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삶의 한 장면, <열두 살 샘>
백혈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영화 <열두 살 샘>의 주인공 샘은 이렇게 질문했다. ‘신은 왜 아이들에게 병을 주시는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어른은 몇이나 될까. 아마 신이 있다 해도, 아마 신조차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일 것이다.
영화는 12살 소년 샘이 죽음 직전까지 자신의 모든 생각과 삶을 영상과 글로 기록하고, 죽기 전 버킷리스트를 실행하는 과정을 담았다. 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의 원제는 ‘Ways to Live Forever’다.
이를 우리나라에서는 <열두 살 샘>으로 번역했는데 관객들의 평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니, 이 번역 제목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야기의 시선을 ‘삶과 죽음을 앞둔 아이’가 아니라 ‘열두 살 아이’의 이야기로 바라볼 때, 영화의 감정선을 훨씬 섬세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열두 살은 어떤 나이일까. 어른들에게는 여전히 꼬맹이겠지만, 열두 살 즈음의 나를 돌이켜보면, 책이나 영상을 통해 새로운 것을 빠르게 이해할 수 있으며, 신체적, 정신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던 시기였다. 또한, 자신을 대하는 타인의 행동이나 생각에 대해서도 민감해진다. 아이는 어른들의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눈치챈다. 그래서 몰래 간직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지는 나이일 것이다.
‘샘’은 자신의 병을 거의 이해하고 있다. 자신의 병의 기원을 책을 통해 이해하고, 스스로 몸의 변화를 통해 직접 경험한 병에 대한 증상과 치료과정도 알고 있다. 다만 평범한 또래 아이와 다른 점은, 성장하는 자신의 몸이 아니라 병으로 인해 남겨진 몸의 흔적들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넓지 않은 아이의 세계 속에서 샘의 ‘병’은 관계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샘은 자신의 병 때문에 형성된 가족 내의 공기를 예민하게 느끼고 있다. 아빠는 샘의 병 이야기가 나왔을 때, 헛기침하며 의도적으로 피한다. 아들이 아픈 것이 아닐 거라고 믿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성가대 활동을 열심히 한다. 무언가 의지할 곳이 필요한 것일 것이다. 여동생은 관심 받는 게 좋아서 성당에 간다. 아마 평소에 오빠 샘에 집중된 관심 때문일 것이다.
특히 샘이 코피라도 터지는 날이면, 여동생은 너무나 익숙하다는 듯 엄마에게 휴지를 건네고, 엄마는 허겁지겁 달려와 샘을 아기 취급하며 보살핀다. 아빠는 꼼짝 않고 이상한 표정으로 외계인 보듯이 자신을 보고 있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눈치채며, 상처도 받지만 그러기에 동시에 이해할 수도 있게 된다. 영화는 죽음을 앞둔 기록과 동시에 열두 살 샘의 성장 또한 함께 담아낸다.
나의 열두 살을 떠올려 보면, 현실에서 접할 수 없는 모든 것이 궁금했다. 특히 ‘죽음’이라는 단어는 멀게 느껴지면서도 궁금하고 두려운 단어였다. 아마 영화 속에서 병원에서 만난 절친 ‘펠릭스’와 ‘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물론 어렸을 적 막연히 상상했던 죽음과 정말 죽음을 앞둔 아이들과는 다르겠지만, 그 아이들 역시 그에 대한 궁금증을 감출 수는 없다. ‘펠릭스’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샘’에게 자신이 죽는 순간을 잘 기록해 놓으라는 말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어린아이의 호기심이다. 성장과 함께 죽음을 기록하는 열두 살 샘과 펠릭스, 영화는 한 편으로는 어린아이 같으면서도, 너무 빠른 죽음 앞에서 커버릴 수밖에 없는 소년의 성장을 담아냈다.
본 글은 인터넷 신문 <에이블뉴스> '영화 속 삶의 한 장면' 코너를 통해 연재하고 있는 글입니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에 주목하여 서로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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