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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G Sep 08. 2015

차가운 길을 함께 걷다, 눈길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드라마 <눈길>

이야기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네 번째

_겪지 않았던 일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힘

드라마 <눈길>
2015. 09. 05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끼익-

퉁.

출처: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

입구를 여는 문은 무거웠다. 깜깜하고 좁은 인포메이. 유일한 빛은 노란 빛 . 오디오북과 입장권으로 이 달의 주인공인 '배봉기' 할머니의 일생이 담긴 카드를 받았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입구보다 더욱 무거운   문.


타닥타닥-

쿵.


군홧발 소리가 들리고, 철제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린다.


어그적 어그적-

바닥에 깔려있는  밟으며 좁은 길을 걷는다. 벽에는 소복을 입은 소녀들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공간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어야 했던 전쟁과 고   .

언제 활기찬 홍대와 망원동 뒷골목에는 작은 박물관이 하나 있다. 예전에 들었던 건축 특강에서 가볼만한 곳이라는 추천을 받았었다. 2012    . 특강에서는 안에 있는 소장품보다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세계 여러 건축물들에 대한 소개를 들었었다.      우리나 그런 추세로 흘러가는 것 같다.   그중 대표적인 건축물이 바로 이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이다.

  쇄석길을 지나면 받았던 카드 속 주인공 영상이 나온다. 많은 희생자가 있지만, 한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함으로써 더욱 와 닿  . 카드의 내용을 옮겨 적으면 다음과 같다.

1914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배봉기는 "남쪽 섬에 가면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일본인의 취업사기에 걸려들어 1943년에 오키나와 도카시키 섬으로 끌려갔다. [빨간 기와로 된 위안소]에서 일본 군인들의 성노예로 몇 달을 지내던 중, 미군의 공습으로 위안소가 불타면서 산 속을 피난 다니다가 일본군의 취사반에 투입됐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군에 투항한 일본군과 함께 진지를 나와 미군의 민간인 수용소에 수용됐다. 수용소를 나온 후에는 성매매와 온갖 궂은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간신히 살았다. 1975년 지역신문에 사연이 보도되면서 세상에 알려진 후 1991년 77세에 오키나와에서 생을 마감했다.

영상이 반복되며 재생되고 있고, 한쪽 구석에는 몸을 구부려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방의 입구가 있다.

출처: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지하전시관에 꾸며진 작은 방은,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낮은 천장. 영상이 다 끝나기도 전에 나오고 싶을 정도로 답답한 공간이었다. 어둑하고 좁은 공간, 지하와 위층을 오가는 미로 같은 내 무서울 정도였다. 공포를 체험하는 체험관도 아니고, 그 공간에 그들의 삶을 옮겨 놓은  것뿐인데, 몸이 떨리는 것   .

어둑한 공간이 마치 그들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면, 전시실은 우리를 현실로 돌아오게 만든다. 전시관에는 그녀들의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힘겹게 싸워 온 순간들  . 그 순간들을 보면서, 떠오르는 드라마 한 편이 있었다. 전시관에서는     머릿속에서는 그 드라마   . 다큐가 아닌 상업 영화나, 드라마로는 '위안부'를 다룬 소재는 최초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바로 올해 3.1절 특집으로 한 드라마 <눈길>이다.


드라마 <눈길>

이 글의 첫 이미지로 종분(김향기)과 영애(김새론)의 환한 미소를 선택한 이유는 끔찍한 일이 있기 전    평범하고 예뻤을 얼굴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픽션인 드라마니까 볼 수 있는 얼굴.


드라마 <비밀>과 다수의 단막극에서 만났던 유보라 작가의 작품  인물의 심리와 내적인 갈등을 섬세하게 풀어낸다는 다. 보통 드라마는 영상으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인물 간의 갈등이 주된 편인데, 이 작가의 드라마를 보고 나면   인물들의 내면이 오히려 더 기억에 남는다.   ,    . 그래서 위안부를 소재로 한  <눈길>이라는 작품이 기대가 되었다.

드라마는 '현재-과거-현재'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의 '종분(김영옥)'은 살아남은 할머니들 중 한 명이다. 그 옆집에는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살아가는 철없는 고등학생 은수가 산다. 종분은 그런 은수의 모습을 보며, 과거를 떠올린다.  , 남부럽지 않던 부잣집 딸 영애(김새론)와 함께 끌려간 종분(김향기)  .


영애는 겉으로 보기에는 강하고 심지가 굳어보이지만 그 안은 늘 위태롭다. 종분은 언뜻 보면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 같지만, 누구보다 영애 옆에서 위로가 되어 주는 속이 강한 다. 이 둘은 곧 깨질 것 같은 얼음 위를 걸으며 도망가고, 무릎까지 쌓인    헤쳐 나간다. 이 과정에서  정리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마주한다.

드라마는 이들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보다는 이들이 있는 공간을 통해 그 고통의 순간을 유추하게끔 한다. 연출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해 전주 국제 영화제에서 2부작이 묶여 한 편의 영화로 상영되었었다. 좋은 작품이지만, 두 번은 보지 못할 아픈 내용을 담았기 때문에 영화제에서 보지는 못했지만, 영화관에서 보면 훨씬 와 닿을 장면들이 떠올라 아쉬웠다.

박물관 벽면을 채운 메시지들

전시를 둘러보고 나면, 소박한 정원 안쪽에 베트남 전쟁에서 우리와 똑같은 피해를 겪었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곳이 있다.

“나도 일본군인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겪었는데, 베트남 여성들도 우리 한국군인들에게 나와 똑같은 아픔을 겪었다고 들었습니다. 한국 사람으로서 너무나 죄송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뭔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은 힘껏 하겠습니다.”  
타인의 아픔이 조롱거리가 되고, ‘공감’이 ‘능력’이 되어버린 안타까운 사회입니다. 상처 입은 사람은 약하지만 그들이 서로를 보듬고 연대하는 모습을 통해 이 척박한 현실에도 희망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드라마 <눈길>의 기획의도 중

마지막 장소는 할머니들의 이름이 적힌 벽돌에 꽃을 꽂으며 추모하는 테라스로 연결된다. 일부러 가장 볕이 밝은 곳에 위치시켰다는 이 곳. 검은 벽돌 사이사이로 빛이 들어와 반짝거린다.


글. Storytraveller

사진. Storytrave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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