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삶의 한 장면, <미라클 벨리에>
명절 연휴가 일주일이나 지났지만 명절 하면 보편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기름진 음식, 꽉 막힌 도로,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 등. 이에 못지않게 떠오르는 것이 있는데 바로 TV에서 준비한 명절 맞이 영화 편성표일 것이다.
이번 연휴에도 공중파부터 케이블까지 다양한 영화 상차림이 펼쳐져 있었다. 그중 눈에 띄는 한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미라클 벨리에>였다.
<미라클 벨리에>는 2014년 에릭 라티고 감독에 의해 제작된 작품으로 우리나라에는 작년에 개봉된 프랑스 가족영화다. 개봉 당시, 조용한 흥행으로 관객 수백만을 넘겼던 작품이다. 영화의 줄거리를 간단히 짚고 넘어가면 다음과 같다.
프랑스 시골 마을에 사는 주인공 폴라는 겉으로 보기에 평범한 10대 소녀다. 폴라는 가족 중 유일하게 듣고 말할 수 있는 조금 특별한 가정환경에서 자라고 있다. 우연히 좋아하는 소년을 따라 들어간 교내 합창부에서 자신이 노래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만 그 꿈을 펼치기엔 그녀에게 닥친 현실이 녹록지 않다.
영화는 2014년 프랑스 베스트셀러 <수화, 소리, 사랑해! 베로니크의 CODA 다이어리>를 원작으로 한 실화를 모티브로 했다. 실제로 청각 장애인 가정에서 자란 프랑스 작가 베로니크 풀랑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장애를 가진 부모와 비장애인 자식 간의 에피소드를 영화에 녹여낸 것이다.
사회의 모든 영역에는 주류가 있으면 비주류가 있고, 다수자가 있으면 소수자가 있다. 우리는 대부분 장애인을 소수자로 분류한다. 그런데 영화 속 벨리에 가족의 세계에서는 반대다.
엄마, 아빠, 그리고 남동생까지 청각 장애인인 가정에서 유일하게 폴라만 비장애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다수가 장애인인 가족 틈에서 오히려 벨리에 가족의 삶이 지극히 일상적으로 보이는 이유다. 물론 벨리에 가족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개발을 하려는 시장 후보라는 주류가 있긴 하지만 폴라의 아빠가 시장 후보에 출마하여 유쾌하게 맞설 수 있는 것도 역전된 세계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그러니 예민한 사춘기 소녀 폴라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죄책감뿐 아니라 가족 내에서 혼자만 다른 사람인 것 같은 묘한 소외감을 느끼는 것도 문제가 아니다. 결국, 벨리에 가족 간의 복잡 미묘한 감정은 술에 취한 엄마에 의해 직접 드러나게 된다.
평생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을 미워하며 살았던 벨리에 부부였다. 그런데 자신이 가장 사랑해줘야 할 딸이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태어났다. 그 마음을 짐작하긴 어렵지만, 기쁨과 당혹, 안도감과 불안이 끊임없이 소용돌이를 일으켰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영화는 시골 소녀가 몰랐던 재능을 발견하는 성장 스토리로 보인다. 그러나 영화의 제목은 ‘미라클 폴라’가 아닌 <미라클 벨리에>다. 감독은 폴라의 재능이 아닌 벨리에 부부의 성장 이야기에 방점을 찍었다.
폴라의 노래가 가장 극적인 순간에 다다를 때 음소거 처리를 하여, 관객들에게 벨리에 부부의 입장이 되게 만든다. 그러나 그 노래를 들을 순간은 있다. 딸의 목울대를 만지며 노래를 듣는 아빠, 가족들에게 노래에 담긴 마음과 의미를 전달하는 폴라의 모습은 부디 영화로 확인하시길.
본 글은 인터넷 신문 <에이블뉴스> '영화 속 삶의 한 장면' 코너를 통해 연재하고 있는 글입니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에 주목하여 서로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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