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먹이는 일
꿈꾸는 이상적인 삶의 형태는 도시보단 자연의 삶에 가깝다. 이왕이면 직접 기른 작물로 음식을 만들어먹고 풀과 나무가 가득한 환경에서 목가적인 삶을 살고 싶다. 그러나 어디까지 이상일뿐이다. 영화 리틀포레스트가 국내에서 만들어지고 개봉했을 때 서울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울산으로 돌아온 지 1년이 막 지난 시점이었다. 서울에서의 삶을 청산했다고 말할 것도 없이 서울에 머무는 기간은 짧았지만, 김태리 배우가 연기한 혜원이 편의점 도시락을 먹던 서울생활과 나의 서울생활의 양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엌의 공간도 협소하고 1인 가구를 위한 요리를 하기에도 기초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물리적인 공간과 도구, 각종 조미료와 재료 등을 제하고도 요리를 할만한 에너지와 실력도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약속이 없는 날에도 밥을 사 먹었는데 매번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일은 경제적 부담도 있고 번거로워 편의점 도시락도 그만큼 자주 먹었다. 아무리 다양하고 많은 종류의 편의점 도시락이 나온다고 해도 매일 먹다 보면 결국 다 똑같은 맛처럼 느껴지는 신기한 음식이 바로 편의점 도시락이다. 그렇게 혜원처럼 나를 구성하는 성분이 편의점 도시락이 되어갈 즘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차곡히 집밥을 몸에 쌓아 넣었다.
그래서 영화 시작 고향 집으로 돌아간 혜원이 해 먹던 첫 요리가 인상 깊다. 얼마 남지 않은 밀가루를 끌어모아 만든 반죽과 꽁꽁 언 배추를 캐어 만든 고추장 수제비는 얼어있던 몸도 마음도 녹이는 따뜻한 맛이다. 수제비를 즐겨하지 않는데도, 텃밭에서 겨울을 이겨낸 배추와 마지막을 끌어모아 만든 수제비의 조화는 다시 다음을 기다리고 맞이 할 힘을 주는 듯했다.
혜원이 스스로 해 먹는 음식들도 매력적이었지만, 고향집의 부엌과 마당에도 눈이 갔다. 꿈꾸던 시골집의 풍경이 그대로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저런 곳에서 꼭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과 별개로 현실이 빼꼼 고개 들어 벌레와 추위 등을 상기 키기는 했지만, 시골집의 부엌에서 직접 음식들을 만들어 먹는 혜원의 모습은 자유로웠다. 혜원의 고향집 같은 곳은 아닐지라도 직접 캐낸 작물로 요리를 해 먹고 싶기도 했고, 원래도 농사일에 관심이 있었기에 영화를 보고 몇 년 후 작은 텃밭을 1년 빌려 야심 찬 농경 계획을 꿈꿨다. 초보 텃밭꾼으로 여름철 무성히 자라는 잡초에 무엇이 부추이고 잡초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고,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상추에 농사에 대한 마음이 접혔다. 비록 직접 재배한 작물로 해 먹는 일은 어렵게 되었어도, 나를 채우는 것에 조금 더 마음을 쓰게 되었다.
겨울의 수제비와 배추 전으로 시작한 혜원의 시간은 봄나물 파스타로 새싹을 틔우고, 여름의 토마토와 오이가 들어간 콩국수로 더운 계절을 흘러 보낸다. 직접 말린 곶감과 한 알 한 알 손질한 밤조림으로 가을을 맞이하고 이내 다시 겨울을 마주한다. 계절 구분이 어려웠던 편의점 음식에서 그는 뚜렷하게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음식들로 자신과 시간을 채워간다. 그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보이는 것들이 내가 지금 어느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지 알게 한다. 천천히 정성 들여 나를 입히고 먹이고 재우는 것은 어느 것 보다도 중요하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들어가다 보니 건강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는 어른들의 말이 와닿는다. 몸의 건강과 마음의 건강은 이어져있고, 이 둘을 유지하기 위해선 나를 잘 돌봐야 한다.
도시의 생활이 나를 돌보지 않은 생활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여유 있기보다는 매일 바쁘게 숨을 몰아쉬는 삶에 가깝다. 바쁜 와중에도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자신을 챙겨가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너무나 대단하고 존경스럽고 비법을 알고 싶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서울에 살며 맛있는 것들을 많이 먹었는데 주로 먹었던 음식을 떠올리면 편의점 도시락이 먼저 생각난다. 편의점 도시락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매일 나에게 차리는 음식으로는 좋다고도 할 수 없다. 그때를 떠올리면 내가 어느 계절에 살고 있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든다는 말처럼, 나 자신을 먹이고 돌보는 것에 우리는 조금 더 시간을 쓰면 좋겠다. 여름에는 여름의 맛을 담뿍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정성스레 시간을 들여 준비한 음식처럼, 우리 마음의 시간도 시간을 들여 풀어내기를, 우리의 시간이 조금 더 천천히 흐르기를 바란다. 여름을 즉각 느낄 수 있는 시원한 콩국수처럼, 시간을 들여 기다려야 맛을 볼 수 있는 밤조림처럼 나를 먹이고 잘 키워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