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의 어느 날, 나는 3박 4일 동안 제주에서 청년 플로깅 프로젝트 ‘주스멍 도르멍 3기’에 참여하며 제주 올레길을 걸었다. 평소 걷는 것을 좋아해온 나에게 이 경험은 단순한 프로그램 참여가 아니었다. 삶의 방향을 다시 확인하게 해준, 고마운 시간이었다.
유난히 올해는 새로운 도전이 많았다. 상반기에는 남파랑길을, 하반기에는 제주올레길을 걸었다.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나고, 그 만남을 인연으로 이어가고 싶었다. 나에게 걷는다는 행위는 언제나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였다. 주스멍 도르멍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었다.
처음 제주올레길은 ‘도전’의 의미에 가까웠다. 우연히 알게 된 100km 완주증을 목표로, 풍경보다 기록에 집중했고, 정해진 시간 안에 해낼 수 있는지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번 주스멍 도르멍 3기를 지나며 그 의미가 달라졌다. 제주올레길은 ‘바다’가 되었다.
드넓게 펼쳐진 바다 앞에서 나는 비로소 멈춰 설 수 있었다. 나의 걸음으로 길을 닦아 나간다는 감각 속에서 편안함과 회복을 느꼈다. 걷는 동안 무언가를 증명하려 애쓰기보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이 프로젝트가 특별했던 이유는 함께한 사람들이었다. 각자의 고유한 모습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공간, 우리는 활동을 했지만 결국 관계했고, 그래서 남은 것도 ‘사람’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울고 웃으며 동거동락한 길동무들이 생겼다. 이제 제주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다시 찾고 싶은 사람이 있는 공간이 되었다. 이 관계의 확장은 이번 여정이 남긴 가장 큰 선물이다.
겨울 한가운데를 스쳐 지나간 여름처럼, 반짝였던 3박 4일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윤슬처럼 흔들리던 바다의 빛처럼 우리의 마음도 함께 일렁였다. 그 순간들을 가능한 그대로 간직하고 싶다.
처음 만난 제주 길에서 다시 발맞춰 걷는 날을 기다리며, 이 인연을 오래 이어가고 싶다. 단체 톡방에 남겼던 말처럼,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었던 시간은 큰 선물이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사실은, 나 또한 그런 만남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함께 걸었던 길,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던 장면들은 오래 마음에 남을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걸었지만, 길동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든든했다.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면서도 서로에게서 받은 예쁜 에너지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길 위에서 만나요.
이 인사는 헤어짐이 아니라 약속이라고 한다.
길에서 만난 인연은, 결국 다시 길에서 만나게 된다는 믿음.
머지않아 또 같은 길 위에서 마주치기를 바라며, 그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