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맛을 빚는 장인들의 이야기
이번에 읽은 책은 조금 다른 느낌의 '여행서'였다. 분명, 책의 첫 표지나 대충 한번 훑어본다면 전혀 여행서 같지 않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면, 책의 저자와 함께 색다른 우리나라를 여행하고 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나는 '자연'보다는 '도시'가 좋은 사람이다. 잠시 자연 속에서 콧바람을 쐬는 것은 좋지만, 즐길 것이 없는 자연에서의 삶을 상상하면 지루하기만 하다. 지나가는 나무나 꽃이 뭔지도 모르고, 농작물들이 어떻게 자라는지도 모르는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 이 책은 시골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 댁을 놀러가는 기분이 들게 했다.
'자연' 속에 사는 '덕후'는 그렇게 '장인'이 된다.
간장, 된장, 토종꿀, 식초, 매실, 요구르트와 치즈, 참기름과 들기름, 토판 천일염, 토하젓, 조청, 하향주...
책을 보면서 '덕후'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단어가 떠올랐다. 가업을 이어 장을 만들고, 토종벌과 사랑에 빠지고, 다양한 맛과 효능을 시험하며 식초를 만들고, 어머니의 맛을 떠올리며 조청을 만든다. 다른나라의 음식이 익히거나 날 것이 대부분이라면, 우리나라의 장이나 자연에서 오는 재료들은 오랜 숙성과 발효, 사람의 정성이 필요하다. 이들이 장인이 되기 까지는 우리나라의 자연의 맛에 푹 빠진 덕후의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자식을 키우는 마음으로 우리의 맛을 빚었다. 전통의 맛을 이어가면서 새로 발견한 각자의 방법을 시도하며 즐거움을 얻는 것이 그들의 삶이었다.
흑백의 사진과 담담한 어투,
한 편의 음식 다큐 같은 책
졸업논문과 학교 수업과 과제를 따라가느라 시간에 쫒기며 쉴 새 없이 바쁘다가 얻은 공강 첫 날. 어쩌다보니 리뷰서까지 읽어야 하는 상황이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선선한 가을날, 느즈막히 일어나 책을 펼치자 시간은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다. 흑백의 사진은 장인들이 담가온 오랜 맛의 세월을 느끼게 했다. '자연'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그들의 삶에 빠져들었다. 아마도 그들의 천천히 기다리는 삶이 이 책을 읽었을 당시 필요했던 것 같았다. 방송작가 출신의 작가 분이라서 그런지 <한국인의 밥상> 같은 한 편의 다큐 나레이션을 보는 것처럼 담담한 어투도 인상적이었다. 흑백 사진과 글밖에 없는데도 음식들의 고소함에 군침이 돌기도 했다. 또한 자연이 생소한 내게 그 풍경이 눈 앞에 그림으로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 어떤 먹방보다 강력한
<삼시세끼>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자급자족하여 만든 소박한 밥상이 그렇게 맛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건강한 맛은 왠지 식욕을 자극하지 않는데, 책 속에 정성과 애정이 가득 담긴 우리 맛의 재료들로 건강한 밥상이 먹고 싶어졌다. 다행히 우리 집에는 시골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내주신 자연의 맛들이 있다. 그것들로 한 상 차려먹고 싶은 기분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컬러 사진은 본 책과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