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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똘 Oct 14. 2024

나를 필요로 하는 그곳은 결국 또 덴탈

어쩔 수 없이 덴탈에서 존버한다

항공사에서 잔뜩 털려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감싸준 곳은 보건소였다. 보건소에 풀타임으로 취업했다.

취준으로 잔뜩 낡아진 자존감 채워보려고 공공기관 면접이라도 본 거다. 전형도 형식이 갖춰져 있고 이력도 나중에 쓰기 딱 좋다. 공공기관을 모를 수는 없으니까. 취준 8개월쯤 됐을 땐 것 같다.

치과위생사 전형으로 봤다. 자기소개만 준비했어도 묻는 말에 자연스럽게 답변이 됐다. 왜냐면 전공이니까… 이상하게 내 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 그래서 속상하긴 한데 또 안심이고. 마음이 좀 불편했다.

내 직무는 구강 보건 교육이었다. 오전엔 진짜 수업을 했다. 주로 유치원 어린이집 아이들을 대상으로 충치예방에 대한 내용을 얘기하고 치아에 불소를 발라줬다. 그리고 오후에는 예방진료를 도왔다.

업무는 지금까지 했던 모든 일중에 가장 재미있고, 쉬웠다.

40명 정도의 아이들 앞에서 20~30분씩 얘기했다.

이건 기회다! 면접에서 떠는 버릇 고쳐서 승무원 돼야지. 하는 순수하지 않은 동기로 열심히 했다.

면접에선… 소용없었나 보다.

그래도… 대학시절 PPT발표도 얼마나 기피했는지 중간에 피티 끄고 내려온 적도 있는 나다. 난 원래 정말 소심했다.

6-7세 반 앞에서 2년 가까이 교육했는데, 이 경험은 나중에 먹고사는데 도움이 되었다.

진짜 소심해봐서 아는데, 떨리면 그를 숨길 수 있을 만큼 한 자 한 자 자연스럽게 연습하고 내용에 자신감이 있게 되면 괜찮아진다. 자신감은 본질에 대한 자긍에서 나온다. 선천적으로 목소리가 좀 떨려도 알맹이가 있으면 사람들은 다 알아본다.  

1년을 넘게 일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연습하면 다 잘하는구나. 나는 그 옛날 연습으로 메꿀 생각을 안 하고 매번 도망쳤던 거였어.

면접에선 자꾸 내가 먼저 안 되는 이유를 되새기니 긴장한 게 그대로 드러나고,

결국 뽑을 이유 없는 지원자로 보였던 것이 아닐까?


치과를 탈출하려 시작된 모든 순간들.

안 돌아가겠다는 다짐은 지켰다.

그렇지만 아직 계약직이었다. 불안한 파리목숨.

당시엔 임기제공무원을 서울시 전체에서 일 년에 한두 명 정도 뽑았다.

계약직 직원들은 이 임기제를 노리거나, 행정직 정규 공무원 준비를 하며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루는 내가 일하는 구에 임기제 자리가 나서, 나도 면접을 봤다.

또 탈락했다.

그런데 면접관이었던 분이 하루는 나한테 와서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면접을 너무 잘 봐서 뽑고 싶었는데, 공부가 부족해서 맡길 수 없었어. 고민 많이 했어”

“그러니까 공부하면서 기회를 기다려. 계속 시험 봐. 너는 붙을 거야. ”

왜냐하면 임기제 공무원 자리에 최종 합격한 그분은 박사 졸업이다… 후, 내 자존심 지켰다.

5년 한시 직군 자리도 박사는 되어야 비벼볼 만한 게 세상이다... 이 직군은 좀 괜찮다 싶으면, 오너랑 붙어서 일하는 게 아니기만 하면 비정상적으로 치열하다. 참 살아가기 힘들지 않나.


주말에 다니던 치과를 때마침 그만두고 학교를 갔다. 학사를 따고 자격증 몇 개를 더 취득했다.

그다음 해 초봉임에도 보건소와 연봉이 딱 두 배 차이나는 임플란트 중견기업에 합격해 이직했다.

거기서 영어 자기소개하고 1차 붙었다. 승준생 때 외웠던 거… 기분 되게 이상했다…

인생은 돌아 돌아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돕는다.


승무원 취업 준비는 결국 실패하고 끝났지만, 내 삶에서 힘겨운 기억이기도 하지만…

나를 더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많은 모의면접 피드백으로 사람들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얼마나 자세가 구부러져 있었는지…

어떤 모습이 매력 있는지 알게 되었고…

세상엔 나보다 잘난 사람도 많지만, 노력이란 걸 안 하는 사람이 아주 많아서… 작정하고 조금만 덤비면 이전보다는 훨씬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어쩌면 인생 전체는 결국 과정들의 연속일 뿐이다.

나는 이랬고 저랬어… 는 모두 과정 속으로 사라진다. 죽을 때 아니면 그뿐이다.

나는 그렇게 계속 나아지며 후회 없이 죽는 결말을 맺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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