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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neur Jun 15. 2023

 교내 축구팀에 지원한 일개 아시아인

 이전까지는 시간 흐름에 맞는 이야기를 써왔지만 아마 이제부터는 조금 시간 개념이 뒤죽박죽이 될 것 같다. 이유는 별거없이 그냥 내 기억상 오류가 있어서일뿐... 사실 잘 기억이 안난다.


 아마 스프링 시즌을 위한 팀 멤버 모집이었을 것이다. 미국 학교는 특징이 방과 후 활동이 매우 활성화 되어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스포츠를 하는 것이다. 미술이나 악기 그 외에도 여러가지 활동이 있지만 대표적인게 바로 스포츠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아마 미국 영화를 조금 그것도 하이틴 장르를 봤다면 알겠지만 미국 스포츠 팀은 음 뭐랄까 영광의 자리 같은 느낌이 있다. 아무래도 스포츠이다 보니 승부욕을 자극하기에도 좋고 운동을 하는거니 뭐 몸매도 좋고 자신감이 있는 타입들이 많다보니 그러리라 생각이 드는데 어쨌든 꽤나 비중이 있는(?) 포지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곳에 일개 아시아인이 그것도 한국에서 넘어온 심지어 당시엔 꾸밀 줄도 모르고 외모에 관리라고는 1도 안하던 시절이라 잘생김은 커녕 운동 신경이 좋은 편도 아닌 녀석이 바로 나였다. 그러나 오직 하나 축구가 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어찌저찌 학교 트라이아웃에 지원하게 되었고 대망의 트라이아웃 저녁 날이 다가왔다. 


 아마 오후 7~8시 정도로 기억한다. 당시에 나는 내 친구인 실베스터와 아사돌이란 아르메니아와 튀르키예 출신의 친구가 있었는데 이 둘이 내게 축구 팀 가입을 권유하였고 우리는 모두 저학년 팀에 지원하였다. 같은 ESOL 클래스의 친구인 월터는 고학년이라 고학년 팀에 지원하여 같이 지원하지는 못하였다. 그렇게 트라이아웃은 진행이 되었고 나는 꽤 후순위에 있어서 남들이 하는걸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 내 옆에 앉아있던 피부가 까무잡잡한 친구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얼굴이 길쭉했고 스타일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동아시아권이나 저기 남아메리카 스타일의 친구였는데 축구를 잘하냐고 물어왔다.


 "너 축구 잘하냐?"

 "나 그냥 찰 줄 아는 정도다 솔직히"

 "나는 잘함. 개인 기술도 있고 피지컬도 괜찮음"


 이런식으로 자기 자랑을 늘어 놓던 녀석은 나보다 더 뒤에 하는 차례였고 나는 당연히 긴장이 되었다. 왜냐면 이미 앞서 진행된 게임을 보니 남미 출신의 친구들이 너무 잘하기 때문이었다...

 표현을 하자면 그냥 달랐다. 뭐랄까 타고난게 다른 느낌? 나같은 일개 아시아인 따위가 축구로 감히 그들과 비비려 했다는 생각 자체가 오만이란 것을 보면서 깨달았었다. 


 공이 발에 붙어다니는 녀석부터 섬세한 드리블 스킬 그리고 빠른 발 그냥 보고 있자니 한국에서 친구들과 공차고 놀던거는 진짜 그냥 '놀이'라는걸 깨닫게 해주는 플레이들이었다.


 어느덧 내 차례가 다가왔다. 이미 앞에 내 친구들인 실베스터와 아사돌이 게임을 마쳤고 나를 응원해주었지만 내 자신감은 사실 별로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을 것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은 이게 11vs11의 풀코트 게임이 아닌 학교 안 체육관에서 진행된 작은 미니게임 거의 풋살 스타일의 게임이었다는 것이다(부족한 내 체력이 뽀록날 일이 없었다!) 당시 나는 공격이나 패스 뿌리기 혹은 돌파 등 장점이 없었고 그저 헌신적이고 눈치로 수비하는데에 강점이 있어서 나는 수비수로 지원을 했다. 지금 드는 생각이지만 음 수비수가 그런식으로 플레이 했으니 엉망이지 + 단신의 아시아인과 장신의 남미인을 붙여 놓으면 밀리는게 너무 당연했던... 그런 상황이었으니 실수였던거 같다.


