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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G May 06. 2016

공적인 자리에서 빛나는 사람

영화 속 삶의 한 장면, ‘여인의 향기’

‘여인의 향기’를 드디어 처음 보았다. 탱고 장면이 유명한 영화로 알고 보았는데 정작 157분에 달하는 영화 중 알파치노가 탱고를 추는 장면은 단 한 장면 뿐이었다. 오히려 영화를 보면서 이상하게도 ‘킹스맨’이 떠올랐다. 각 잡힌 신사복을 잘 차려입은 중년 배우와 젊은 남자배우의 조합으로 나이를 초월한 멋진 남자들의 우정을 그렸기 때문일까. 어쨌든 알파치노가 연기한 프랭크는 영화 역사상 멋진 남자 캐릭터에 손꼽힌다. 장애인을 그린 영화 속 남자 주인공 중에서도 매력적이고 멋진 남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프랭크는 남을 배려하지 않는 독설가이자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 그의 괴팍한 성질은 과거의 영광과 명예를 그리워하며, 시력을 잃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영화 속 어떤 장면에서도 항상 자기 의지로 움직이는 진정한 주인공이다. 그는 누구보다 멋진 하루를 보내고, 자살할 계획을 세운다. 그가 선택한 곳은 미국의 가장 화려한 도시 뉴욕이다.


그는 값비싼 레스토랑에서 신사답게 주문한다. 페라리를 빌려 뉴욕 거리를 무모하게 운전하기도 한다.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탱고 장면에서 그는 아름다운 여인이 풍기는 향을 맡고 먼저 말을 건다. 자칫 불쾌한 행동으로 비칠 수 있지만, 그의 언행은 매너 있고 위트 있다. 여인에게 춤을 신청하고, 중앙 플로어까지 에스코트하며, 멋지게 춤을 춘다. 그가 있는 곳은 항상 음지가 아닌 양지였다. 또한, 비장애인들의 시선의 중심에 서는 캐릭터였다. 

영화 속에서 장애인이 주인공일 때, 아무리 주인공이라 해도 비장애인의 시선 안에서 장애인은 소외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대부분 감독이 그런 현실을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을 담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달랐다. 형 집을 찾아가 함께 식사하는 장면에서 가족들은 눈이 안 보이는 프랭크 앞에서 대놓고 그의 말을 듣는 듯 마는 듯 하며, 비웃는다. 그러나 프랭크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꿋꿋하게 한 명 한 명에 독설을 퍼부으며 오히려 모두를 따돌리는 것처럼 보인다.

프랭크의 영향력은 극이 진행될수록 점점 확대된다. 처음에는 자신만의 방, 자살 여행을 위해 선택한 뉴욕,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탱고를 추는 플로어, 많은 사람 앞에서 찰리를 변호했던 명문 고등학교의 강당. 그가 서 있는 곳은 현실 속에서 주류로 상징되는 공간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길을 걸어도 장애인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뿐 아니라 그들이 마음껏 나올 수 있는 환경도 받쳐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처럼 서울 한복판을 활보하고, 어딘가 나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기회가 턱없이 부족하다. 

프랭크는 항상 ‘내가 잡기 전까지 나를 만지지 말라.’는 말을 달고 산다. 문득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들은 과연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에는 ‘내가 도움을 요청하면 누구든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 글은 인터넷 신문 <에이블뉴스> '영화 속 삶의 한 장면' 코너를 통해 연재하고 있는 글입니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에 주목하여 서로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 지난 글 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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