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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G Sep 11. 2015

망원동에 가면 장미여관을 볼 수 있나요?

이야기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다섯 번째

_거칠지만 부드럽고, 찌질해 보이지만 있어 보이는 반전 매력

2015. 09. 05
망원동에 가면 장미여관을 볼 수 있나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가 보다.

홍대에 놀러와도 그냥 번화한 거리만 다녔었고, 이곳에 온 것은 이 날이 처음이었다. TV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와 <무한도전>에서 망원동 옥탑방 라이프를 즐기는 모습이 많이 방영되면서 내심 진짜 '망원동에 가면 장미여관 볼 수 있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서울 가면 연예인 만날 줄 아는 촌  사람처럼.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에서 정신력을 쏙 빼 놓은 것을, 카페에서 커피와 수다로 보충하고, 유명하다던 고로케를 먹으러 망원시장을 향했다. 시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검은색 연예인 밴이 한 대 서 있었다. 우리는 뭐야. 촬영 온 거야? 라며 궁금해했다. 그런데 이 길을 지나가는 사람 어느 누구도 밴을 거들떠도 안 보는 것이다. 잘 모르는  연예인인가.라고 생각하던 차에 밴이 세워져 있던 가게에서 한 사람이 나왔다.

뽀글 머리. 헐렁한 난닝구와 반바지.

다들 아는 바로 그, 육중완이다. 그의 노래들에 많이 나오는 단어인 '백수' 패션을 하고 TV에서 보던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 한 것처럼 가게에서 걸어나왔다. 밴 안에서는 또 한 멤버가 문도 닫지 않은 채 앉아있었다. 행인들도 아무렇지 않고, 본인들도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 그동안 다양한 곳에서 꽤 많은 연예인을 봤지만 서로 이런 아무렇지 않은 반응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곳의 외지인인 우리만 놀랐던 건가.


아는 척 하기도 뭐해서, 우리는 가던 방향을 따라 망원시장으로 향했다. 그는 오늘이 아니라도 망원동에 자주 출몰하는지 상점 곳곳에는 장미여관의 인증샷이 박혀 있었다. 망원시장에서는 그가 망원 시장인 것 같았다. 우연히 마주친 '장미여관'. 떠오른 김에 내 플레이리스트 속에 있던 그들의 노래를 꺼내보려고 한다.


거칠지만 부드럽고,
찌질하지만 있어 보이는


대중 음악에 촉을 세우고 신곡을 따라가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장미여관'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무한도전 가요제의 출연 이후였다. 다소 거칠어 보이는 비주얼로 홍대에서 인기 있는 밴드라고 했을 때, 이들이 음악은 내 취향이 아니라고 단정 지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무한도전에서 옥탑방에서 <봉숙이>라는 음악을 듣는 순간 내 편견이 깨졌다.

찌질하지만 있어 보이는, <봉숙이>

음악을 들을 때, 가사를 듣는 사람과 목소리와 반주를 듣는 사람이 있다. 나는 완전 후자다. 자주 듣는 음악을 흥얼거리면, 옆에서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가사야?'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소리'만 듣는다. 그런 내게 <봉숙이>의 첫 느낌은 고급스러운 선율과 거칠지만 생각보다 부드러운 음색에 와-  좋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듣다 보니, 평소에는 절대 들리지 않던 가사가 들렸다. 음악의 분위기와 정 반대로 따로 노는 찌질한 가사 때문이었다. 웃겼다. 가사만 보면, 찌질한 남자의 질척거림이 느껴지지만, 음악으로 들으면 꿀 발라 놓은 것 같은 반전 매력의 노래.

야 봉숙아 말라고 집에 드갈라고 꿀발라스 났드나
나도 함 묵어보자 (묵어보자)
아까는 집에 안간다고 데낄라 시키돌라 케서
시키났드만 집에 간다 말이고

* 못드간다 못 간단 말이다
이 술 우짜고 집에 간단 말이고
못드간다 못 간단 말이다
묵고 가든지 니가 내고 가든지

야 봉숙아 택시는 말라 잡을라고
오빠 술 다 깨면 집에다 태아줄게 (태아줄게)

저기서 술만 깨고 가자 딱 30분만 셔따 가자
아줌마 저희 술만 깨고 갈께요
-<봉숙이> 가사 中


00:42 부터 들어주세요
거칠지만 부드러운, <마성의 치킨>

언제부터인가 분 대한민국의 '치킨 열풍'. 특히 치킨과 맥주는 세계에서도 좀처럼 없는 조합이라고 한다. 이제는 '김치'와 '불고기'가 아닌 '치킨'으로 우리나라의 특성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은 치킨에 대한 이들의 헌정가. 동요 같은 반복된 가사와 멜로디에 얹힌 가사 속에는, 칼퇴 후 마시는 치맥. 거칠한 후라이드 안에 부드러운 치킨의 속살처럼, 거칠지만 부드러움이 묻어나는 노래.

 나 너를 처음 본 순간 두 눈이 멀고 말았네
달콤한 그 향기까지 (마성의 매력)
부드런 너의 살결은 우윳빛 눈이 부시고
참을 수 없는 유혹에 빠져들고 말았지
나는 참을 수가 없어 자꾸만 숨이 너무 막혀서
너에게 다가가는데 (오늘밤)
이제는 참을 수 없어 제발 날 허락해줘요
마성에 빠져버려 오늘밤은 제게 그댈 맡겨줘요

난 네게 빠져버렸어 하루도 참지 못하고
아무런 일도 못 하네 (마성의 매력)
퇴근 시간만 기다려 널 보는 그 순간만을
오늘 난 칼퇴하고서 널 보러 달려갈거야
나는 참을 수가 없어 자꾸만 숨이 너무 막혀서
전화길 들고 말았네 (오늘밤)
이제는 참을 수 없어 망원동 파란 집 대문
아저씨 반반이요 하얀 무는 두 개 그리고 콜라 큰 거 주세요

손이가 너의 다리에 가슴에 참을 수 없는 유혹에
손이가 자꾸 손이가 오늘밤도 너를 찾네
손이가 자꾸 손이가 오늘은 참아야 하는데
하루도 참을 수 없는 매일 밤 치킨의 유혹
-<마성의 치킨> 가사 中


오 차장과 싱크로율 100%, <로망>

국민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미생>의 OST <로망>에서는 붉은 핏줄 선 오 차장의 눈과 거친 외모의 느낌이 잘 표현되도록, 세 곡 중 가장 거친 음색이 담겨있는 노래다. 정글 같은 회사생활의 공감의 순간, 가슴을 후벼 파는 명대사가 나오는 매회 마지막 장면에 흘러나오는 노래. 오 차장(이성민)의 테마곡으로 이보다 적절한 노래가 있을까.


거칠지만 부드럽고, 찌질하지만 있어 보이는 반전 매력의 '장미여관'. 각 곡의 끝은 결국 '공감'이었기에 이 노래들이 사랑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나저나 망원동에 가면 자주 장미여관을 볼 수 있는 건가. 처음 간 나도 보았으니.


글. Storytrave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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