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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G Aug 27. 2015

한여름 밤의 판타지아

하시모토 역에서의 비포 선라이즈

이야기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세 번째

_누군가를 따라가서 여행하는 법


* 커버 이미지는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의  이미지입니다.

고조역으로 열차를 갈아타기 위해 멈췄던 하시모토 역. 밤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2015. 08. 15

고조역에 도착하기 전으로 다시 시간을 돌려보자. 역무원이 직접 기차표를 확인 한 뒤, 고조역으로 갈아타는 열차를 기다리며 찍었던 한 컷. 사진의 한 컷처럼 그렇게 스쳐지나 가게 될 줄 알았다. 이 때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 곳에서 하루를 머물게 될 줄은.

막차가 끊겼습니다.

 황홀했던 불꽃놀이를 다 보고 나서  엄청난 인파들을 뚫고 겨우 열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하시모토 역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K와 나는 서로 불안한 눈빛을 교환했다.


설마...


반대로 탄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역에 허겁지겁 따라 내렸다. 역무원에게 확인한 결과 반대로 탄 것이 맞단다. 난바까지 약 2시간이 걸리는 데 벌써 시간은 밤 11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하시모토 역에서 난바역까지 막차가 있을지  조마조마했다.  지도와 휴대폰을 꺼내 주변에 관광지나 볼거리가 있는지 찾아보기도 했지만,  관광지는커녕 번화가도 없는 것 같았다.


하시모토역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는 뛰었다. 역 오늘  끝마쳤다는 듯 조용했다.  . 표를 끊으려고 찾아간 매표소의 역무원은 고개를 저었다.


맙소사.

이 곳에 꼼짝없이 발이 묶인 것이다.

드라마 <심야식당> 中
심야식당, 아니 심야의 이자카야에서 만난 마스터
밤을 버티는 방법 1. 이자카야

우리는 일단 근처에 늦게까지 하는 술집을 찾기로 했다. 역을 나서는 순간 모든 것이 캄캄했다. 첫 번째 사진에서 보듯이 가게 따윈 없다. 다만 붉은 한줄기 빛이 골목 안에서 강렬하게 비추고 있었다. 나중에서야 얘기하고 보니 우리 둘 다 이 곳 불빛 첫인상은 뭔가 야리꾸리하고 이상한 가게라 짐작했을 정도로 강렬한 붉은 빛이었다. 그래도 빛이라고는 이 곳 밖에 없으니 우리는 그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간판에는 '야키토리'라고 적혀있었다. 조금은 뻑뻑한 미닫이 문을 열.         .

  몇 시에 닫냐고 물었다.

"1시까지 영업합니다."


드라마 속 마스터처럼 푸른색의 요리사 옷을 입고 있던 가게 주인 아저씨. 우리는 바에 나란히 앉아  다. 한 테이블에는 손님 3~4명이 담배를 피우며 남다른 포스로 앉아 있었다. 드문 드문 들어오는 손님들은 이 곳에 사는 주민들인지 모두들 편안한 복장이었다.

야키토리와 맥주를 한잔씩 시키고, 우리는 일단 쭉 들이켰다. 자. 이제 첫 차를 기다릴 때까지 어디에 있어야 할지 계획을 세워야 할 때다. GPS를 켜서 주변에 뭐가 있는지 찾아봤으나,


정말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고조시가 아무것도 없다더니, 이 곳이야말로 진짜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던가 보다.


우리는 앞에서 꼬치를 굽고, 요리를 하는 아저씨를 힐 쳐다보았다. 12시  반쯤  일어나면서 아저씨에게 주변에 다른 술집이나 24시간 편의점이 있냐고 묻 계획을 세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본의 경찰서 번호도 알아놓았다.


AM 12: 30

계획을 실행하고자 아저씨가 바쁘지 않은 틈을 타 물었다. 드라마 속 마스터 보다 푸근한 외모를 가지고 계셨던 분은 놀라며, 우리의 사정을 물었다. 는 하나비를 보고 막차를 놓쳤으며 여기서 첫 차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을 설명했다. 근처에 편의점은 있다는 희소식. 우리는 조금 더 이 곳을 둘러보고, 정 뭣하면 편의점에서 밤을 새우기로 했다. 자리에 일어서는 순간, 다른 손님이 아직 안 갔으니까 조금 더 있다가 일이 끝나면 편의점에 데려다 주겠다는 주인 아저씨. 우리는 미안한 마음에 맥주와 사와 한 잔씩을 또 시켰다.


AM 01:30

우리 때문인가. 다른 손님들이 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쉽게 손님에게 영업시간이 끝났다는 말을 꺼내지 못하는 성격이신 것 같았다. 뭔가 음식을 더 시키기도 애매한 시간  .       중간중간 주인 아저씨는 우리에게 이런 저런 말을 시 . 차를 내주기도 하고, 초콜릿을 주려  하시기도했다. 경주와 대마도를 여행하신 적이 있다니 더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결국 죄송한 마음에 우리가 먼저 일어나기로 했다. 정 있을 곳이 없으면 가게 안에 앉아 있다 가라는 말씀까지 했지만 그건 너무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극구 사양했다. 결국 아저씨는 우리를 편의점까지 데려다 주셨다.


