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 & 해리포터 스튜디오 & 9와 4분의 3 승강장
당신의 집에 한 통에 편지가 날아온다.
구석 다락방에서 구박받던 한 소년은 한 학교의 입학통지서를 받게 된다. 그 학교의 이름은 호그와트.
소년은 그렇게 마법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2000. 10. 18.
내가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라는 책을 처음 만났던 날이다. 벌써 15년 전, 엄마는 10살 무렵의 나에게 이 책을 선물했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처음 읽었던 두꺼운 이 소설책 속에는, 그 당시에는 좀처럼 상상으로 그려볼 수 없는 영국의 친구들이, 더 상상할 수 없는 마법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로부터 약 1년 뒤,
그 상상력이 그대로 표현된 영화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1~2년에 한 번씩, 그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나도 자라고 있었다.
영화 <보이후드> 속에는 실제 해리포터 출간회의 현장을 담아낸 장면이 있다. 한 소년이 자라는 모습을 담아낸 이 영화 속에서, 전세계 내 또래의 친구들이 한마음으로 공유할 단 하나의 이야기. 바로 <해리포터>시리즈다.
2014. 09. 15
그러했기 때문에, 거의 10년이 흐른 뒤, 우리의 첫 유럽, 첫 나라는 영국일 수밖에 없었다.
유럽여행 기간동안 가장 행복했던 이틀의 순간은 바로 호그와트를 찾아 떠난 여행이었다. 어제까지 아팠던 동생도 거짓말처럼 나았던 날이었다.
옥스퍼드로 향하는 길.
유로버스의 첫 예약손님은 1유로만 내고 탈 수 있다는 말에 한 푼이라도 아껴보자는 심정으로 바로 다음 차를 예매했었다. 그런데 친절한 버스기사님 덕분에 2층버스의 앞자리에 같이 탈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런던에서 옥스포드로 가려면 30분 정도 버스를 타야한다. 창밖으로 저런 집들이 보이는데!! 아니 저 집들은 영화 속에 나온 해리포터가 사는 집 같이 생겼잖아!!
옥스퍼드 대학교는 우리나라 처럼 한 곳에 뭉쳐 있는 것이 아니라, 각 건물별로 떨어져 있어서 산책하는 기분으로 다니기 좋다. 거리를 걸을 때마다 풍겨오는 런던의 담배냄새도 나지 않고, 예쁘다.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털썩 앉아 쉬면서 쿠키도 먹을 수 있다. 이 날은 정말 먹은 것도 맛있었는데 특히 저 외계인처럼 생긴 초코쿠키는 하나만 사먹은 게 후회될 정도로 맛있었다. 모르고 사먹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본점이었다!!
영화 속에서 호그와트의 홀로 쓰였던 공간이다. 영화 속에서 해리포터, 헤르미온느, 론은 이 곳에서 기숙사 배정도 받았고, 파티도 했었다. 옥스포드 곳곳이 해리포터의 배경이 되었는데, 영화 속 병원, 도서관으로 나왔던 실제 도서관 '보를레르'의 가이드 투어도 했다. 내부는 찍을 수 없어서 눈에 담아 왔지만, 실제 옥스퍼드 대학도서관의 훈남 사서도 볼 수 있었다. 다만 가이드 투어는 온리 영어로만 진행되기 때문에 수능 3점짜리 독해문제를 듣기로 푸는 것 같지만 그냥 남들 웃을 때 따라 웃으면 된다;;
2014. 09. 16
다음 날, 드디어 해리포터 스튜디오의 그날이다!!
하필 런던의 마지막 여행일에 예약을 해놓아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순간이 온 것이다!!!
셔틀버스만 봐도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생김새는 제각각이었다. 전세계 각지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보고, 이 곳까지 찾아온 사람들. 왠지모를 끈끈한 연대감이 생긴다. 셔틀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바로 저 노란 컨테이너. 해리포터 스튜디오다. 처음 들어가서 해리포터 스튜디오 기념 영상을 보는데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 내가 정말 여길 왔구나 하는 느낌.
남들은 보통 3시간이면 충분히 다 본다고 하는데, 우리는 보는데만 거의 반나절을 투자했다. 스튜디오 안의 포토존에는 나이드신 영국 할아버지가 지팡이 휘두르는 법을 가르쳐 주시면서 사진을 찍어주신다. 나를 포함한 다 큰 어른들이 그 할아버지 따라서 열심히 마법 동작을 배운다. 차마 그 사진은 창피해서 올릴 수 없지만. 이 곳에서는 모두가 이런 덕심을 폭발하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창피하지 않았다. 또 소설과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자주 마셨던 버터맥주를 마실 수 있는데, 알코올이 없기 때문에 어린이들도 마실 수 있다. 맥주라기보다는 시원한 카라멜 마끼야또 같은 맛이다.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들어가면 조그마한 어린이들이 기념품 샵에서 미리 망또부터 지팡이까지 풀장착하고 돌아다니고 있는 것을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정말 귀엽긴 하지만, 새삼 내가 해리포터와 비슷한 나이또래라는 사실이 기뻤다. 만약 내가 지금 해리포터를 처음 보았다면, 그 때만큼 재밌게 보지 못했을 것 같다. 더 어렸다면 글이 빡빡한 소설책을 읽지 못했겠지.
2014. 09. 17
<마법사의 돌>에서 마법학교에 들어간 해리는 첫 모험을 통해 진정한 친구들을 만나 우정을 알게 되고, <비밀의 방>에서는 소망의 거울에서 자신의 트라우마를 꺼내본다. 그들의 우정에도 위기가 오고, 사랑을 하는 사춘기 시절을 보낸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많이 보러 갔지만, 유독 해리포터를 보러갔던 기억은 생생하다.
하루는 초등학교 때 반 단합으로 단체관람을 했었고,
하루는 눈이 펑펑 내리던 크리스마스 이브에 가족끼리 심야영화로 보러갔다.
영화의 마지막 편은, 이제는 어른이 된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과 함께 보러갔었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과 성장의 기쁨을 함께 한다는 것,
그 이야기를 만든 사람은 얼마나 기쁠까.
'No story lives unless someone wants to listen.' -J.K. Roawl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