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로맨스, <노팅힐>
2014. 09. 13
셜록홈즈 탐방을 하고 난 날, 우리는 토요일에 열린다는 포토벨로 마켓으로 향했다. 노팅힐 거리는 영국의 부촌 거리로, 영화 <노팅힐>에서 당대 최고의 여배우와 서점 주인이 우연히 만나게 된 거리다. 포토벨로 마켓이 열리는 메인 스트리트는 벼룩시장 같은 느낌을 주지만, 골목 골목 돌아다니면 부촌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가로수길이 떠오르는 거리.
<노팅힐>과의 첫만남은 아주 늦은 새벽밤 케이블에서 방영해 준 영화였다. 너무 늦은 새벽이라 보다가 그만 잠들어 버리고. 어찌어찌 보려했는데, 결국 노팅힐 거리에 오기 전까지 끝까지 영화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극 중 서점이 있던 자리가 어딘지 알 길이 없었다. 다만 끝없이 길게 늘어서 있는, 물건들을 구경했다. 그러나 이 거리가 너무 유명해서 그런지 각지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에 치이고, 벼룩시장이라기엔 물건이 비싸서, 그리 좋은 기억은 없다. 결정적으로 이 날 노팅힐에서 먹은 크레페, 앞서 셜록 카페에서 마신 커피, 2층버스 때문에 동생은 심하게 탈이 났다. 그러나 우리의 첫 유럽여행의 첫 여행지라 이 날 엄청난 강행군을 했었다.
비록 로맨스는 아니지만, 우리에게도 '노팅힐'에서의 우연한 만남이 있었다. 포토벨로 마켓을 정말 걷다보면 누군가를 우연히 만날 길이 있나보다. 우리가 머물렀던 한인민박 사람들과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비록 인사만 하고 스치듯 지나간 짧은 만남이었지만 어쨌든, 우연한 만남이다.
영화를 제대로 보지 않고 갔기 때문에 노팅힐 거리에서 이야기의 인상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여행을 돌아와서 본 영화는 또 다른 느낌을 선사했다. 그냥 허투로 지나가는 공간이 좀 더 세세하게 다가온 것이다. 뒤늦게야 본 <노팅힐>을 이후로 난 '워킹타이틀'이라는 제작사에 더 깊이 빠지게 되었다.
로맨스의 명가 <워킹타이틀>
그동안 봤던 <워킹타이틀>의 영화를 한 번 되새겨 보았다. 최근작부터 훑어 보면 <트래쉬>, <사랑에 대한 모든 것>, <어바웃타임>, <레미제라블>, <어톤먼트>, <오만과 편견>, <브리짓 존스의 일기>, <러브 액츄얼리>, <어바웃 어 보이>, <노팅힐> 등이 내가 본 영화들이다. 초반에는 로맨틱 코미디에 치중했다면 점차 최근에 가까워질수록 로맨스+가족애+사회에 대한 메시지 등 소재를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렸을 적부터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좋아했던 나는, 서양의 로맨스 영화에는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다. 밑도끝도 없는 쿨함과 어딘가 느끼해 보이는 근육질 남자주인공의 미소가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위의 사진을 보라. 얼마나 상큼하고, 싱그러운 미소를 가진 배우들인지. 휴그랜트로 시작된 워킹타이틀의 로맨스 남자주인공은 이런 부담스러웠던 내 편견을 한 번에 씻어주었다. 뒤를 있는, <오만과 편견>의 매튜 맥퍼딘, <레미제라블>과 <사랑에 대한 모든것>의 에디 레드메인, <어바웃타임>의 돔놀 글리슨 역시 마찬가지다. 주연배우들의 담백함, 쿨하지 않게 감정을 그리는 워킹타이틀 표 로맨스는 늘 기분좋게 따뜻한, 맨도롱 또똣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영화였다.
워킹타이틀표 감성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감성을 건드리는 매력이 있다. 이를 오마주로 한 우리나라 드라마가 한 편 있는데, 바로 <신사의 품격>이다.
우연히 부딪친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는 너무 뻔하고, 개연성 없고,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좁은 노팅힐 거리를 걷다보면 이해하게 된다. 사람과 부딪치는 일도 많고, 아는 사람을 우연히 다시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비록 내가 부딪친 사람은 사과도 하지 않고 지나가버린 관광객들, 숙소에서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메인 스트리트를 조금만 벗어나면, 부촌 답게 선남선녀들이 참 많은 공간이다. 어쩌면 <노팅힐>이 현실이 될수도?!
음식점에도 원조집이 따로 있듯이 이야기에도 원조집이 있다. 원조집에 가면 실패는 하지 않듯이, 워킹타이틀 표 로맨스 영화도 그렇다. 혹시 이중에 보지 않은 영화가 있는 누군가에게 언제나 자신있게 추천해 줄 만큼 믿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