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삶의 한 장면, '24주'
전주 국제 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3년 연속 전주 영화제를 찾았는데 항상 따뜻한 봄날 연휴 기간에 열리는 터라 전주에는 관객뿐 아니라 나들이 나온 가족들로 북적였다.
이곳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어서 이번엔 특별히 장애를 다룬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았는데, 마침 한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독일영화 '24주'다. 가족을 생각할 일이 많은 5월, 이 영화는 슬프지만 생각해 볼 만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여자 주인공 아스트리드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중 최고로 평가받는다. 그녀는 무대에서 당당한 여성의 컨셉으로 자신을 소재 삼아 웃음으로 승화시키며, 당당하게 쇼를 이끈다. 또한, 누구보다 사랑해주는 남편과 귀여운 아들이 있는 그녀의 삶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그런 행복한 부부에게 둘째 아이의 임신은 너무나 기쁜 사건이었다. 그러나 배 속의 아이는 다운증후군 판정을 받게 된다. 부부는 이 순간부터 아이를 낳아야 하는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영화는 장애아를 임신한 여성의 심리를 세밀하게 연출하였다. 처음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 당연히 부부는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아스트리드 가족은 함께 다운 증후군 환자들이 있는 센터에서 그들의 삶을 배우러 간다. 남들과 다른 겉모습에 놀란 어린 아들은 겁에 질린다. 그러나 아스트리드는 동생 덕분에 할머니가 함께 살게 된 거라며 동생이 다운증후군인 건 굉장한 행운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가족의 강한 의지에도 현실은 더욱 가혹했다.
의사는 다운증후군 아이에게 어떤 치료과정이 필요한지 상세하게 말해 준다. 태어난 지 7일, 가슴을 열어 심장을 잠시 멈추게 하고 톱으로 뼈를 썰어야 하는 등 상상조차 힘겨운 치료과정을 듣게 되자 아스트리드는 고민에 빠진다.
남편은 그런 것까지 알고 싶냐며 외면하려 한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의 병을 계속 추적하여 상태를 지켜보는 것뿐인 상황. 장애아를 낳은 다른 엄마와 아기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더욱 심란해진다. 아이를 낳는 것이 엄마의 용기가 아닌 욕심 일까 봐 겁이 난 것이다.
임신 중에도 스탠드업 코미디 쇼를 병행하던 아스트리드는 한순간 무너진다. 이와 맞물려 세간에는 그녀가 임신한 아이가 장애아이며, 이를 알고도 출산을 결정했다는 소식이 퍼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스트리드는 임신 24주차에 아이를 낙태하기로 한다. 남편은 끝까지 반대했지만, 결국 선택은 아스트리드의 몫이라며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한다. 아스트리드는 낙태를 선택한 자신이 내린 결정과 심정을 라디오를 통해 고백한다.
영화를 마치고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영화의 배경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감독은 4년 전 우연히 태아가 장애인일 경우 독일에서는 출산 직전까지 낙태가 가능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이 문제에 대해 옳고 그름에 대해서 논하는 것보다 실제 이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를 위해 실제 의사 50~100명가량 테스트를 통해 캐스팅했으며, 독일의 경우 아이가 배 속에 있을 때 특별한 카메라를 넣을 수 있어서 실제 태아의 모습도 담을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실제 이런 상황을 겪는 부부 90%가 낙태를 선택하기 때문에 이런 결말을 맺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마치 영화보다는 한편의 다큐멘터리 같지만, 감독은 의도적으로 아스트리드가 영화 중간중간 관객과 눈을 맞추는 장면을 넣었다. 그리고 묻는다.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당신의 도덕적 잣대, 죄책감, 양심의 가책에 대해.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본 글은 인터넷 신문 <에이블뉴스> '영화 속 삶의 한 장면' 코너를 통해 연재하고 있는 글입니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에 주목하여 서로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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