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삶의 한 장면, <반짝이는 박수 소리>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여태껏 연재했던 장애를 다룬 영화는 전부 외국영화면서 허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극 영화였다. 그런 점에서 첫 한국 영화이자, 다큐멘터리 영화인 <반짝이는 박수 소리>는 훨씬 친근하고 공감할 수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비장애인인 딸이 감독이 되어 장애인인 부모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은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다큐멘터리, TV 교양 프로그램에서 장애를 그리는 방식은 대부분 장애인을 우리가 도와주어야 할 사람으로 단정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그들의 이야기를 담기 때문에 부자연스러운 장면이 많다. 그러나 <반짝이는 박수 소리>는 누구보다 가장 그들의 곁에 오래 있었던 사람의 시선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굉장히 자연스럽다. 게다가 그들을 보고 동정이 아닌, 동경이 느껴질 정도로 반짝거리는 가족의 이야기 담고 있었다.
말을 할 수 있을 때부터 청각 장애인인 엄마, 아빠의 입이 되었던 딸은 이제는 카메라를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길보라 감독과 비슷한 또래여서 그런지 영화 속 부모의 삶보다 감독이 자라오면서 이 영화를 만들기까지 느꼈을 감정들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그녀는 9살에 전세, 월세, 빚에 대해 통역해야 했던 때부터, 홀로 배낭여행을 떠나서 까지도 얼굴을 모르는 사람에게 계속해서 부모님의 장애를 설명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장애’를 한 단어로 설명해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영화’였어야 했나 보다. ‘미세한 얼굴근육’, ‘직관적인 문장’, 덧붙여 딸을 바라보며 말하는 반짝이는 눈빛까지 담아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것이 그녀가 가족 안에서 ‘드넓은 침묵을 이해하고자’ 선택했던 방법이다.
얼마 전 다루었던 <미라클 벨리에>도 청각 장애인 부모 사이에서 비장애인으로 태어난 딸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영화의 극적 상황 설정 때문에 그들의 일상을 상상할 수 없었는데 <반짝이는 박수소리>는 보다 더 일상적인 에피소드를 많이 담고 있었다.
사람의 목소리가 없는 공간에서 밥하는 소리를 비롯해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소리는 더욱 크게 들린다. 부모는 첫 딸을 낳고, 밤에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오랜 여행 끝에 집으로 돌아온 딸이 현관문을 열자 맞이하는 건 주파수가 맞춰지지 않은 지직거리는 라디오 소리였다.
영화는 소리뿐 아니라 반짝이는 것에도 주목했다. 영화 속에는 반짝이는 장면이 크게 세 가지의 방식으로 나온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반짝이는 불빛 장식을 꾸미는 오프닝 장면이 첫 번째다. 로맨틱한 분위기는 부모님의 연애 시절을 잇는 장면이다. 두 번째 반짝임은, 다큐멘터리 사이마다 수화하는 손을 클로즈업 한 장면이다. 그 손의 움직임은 아주 밝은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 반짝임은 가족끼리 함께 간 노래방의 미러볼이다. 이처럼 영화 속에 반짝거리는 것들은 영화 속 가족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박수는 손바닥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한다. 이 말은 상대편 없이 혼자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손바닥을 마주치면 소리만 나는 것은 아니다. 손으로 말하며 반짝거리며 사는 이들만의 소리가 듣고 싶은 분들에게 이 영화를 건넨다.
본 글은 인터넷 신문 <에이블뉴스> '영화 속 삶의 한 장면' 코너를 통해 연재하고 있는 글입니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에 주목하여 서로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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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듣는 것, 보는 것, 기다리는것에 대하여, <청설>
4편. 서로를 보며 성장하는 관계, 가족, <미라클벨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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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편. 최초의 길, 최초의 용기, <대니쉬걸>
8편. 성장과 함께 죽음을 기록하는 '열두살 샘', <열두살 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