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삶의 한 장면, '잠수종과 나비'
당장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삶이다. 영화 '잠수종과 나비' 속 주인공도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을 맞이한다. 잘 나가는 패션지 편집장이었던 그가 한순간에 뇌졸중(감금 증후군) 판정을 받게 된 것이다.
보통 전신마비 환자는 자극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혼수상태일 것이라 짐작하지만, 감금 증후군, 다른 말로 락트-인 증후군(locked-in syndrome)은 운동기능만 차단된 상태로 감각신경은 유지된 상태를 말한다. 이들은 보통 눈을 깜빡이는 방법으로 의사소통한다.
영상매체의 특성상 1인칭 시점의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잠수종과 나비>는 대표적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는 주인공이 눈을 깜빡이는 행위에 맞춰 카메라 렌즈를 깜빡거리는 방식의 촬영 기법을 시도했다. 그래서 영화 속 다른 캐릭터들은 안경 낀 상태에서 한쪽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주인공 시야의 각도 내에서만 움직인다.
뿌옇게 보이는 앞, 자꾸 깜빡이는 눈, 심지어 눈을 꿰매는 순간까지 1인칭 시점으로 경험하게 되는 일종의 체험은 멀미가 날 것처럼 답답하고 고통스럽다. 그의 시점으로 보는 영화 속 화면은 불안정하고 답답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다른 인물들과의 심리적 관계를 주인공의 입장에서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전의 그를 알고 병원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를 대하는 것이 서툴고 어설프다. 이 영화가 좋았던 점은 서툴러도 진심이 느껴지는 사람들이 빚어내는 작은 에피소드들이었다. 주인공이 갑자기 뇌졸중에 걸리는 상황은 주인공에게도, 곁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갑작스러운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를 대하는 것은 당연히 어설프고 어렵다. 그러나 그들은 서툴지만, 진심으로 대한다.
극 중에서 주인공은 알파벳을 나열하여 말하면 눈을 깜빡여서 문장을 만들어 소통한다. 한번 깜빡이면 네, 두 번 깜빡이면 아니오. 알파벳을 읽느라 정작 주인공의 눈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너무 빠르게 말하면 깜빡이는 타이밍을 놓치고, 느리게 말하면 계속 눈을 뜨고 있어야 해서 눈이 시리다. 이 장면은 이들이 서로를 대하는 서툰 방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대화하고자 하는 진심이 있다.
그렇다고 완벽한 직업과 건강한 몸을 가졌을 때 그의 삶도 완벽했느냐. 그것은 아니다. 어버이날 오랜만에 만난 어린 아들이 자신의 침을 닦아 주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자 그는 비로소 가족에 서툴렀던 과거의 자신을 깨닫게 된다.
물론 사고가 난 직후에도 꾸준히 찾아오던 아내는 결국 전화로 이별을 고한다. 그것도 그가 그 어떤 대답도 할 수 없는 전화로 말이다.
이 방식은 어찌 보면 폭력적일 수 있으나,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 어떤 핑계 없이 진심을 담아 전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아내의 이별에 물리적으로 대답할 수 없지만, 그가 말을 할 수 있었더라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기억과 상상력으로 빚어낸 이야기를 20만 번의 깜빡임으로 한 권의 책을 만든 그의 의지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그를 깊숙한 물속에서 하늘로 끌어 올린 데는 그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 덕분이었다.
눈의 깜빡임을 인내심으로 받아 적었던 여자, 이제야 깨닫게 된 가족의 존재,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의사와 언어 치료사, 행동 치료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마련이다. 특히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서는 이런 상황이 자주 벌어지는데 어느 한쪽만 일방적으로 배려하거나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툴더라도 서로의 속도에 맞춰 마음을 다한다면 상처 끝에도 진심은 전해지지 않을까.
본 글은 인터넷 신문 <에이블뉴스> '영화 속 삶의 한 장면' 코너를 통해 연재하고 있는 글입니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에 주목하여 서로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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