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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서 경험하는 직장인

교사도 직장인이라는 걸 잊고 살았었다.

나는 직장인이지만 공무원이다.


공무원 중에서도 교사다.


교사 중에서도 특수교사이고,


특수교사 중에서도 유치원 특수교사다.


내 경우는 단설 유치원,

병설유치원

(초등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근무하는),

특수교육지원센터 중에 선택할 수 있는데 나는 현재 교육청의 특수교육지원센터에  근무하고 있다. 


최근에는 갑질이라는 단어를 내세우며 민주적인 분위기의 학교가 많지만 10년 전만 해도 유치원, 초등학교도 꽤 보수적인 공간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단설유치원은 다른 유, 초, 중, 고등학교의 학교에 비하여 아직도 좀 보수적인 면이 있어서 보통 단설유치원보다 병설유치원을 선호한다.


물론 사기업이나 다른 직장인들은 직장 속 수평적 관계라는 걸 얼마나 느끼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나 교육청은 분명 민주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기간제 경력을 제외하고 공무원이 되고 9년차, 학교가 아닌 교육청에 근무하게 되어 가장 좋은 건 점심시간이다.


나는 임용 후 첫 3년 동안  밥 먹을 때마다 똥을 싸는 친구 덕분에 원래도 비위가 강했지만 더 강해졌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특수교육대상아동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되는 아이들도 많다.)인데,



관심을 받거나 과제나 상황을 회피해야 하는 문제행동(최근 도전행동이라고 표현)에 대해 무관심해야 하는 내 직업의 특성상 점심시간에 잦은 문제가 있었다.


특히 고함,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의 와글거리는 소리 속에서도 나는 묵묵히 밥을 먹어야 했다.


특수교육대상아이들을 포함하여 통합학급 친구들도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어찌나 많은지 밥 먹는 내내 우아하게 식사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 이거 먹어도 돼요?"

"선생님, 이건 먹기 싫어요"

"선생님, 반찬이 안 집어져요 왜 그러는 거예요?

"포크 떨어졌어요! 으앙!"..

그야말로 북새통이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일과를 마치면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테이블에 걸터앉아


  '밥을 입으로 먹었는지 코로 먹었는지 모르겠다'는 둥의 이야기를 건네며 인사를 하곤 했다.


하지만  교육청에 온 뒤 나는 평화로운 점심시간을 찾았다.


 그리고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덕분에 퇴근은 1시간 20분이나 늦어졌지만 나는 모든 직장인들에게 점심시간에는 자유(?)를 줬으면 좋겠다.



4시 40분이라는 시간은 정말 빠른 퇴근시간이다.


점심시간을 근로시간으로 포함하여 퇴근도 빠르기에 나는 교육청에서 6시 퇴근을 하는 건 적응하기 어려울 줄 알았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이토록 조용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시간이었다는 걸 느낀 후에는 퇴근이 늦어지는 것도 힘들지 않았다.


학교에서 도서관이 있었지만 항상 일을 하다 보면 하루 30분 이상 책을 읽을 시간도 부족했다.


교사도 직장인이었지만 마치 다른 직장인들처럼 점심시간을 가져볼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새롭고 신기한 시간이었다.



나는 직장인으로서 마음껏 책을 읽을 권리, 마음껏 혼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권리, 마음껏 써볼 수 있는 권리를 누렸다.

세상 모든 직장 내에 도서관이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도서관에 오기 시작하면서 여러 책들을 보고 시간이 되면 컴퓨터를 켜서 글도 썼다. 오늘처럼.


그러다 브런치에 글도 쓰게 되고 내가 지금까지 지내왔던 재미난 기억들을 기록에 남기고 싶었다.


병설유치원에 근무했을 때는 방학마다 여행을 다녔다. 덕분에 남미여행, 유럽여행, 중동, 일부 아프리카까지 열심히도 방학을 즐겼다.


공무원 땡보다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나는 유치원 특수교사로서 그렇게 땡보처럼 일한 적은 없었다.


아이들이 중증 장애를 가지고 있을 때는 하루종일 말을 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자극을 주려 종일 피아노를 쳤고, 어떻게든 일반학급 친구들과 장애를 가진 친구가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다.


통합반선생님과 일부러 더 편하게 지내려 나부터 친근한 사람으로 변해야 했다.  그리고 담임선생님과 더불어 난 아이들과 함께 열심히 놀았다.


물론 장애를 가진 친구들의 능력은 너무 다양해서 때로는 블록놀이도, 퍼즐놀이를 하기에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같은 공간에 함께 있으면 서로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아진다.


 무의미한 발성도 'oo 이는 말을 할 수 없어서 소리를 내는 걸 좋아해. 지금도 노래를 하고 싶나 봐'라고 말해주면 유치원 시기의 아이들은 철석같이 그 말을 믿고 "정말 노래를 잘 부른다~"하며 아이들끼리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의 맑고 아직은 때 묻지 않은 모습은 참 예쁘지만 교사로서 하루가 바쁘게 돌아가고 수시로 말을 걸어주는 것,

 기저귀를 갈아주어야 하는 것,

울고 떼쓰는 아이에게 긍정적으로 행동을 지원하고 대체행동을 마련해 주는  쉬운 일, 쉬운 직업도 아니다.


교육청에 와서는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을 매일같이 볼 수 없어 아쉽기도 하지만


 점심시간이 되면 어쩌면 나는 영원히 직장인으로서, 그것도 교육청의 교직원으로 남아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시간, 내 점심시간 한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바쁜 하루 중에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소중하고 감사하다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


우리는 남기지 않으면 사라져 버리기에, 나 또한 오늘을 기록하고 하루하루를 헛되이 살지 않으려고 한다.



내게 주어진 직장인의 시간을 교사이지만 아이들과 함께가 아니더라도 나를 위해 성장할 기회가 있어서 참 좋다.


모두 즐거운 점심시간 되세요, 오늘도 즐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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