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번째
가평꽃동네
그 곳엔 언덕 위에 사랑의 집.희망의 집.평화의 집.환희의집 그리고 노체리안드리 자애병원이 있다.
나는 그곳에 있는 병원에서 5년 8개월을 살면서 일했다.
서울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많은 아쉬움과 사람들에게 치이면서 지쳐가던 중 성당주보에 실린 모집 광고를 보게 되었다.그때는 사귀는 중사 남자친구도 있었는데 근무지가 가평 현리였다.
나이트 오프인 날 잘 모르던 시외버스를 타고 무작정 꽃동네병원으로 면접을 보러 갔다. 그곳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바로 앞에서 놓치고 너무도 급하게 겨우 도착한 가평꽃동네는 너무도 넓고 새로운 공간이었다.
간호과장 수녀님과의 면접을 위해 기도중이시던 그 분을 방송으로 찾은 후 20분 남짓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는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나서 3일후 나의 꽃동네 생활이 시작되었다.
꽃동네 시설마다 의무실이 있고 그 곳에서 치료가 안되거나 응급상황이 되면 언제나 병원으로 올 수 있다.
병원은 준중환자실을 포함하여 총 80bed 최대 100명까지는 입원이 가능했다.
간호사와 조무사.공중보건의.봉사자들.간병인들로 이뤄져있어서 정형외과.내과.외과.정신과 등 주요한 과의 진료가 이뤄지고 의정부 성모병원으로 외진도 연결되어 있었다.
그곳에서는 근무시간이나 그 외의 시간도 시설에 있는 가족들과 함께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어느순간부터 점점 동화되어 가게 되었다.
꽃동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오희성이다..
다운증후군으로 심장판막이 다 뚫려서 인공호흡기를 하고 있던 희망의 집-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환자였다.
늘 웃고 힘든 치료에도 돌보는 이들을 걱정하고 웃게 해주는 참 좋은 사람이었다.눈이 많이 오던 11월 하늘나라로 갔다..마음 속에 오래도록 남겨지는 환자다.
그리고 또 한사람
장옥분 선생님이시다
꽃동네에서 삶의 많은 부분을 살아오시고 시설 가족들을 위해 지금도 봉사자로 간호사로의 소임을 하고 계신 분이다.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사람을 알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며 늘 생활에서 녹아 있게 한 꽃동네의 그 소중한 시간들은 지금까지도 나에겐 아주 귀한 경험들이었다..
사랑하는 건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