 어쨌든 게임은 시작되었고 나는 당연히 골리 앞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경기 시간은 기억상 15~20분 정도. 잠깐 보는거라 사실 정확성이 높다고 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대충 보아하니 신입생을 제외하면 이미 뛰던 사람들이 또 지원했을 것이고 감독은 당연히 얘네는 대충 알터이니 아마 신입들 위주로 보지 않았나 싶다. 나는 열심히는 뛰었다. 꾸준히 수비를 해주며 간혹 오버래핑에 가담했고 심지어 한 골을 내가 집어 넣기도 했다!

 

 트라이아웃이 끝나고 홀로 속으로 '이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수비수가 골까지 넣었으니'라고 생각하며 다시 벤치에 앉아 결과를 기다렸다.


 앞서 내게 말을 걸며 자기는 축구를 잘한다던 친구는 그냥 키만 멀대같이 컸을뿐 실력은 형편없었다. 내가 봐도 우악 싶을 정도로 못하였고 그 친구는 당연히 아웃이었다. 트라이아웃 게임이 전부 끝나고 감독이 지원자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결과를 알려주었다. 여기서 내 미국생활 최고 부끄러운 상황 톱3가 펼쳐졌다.


 내 이름이 호명되어 감독 앞에 찾아갔을 때 나는 그의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아마 그때가 미국 생활 2~3개월 차 정도였는데 하나도 들리지 않는거였다. 긴장해서였을까 내가 합격인지 아닌지 전혀 몰랐고 나는 그저 당시에 지원한 동네 축구팀인 Vienna Youth Soccer(VYS)에서 뛰어도 괜찮은지에 대해 물었고 감독님은 웃으며 당연하다고 대답했던 부분만이 그날의 대화 내용에 있어서 내가 기억하고 알아들은 부분이었다. 

 

 무언가 분위기가 좋았기에 나는 내가 합격했다고 생각했으며 그 다음주가 되어 함께 트라이아웃을 진행한 친구들이 내게 붙었느냐 물어오길래 나는 확신이 없어서 "I don't know, I forgot it"이라고 대답했다. 진짜 멍청멍청 그 자체. 내 대답을 들은 친구들은 하나같이 벙찐 표정을 지었고 어떻게 그걸 까먹을 수 있냐면 나를 힐난했는데 나는 차마 못알아들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알아보니 나는 떨어졌고 감독님은 그저 내가 학교팀이 떨어졌으니 동네팀 뛰는 것이 오케이라 했던 것이었다. 참으로 부끄러운 상황을 연출해버린 나는 그냥 얼굴에 철판을 깔고 다녔지만 여전히 부끄러움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내 처음이자 마지막 하이틴 무비의 주인공이 될 기회는 날라가고 말았다. 물론 수비수로 지원했기 때문에 크게 주목을 받기 좋은 포지션이 아니므로 또 헛된 꿈이었을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사실 기회는 이때가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다 하하


 지금도 종종 꿈을 꾸곤 한다. 그 당시에 만약 내가 학교 팀 일원으로 뛸 수 있었다면 얼마나 재밌었을까? 내 평생의 술안주가 이거 아닐까? 대학교에 와서 학교 축구 동아리 회장도 맡아보고 꾸준히 나가긴 했지만 여기는 약간 뭐랄까 그냥 친목 겸 교내 대회가 있으니 한다는 느낌이라면 당시 미국에서는 분명 내가 '학교 대표'이고 동시에 미국 동부 고등학교들끼리 리그전을 진행하며 훈련, 피드백 그리고 게임을 진행하는 정말 스포츠 선수같은 느낌을 가져갔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웹소설이나 웹툰의 유행인 회귀, 환생 등의 상상을 할때에 평범한 이들의 상상과 달리 나는 이때로 지금의 실력을 가지고 돌아가면 어떨까 싶다. 그렇다면 더 자신있는 포지션에(현재는 공격수나 중앙 미드필더를 선호한다) 그리고 젊은 신체(?)에 경험이 풍부한 두뇌를 가진 선수가 탄생하는데... 그렇다면 정말 내가 미국 하이틴 무비의 주인공이 될수도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이렇게 내 인생 유일했던 스포츠 선수의 삶을 살아볼 좋은 기회였으나 경험해보지 못한 아쉬우면서 즐거운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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