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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G Jul 02. 2015

런던의 마지막 밤, 오페라의 유령

런던 웨스트엔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이야기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네 번째

_음악 속에 어떻게 이야기를 녹여낼 수 있는가.

▲ 런던 웨스트엔드 '오페라의 유령' 전용극장

2014. 09. 16


  영국 런던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두 가지가 있다. 해리포터 스튜디오와 뮤지컬 관람이었는데 이 일정은 모두 이 날 하루 이루어졌다. 각각 입장료로 따지자면 거의 20만 원 가까이 들었던, 비싼 일정의 하루였다. 5일간의 런던을 여행하며 내가 느낀 가장 큰 바는 바로


런던에서는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

라는 것이다. 뮤지컬 일정을 마지막으로 잡은 것은 큰 패착이었다. 일단 한국에서는 '오페라의 유령'만 예매하고, 현장 예매로 당일 남는 티켓을 싸게 살 수 있다는 말을 가이드북에서 읽고, 그것만 믿었다. 하지만 매일 아침 티켓 박스에 남았던 연극/뮤지컬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작품들이었다. 내 상상은 <레미제라블> <위키드> <빌리 엘리엇> <맘마미아> 등등. 그런 아는 작품들이 있을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에 런던에 오게 된다면, '먹방'보다는 '뮤지컬'에 몰빵 할 것임을 스스로 굳게 다짐했다. 정말 영국 음식은 비싸기만 하고, 맛이 없다. 그래도, 굶을 지언정 즐길 곳은 많아서 다시 한 번 오고 싶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뮤지컬은 각 극장별로 하나의 작품을 공연하기 때문에 그 작품에 가장 최적화 된 공연장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언젠가는 꼭 다른 뮤지컬을 보러 가리라고 다짐했다.

▲ 오페라의 유령 극장 내부

    유일하게 본 한 작품이라 더욱 아쉽고 감명 깊었던 그 시간. 우리는 앉아서 얼른 공연시간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2층의 왼쪽 측면 쪽에 앉았지만 생각보다 작은 공연장이라 무대도 어느 정도 잘 보이고, 배우들의 표정까지도 언뜻 느낄 수 있었던 만족스러운 자리였다.


  공연 시작 전, 우리 옆자리에 앉았던 브라질에서 온 모자와 잠깐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남자분은 30대 중반의 회사원 같았고, 그 옆에는 그의 어머니가 계셨다. 두 분이서 함께 여행을 오셨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상상할 수 없는 조합이라 신기했다. 그의 어머니는 우리에게 I love you를 한국어로 어떻게 쓰는지 물었다.  남편분에게 써서 주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덕분에 브라질에서는 사랑해가 '일 띠 암(?)'이라는 것을 알았다. 작은 만남을 끝으로 불이 꺼지고, 우리는 함께 공연을 보았다. 무대가 암전하고, 천장에 달려있던 커다란 샹젤리제가 떨어지면서, 우리가 흔히  아는 'The Phantom Of The Opera'가 웅장하게 연주된다.


▲ 극장 앞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포스터

  오페라의 유령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뮤지컬이다. 오페라는 즐기지 않으면서, 오페라에 가까운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뮤지컬의 '뮤'자도 모른다. 여행을 다녀와서 운 좋게 도서관에서 듣게 된 <뮤지컬과 인문학>이란 특강을 통해 뮤지컬이 다른 극 장르와 어떻게 다르게 표현되는지, 어떤 방식으로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내는 지가 흥미로웠다. 학교에서 소설, 영화, 방송, 비슷하게는 희곡까지 배워봤지만, 뮤지컬에 대한 접근은 처음이었다. 관심 있는 분들은 강사님이 쓰신 <뮤지컬의 이해, 이동섭 저>를 참고해도 좋을  듯하다. 이번 글은 그 수업을 많이 참조했음을 미리 밝힌다. 그 강의에서 예시로 든 오페라의 유령의 힘은 바로 


팬텀의 콤플렉스 Complex

에 있다고 한다. 콤플렉스를 가졌지만, 노래를 잘 부르고 싶은 여자 주인공에게는 누구보다 신적인 존재 팬텀. 이런 팬텀의 상황은 크리스틴에게 호기심과 모성애 두 가지를 자극한다. 이는 '가면'이라는 도구를 통해  형상화된다.  콤플렉스의 사전상 의미는 '현실적인 행동이나 지각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의 감정적 관념'이다. 인간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그 안에는 가면을 벗고 싶어 하는 마음과 그대로 가면을 쓰고 싶어 하는 마음이 공존한다. 이 인간적 고뇌를 가진 팬텀의 콤플렉스는 이 이야기의 가장 큰 힘이다.


  가면을 쓴 팬텀은 남성적이고, 신 적이다. 이는 뮤지컬의 아리아로도 나타난다. 한  번쯤, 영화나 뮤지컬에서 보았던 팬텀의 등장 장면을 떠올려 보면, 팬텀의 형상이 드러나기 전에 그의 목소리부터 등장함을 알 수 있다. 강사님의 의견으로 이는 기독교에서 신의 말씀부터 등장하는 것처럼 팬텀의 형상보다 마치 신처럼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특별공연 영화 스틸컷

  오페라의 유령 속 또 하나의 명장면은 크리스틴의 목소리를  끌어올리는 팬텀의 장면이 있다. 'The Phantom Of The Opera'의 음악을 들어보면 이 둘의 감정이 쌓여가는 상황을 음악적으로 굉장히 잘 끌어낸 것을 알 수 있다. 크리스틴의 목소리가 고음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팬텀의 낮은 저음이 오르간과 함께 공격적으로 들어온다. 이는 팬텀의 남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것이고, 이 아리아를 통해 팬텀과 크리스틴의 교감을 드러낸다. 강사님의 그 해석을 들으면서 최근 보았던 드라마 <밀회>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밀회> 역시 드라마 중에서 음악을 극 속에 굉장히 잘 활용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데, 바로 김희애-유아인이 '네 손을 위한 환상곡'을 연주하는 장면이다.

▲ 드라마 <밀회> '네 손을 위한 환상곡'

  음악 속에 이야기를 어떻게 녹여내느냐는 다른 어떤 장르보다 뮤지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오페라의 유령>은 이야기의 힘과 음악의 힘을 적절하고 완벽하게 조화시킨 작품이다. 원래 나는 한 번 본 작품은 다시 보지 않는 편인데, 오페라의 유령은 영화로 2번, 뮤지컬로 1번, 뮤지컬 실황으로 1번 보았다. 그럼에도 매번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뮤지컬 넘버를 듣고 있다. 비록 그 가사는 모를지언정 음악만 들어도 그 느낌이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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