뿌려먹는 사람에게도 그런 취향을 사랑한다는 고백이 로맨틱하게 느껴질지는 모르겠다. 강경 on the side 파 입장에서는 뿌려먹는 파를 사랑하는 것이 큰 결심인데 말이다. 생각해 보면 탕수육의 부먹과 찍먹은 재밌는 논란과 논쟁으로 취향의 영역으로 여겨지는데 반해, 왜 샐러드 소스 따로만 약간의 예민한 취향을 가진 사람 취급을 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소스 따로 파가 드문 세상에 살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어떤 장르에서든 마이너 한 취향으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별거 아닌 소스 하나 따로 먹는 것 까지도 입을 떼는 것이 우리 인생이구나 싶다. 난 어디 가서 절대로 호들갑 떨지 않아야지. 어머 소스를 어떻게 부어먹어요!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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