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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G Feb 15. 2016

듣는 것, 보는 것, 기다리는 것에 대하여

영화 속 삶의 한 장면, <청설>

장애를 다룬 영화를 보고 나면, 주로 먹먹함 혹은 따뜻함의 감정들이 남곤 한다. 어떤 하나의 소재를 비슷한 감성으로만 소비하는 것이 조금은 답답하던 중 2009년 작 영화 <청설>을 만났다. <청설>은 ‘장애’라는 소재를 활용했지만, 풋풋하고 활기찬 청춘 영화다.

<청설>은 온종일 아르바이트를 하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양양과 도시락 배달을 하는 티엔커의 사랑 이야기다. 그러나 사랑 이야기 못지않게 비중 있는 이야기의 또 한 축이 있다. 바로 청각장애인 수영선수 언니 샤오펑과 양양의 자매애다.

영상 매체에서 오디오는 중요하다. 특히 TV 방송에서는 내용 중 정적은 치명적이다. 물론 영화는 영상이 주는 상징을 위해 대사를 최소화하는 경우가 있다. <청설>은 영화 대부분 정적이 흐른다. 그러나 수다스럽다. 주인공들이 모두 수화로 대화하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의 목소리가 사라진 뒤, 보이는 것은 훨씬 더 많아진다는 것을 관객에게 느끼게 하기 위한 감독의 선택이었던 듯하다.

영화는 전혀 반전이 없을 것 같지만 뜻밖에 반전이 있다. 여기서 잠깐, 스포일러를 방지하고 싶다면 뒤로 버튼을 눌러주시길 바란다. 청각장애인 수영 연습장에서 도시락 배달로 만난 남녀 주인공은 서로를 청각 장애인으로 오해한 채 사랑에 빠지는데, 영화 마지막 5분에 이런 반전을 숨겨두었던 데는 감정을 교류하는 데 있어 한 감각의 부재가 그리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듣지 못하는 만큼 볼 수 있다’는 의도를 강조한 것이다. 물론 이 부분이 아쉬운 점은 많다. 해피엔딩을 위해 내린 쉬운 선택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유는 남녀 주인공 감정선을 세심하게 그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양양과 청각 장애인 언니 샤오펑의 이야기가 더욱 인상적이었다. 샤오펑은 데플림픽을 준비하는 수영선수다. 올림픽에 대한 대중적 관심으로 패럴림픽이 함께 열린다는 사실은 많은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다. 물론 정기 올림픽에 비해 그 관심이 너무 금방 식어버리긴 하지만 말이다. 특히 한국 스포츠 영화에서 올림픽은 흥행 소재로 자주 쓰이지만, 패럴림픽에 관한 영화가 없는 것도 그 관심의 차이를 느끼게 한다. 그런데 영화 <청설>은 대중 영화속 소재로 데플림픽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데플림픽은 데프(Deaf)와 올림픽(Olympic)을 합쳐 이르는 말로, 4년마다 개최되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올림픽이다.


언니 샤오펑은 자신을 뒷바라지하느라 꿈이 없는 양양이 미안하면서 부담스럽다. 화재 사건 때 언니를 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가진 양양에게 샤오펑은 감정을 쏟아낸다. 샤오펑도 양양의 희생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를 재촉하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서로를 위한답시고 기다려주는 방법에 미숙했던 자매는 이제야 서로를 더욱 이해하게 된다.


아쉬운 부분이 많은 영화지만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있다. 샤오펑이 피아노 소리가 좋은지 묻자 왈칵 울어버렸다는 양양. 이 세상 모든 소리를 다 들려주고 싶어서 수화를 배웠다고 말한다. 그러자 티엔커도 양양에게 비 오는 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대답 한다. 서로에게 향하는 마음을 담은 소리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정체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풋풋한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다.


본 글은 인터넷 신문 <에이블뉴스> '영화 속 삶의 한 장면' 코너를 통해 연재하고 있는 글입니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에 주목하여 서로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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