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베이커가에서 만난 1800년대의 셜록홈즈와 21세기 셜록
2014. 09. 13
유럽, 그 중 영국은 수많은 스토리의 배경이 되었던 도시다. 첫 유럽여행을 떠나기 전, 내게 유럽이라는 나라는 영화 속 환상세계였다. 그 환상세계 속에서 첫번째로 마주한 곳은 영국드라마 <셜록>의 배경이었던 'SPEEDY'S' 카페다. 영국드라마 셜록의 인기로 관광객이 제법 있을 법도 한데, 우리가 간 시간은 아침시간이어서 그런지 아침을 먹으러 온 영국인들이 많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영드 <셜록>을 연기했던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극 <햄릿>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미뤄져서 아쉬웠는데, 카페에 들어서서 벽에 걸려있는 사진들을 보니 괜히 흐뭇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말로만 듣던 잉글리쉬 블랙퍼스트를 먹고 있지만, 그것이 빵과 소시지, 스크램블에그 정도였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는 간단하게 커피만 마시기로 했다. 이 커피는 후에 '동생님'의 2층버스 멀미의 씨앗이 된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셜록홈즈 박물관>에 갔다.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 입구부터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관광객들은 많았고.. 많았고... 많았다...
지나치게 관광상품화 된 곳이라 아쉽게도 큰 감흥은 없었다. 그 이유는, 어쩌면 원작 <셜록홈즈>를 다 읽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전세계에는 셜록홈즈의 수많은 팬들이 있다는데, 내가 직접적으로 처음 접한 셜록은 영드 <셜록>의 베네딕트 컴버배치였다. 덕후라 하기도 민망한, 야매덕후인 셈이다. 그래서 그런가. 줄에 밀려 밀랍인형을 보는데 큰 감흥이 없었다. 그리고 옆을 보아하니 다른 관광객들도 그런 것 같았다.
덕후지수 ★★
그래도 학교 과제로 원작 <셜록홈즈>의 '주홍색 연구'와 영드 <셜록>의 '분홍색 연구'를 비교하는 발표를 했던 적이 있더랬다. 최소한 소설의 첫번째 에피소드 '주홍색 연구'는 씹고 뜯고 맛보고 했다는 사실.
그랬다. 나는 영드 <셜록>에 빠진 나머지 발표 피피티에 인물관계도를 한땀 한땀 그려넣었다. 역시 쓸데없는 행동을 할수록 덕후력이 증가하는 것 같다. 사진을 넣은 것도, 딱히 큰 의미는 없다. 나처럼 셜록홈즈를 영드 <셜록>으로 입문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도 첫번째 에피소드 [주홍색 연구]만은 읽어보면 좋겠다. 드라마가 세심하게 현대적으로 각색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먼저 제목 자체가 각색되었다.
원작 [주홍색 연구]에서 주홍색은 비유적으로 죄악을 상징하는 빛깔이다. 반면 영드 [분홍색 연구]의 분홍색은 피해자의 진한 분홍색 패션을 뜻한다. 원작 제목이 문학적 비유에 초점을 둔 것에 비해 영드는 살인사건에 초점을 두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도일의 모험담을 스크린으로 옮긴 수많은 작품들이 믿기 힘들 정도로 진지하고 공손하게 저자의 의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데, 이럴 경우 영화의 시각이 극히 제한된다는 문제점이 존재한다.… 장난스럽게 접근한 B급영화들이 다른 어떤 해석보다 도일의 원래 의도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스티븐 모팻, 마크 게이티스 인터뷰中-
셜록의 캐릭터가 비교적 원작과 흡사하다면, 왓슨의 캐릭터는 원작보다 사연이 많이 부각된 것을 알 수 있다. 소설에서는 왓슨의 일기로 서술되어, 셜록 홈즈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데 그쳤었다.
왓슨을 캐스팅할 때 기준이 ‘누가 베네딕트와 잘어울릴 것인가’였다. 사소하지만 우리는 “두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불러야할까?”도 고민했다. 원작에서 그들은 항상 ‘홈스’와 ‘왓슨’으로 서로를 불렀기에 여기서는 ‘셜록’과 ‘존’으로부르기로 했어요. -스티븐 모팻, 마크 게이티스 인터뷰中-
이렇게 존의 캐릭터성을 원작보다 부각시켜 드라마는 셜록과 콤비플레이를 이루는 장면이 더욱 많아질 수 있었다. 이를 브로맨스로 엮는 등 다양한 관계 해석을 시도하였다.
드라마 <셜록>의 오프닝 속 나왔던 런던아이의 부감을 보고 몹시나 설렜었다. 실제로 런던아이를 마주하는 순간, 그 오프닝이 떠올랐다. 사진 속 풍경 외에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이야기를 여행하고 나면 같은 풍경도 더욱 많은 것들이 보이고 느껴지고, 가슴에 남는 법이다.
<셜록홈즈>는 수많은 컨텐츠로 각색되었다. 영화, 드라마, 연극 등. 어떤 이야기로 셜록을 접했느냐에 따라 상상하는 이야기는 다를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좋은 이야기는 끊임없이 변주되고, 살아남아 사랑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