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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G Mar 04. 2016

최초의 길, 최초의 용기

영화 속 삶의 한 장면, <대니쉬 걸>

지난 2월 28일 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다. 인종차별이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오스카상을 받느니 등의 예년과 비슷한 이슈가 떠올랐다. 어쨌든 아카데미는 국내에서 가장 관심 있는 해외 영화제인 것만은 분명했다. 

이번에는 한국 배우 이병헌과 조수미의 참석도 국내의 이슈에 한몫했다. 디카프리오는 5번의 도전 끝에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작년에 남우주연상을 받은 에디 레드메인은 올해에도 후보에 올랐으나 연속 수상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연기한 알라시아 비칸데르는 여우 조연상을 거머쥘 수 있었다. 그들이 연기한 작품이 바로 <대니쉬 걸>이었다.

<대니쉬 걸>은 <킹스 스피치>, <레미제라블>로 유명한 톰 후퍼 감독의 작품으로, 세계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화가 에이나르 베게너(릴리 엘베)의 전기를 담은 영화다.’ 라고 설명할 수 있겠으나, 사실 그의 아내 게르다 베게너가 더욱 돋보이는 영화였다.


트랜스젠더는 하나의 성의 신체를 갖고 태어났지만, 정신적으로 자신이 반대 성이라고 인식하는, 성적 주체성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많은 사람이 트랜스 젠더는 동성애자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트랜스젠더는 반대되는 성 ‘역할’에 그치지 않고 자신을 반대의 성이라 ‘인식’한다. <대니쉬 걸>에서는 이에 대한 표현과 구별을 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에이나르가 처음 여자로 인식한 순간들은 다음과 같다. 발레리나의 치마와 스타킹, 아내의 속옷을 입어보고 싶다는 호기심. 그는 여자의 몸, 몸짓, 행동, 꾸미는 것을 동경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자로서 온전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교 모임에 나가 한 남자(헨릭)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에이나르(릴리)를 동성애의 대상으로 생각해 접근했다. 온전히 여성으로 인식한 상태로 그를 대했던 에이나르는 혼란에 빠진다.



감독이 주목한 인물은 어렸을 적 자신도 모르게 이성적으로 끌렸던 상대인 한스, 새로운 상대인 헨릭도 아닌 그의 아내였다. 다시 재회한 한스나 새로운 연인 헨릭과의 성적 교감은 의도적일 만큼 배재하고 오직 에이나르와 게르다에 집중한다.


게르다는 남편의 여성성을 깨닫게 하였으며, 완전히 여성으로 인식한 순간부터는 언니처럼, 최초의 성전환 수술을 감행할 때는 엄마처럼 항상 그의 곁에 있었다.


모든 병원에서는 그를 정신병으로 치부하고, 원래 성을 되찾기 위한 강압적인 수술과 검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게르다만 유일하게 그를 이해하고 여성의 성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에이나르가 온 신경으로 자신 내면의 여성성에 집중할 때, 그 옆에서 수많은 심리적 변화를 겪어야 했던 것은 게르다였다.



칼럼을 쓰면서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은 생각할수록 모호했다. 시대에 따라, 문화에 따라, 국가에 따라 그 경계는 달랐으며, 개인마다 또 다르다.


1920년대에는 에이나르 베게너를 대했던 의사들처럼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원래의 성으로 돌아가게끔 강제적인 것만이 치료였다. 하지만 지금은 수술을 통해 인식하고 있는 성을 찾을 수 있는 치료를 하고 있다.


이는 최초의 길, 최초의 용기를 낸 에이나르 베게너(릴리 엘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최초의 길을 함께했던 아내 게르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물론 이는 영화 속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두 사람은 수술 후 결혼 무효 판결을 받고 헤어졌다. 영화는 역시 영화일 뿐인가.


본 글은 인터넷 신문 <에이블뉴스> '영화 속 삶의 한 장면' 코너를 통해 연재하고 있는 글입니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에 주목하여 서로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 지난 글 읽기 -

1편. 이제 뭐 하지? , <언터처블 1%의 우정>

2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담긴 의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3편. 듣는 것, 보는 것, 기다리는것에 대하여, <청설>

4편. 서로를 보며 성장하는 관계, 가족, <미라클벨리에>

5편. 두 남자가 일주일을 사는 법, <제8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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