밤을 버티는 방법 2. 24시간 편의점

AM 02 : 00

다행히 생각보다 널찍한 편의점에 앞에는 오피스텔인지 건물의 불빛이 있어서 제법 어둡지 않았다. 일본 여행을 하면서 몰랐던 팁이 하나 있는데, 편의점마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다는 점이다. 이 정도면 3시간 동안 버티는 데 충분할 것 같았다. 편의점에서 주전부리를 사서 결국 그 앞에 철퍼덕 앉아버린 우리.


"듣는 걸 보면 그 사람을 알게 돼."

-영화 <비긴 어게인> 中


왠지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 나의 취향이 그대로 담긴 핸드폰 속 음악을 K와 함께 들으니 <비긴 어게인>의 대사가 떠올랐다.


내게는 오래 들어서 익숙한 음악이, 낯선 곳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들으니, 다르게 다가왔다. 이상하게 친구도 나도 잠이 오지     .

2007년의 어느 날.

K와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보았다. 남녀공학이면서 단 1년, 1학년만 남녀 분반을 한 이상한 학교   단 1년이었지만 여고의 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나 대부분이 그렇듯 40명에 가까운 여자아이들은 친한  친구될 만한 무리를 탐색하고 있었다.  처음 친해진 친구들과 뭔가 안 맞다고 느끼던 중, 다른 무리의 리더 격인 친구와 글짓기 대회를 같이 나갔던 것을 계기로 마지막으로 내가 합류하게 . 그 무리 중 한 명이 K였다.


서로의 생일을 챙겨주는  벌써 9년을 맞이했다. 생일 때 얼굴은 꼭 보자는 약속 덕택에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길을 가는 중에도 생일이 모여있는 하반기에는 얼굴을 더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함께 있어 더 오래갈 수 있었 지만, 남을 잘 챙기지 못하는 내 성격상, 그 무리 속의 한 명 한 명과 개인적인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다. 그래서 K와의 이번 여행은 더욱 특별한 기억으로 남기고 싶었     .

누군가를 따라가면서 여행하는 법

혼자서 여행하면 나를 더 잘 발견하게 될 수 있다고 한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할 때는 배려가 필요하다. 나의 의견과 친구의 의견을 적절하게 반영하면 좋은 여행 메이트가 될 수 있다. 이런 '함께 여행하는 법'도 좋지만 동행인을 '따라가면서' 여행하는 법도 생각보다 꽤 흥미로운 일다.        . 이 방식을 따르자면, 우선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꽉 짜여진 일정대로 움직이기 좋아하는 동행과의 여행은 일단 편하다. 길치인 내게 완벽한 내비게이션이다. 갈 수 있는 모든 곳을 돌아다닐 수 있고, 돈도 절약할 수 있다. 많은 것을 준비해 온 덕분에 많은 것을 보고 갈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취향을 따라 여행하면, 좁은 취향의 내게 색다른 자극이 되기도 한다. 일상에서는 내 취향이 아니라면 도저히 못 견디지만, 끝이 있는 여행에서는 마음이 더 넓어지.

어느새 조금씩 밝아오고 있다. 중간 중간 편의점을 들르는 사람들이 우리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우리 역시 심심하던 중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지루한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K와의 여행도 K의 일상을 따라가 보고 싶었다. 평소에 잘 하지 않던 친구의 친구,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 같은 것이 대표적다. 친구가 이 곳에서 사귄 다른 친구를 부른다고 했을 때 잠깐 망설였지만, 원래의 K를 따라가는 여행을 하겠다는 나만의 다짐을 생각하며 그러기로 했다.


이 곳에서 노숙의 경  여행 역사상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 한국에서도 외국 어디에서도 이런 경험이 없었다. 다음 날 교를 갔던 것이나, 오사카의 핫플레이스 도톤보리를 구경하던  것보다 강렬한 기억이다.


덕분에 오사카의 더 깊숙한 곳과 K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었다.


비포 선라이즈

영화 <비포 선라이즈>는 기차에서 처음 만난 남녀가 하룻밤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며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비록 우리는 남녀    로맨 아닌 9년이나 알아 온 동성 친구 사이지만 많은 것을 몰랐음을 깨달았다. 한 편으로는 이렇게나 서로 닮고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는 것도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말이 끊이지 않다가도, 어느 순간 말을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는 사이.  


우리는 첫차에서 해가 뜨는 풍경을 바라보다가 스르르 눈을 감았다. 깨어나니 한여름 밤의 꿈       .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에 우리만 널브러져   .  서로의 모습을 보며 민망함에  뻘쭘한 미 .


글. Storytraveller

사진. Storytrave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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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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