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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neur Jun 08. 2023

외국인으로 학교에 들어갔다.

James Madison High School

 미국에 온 지 한 달이 지났고 어느덧 시간은 2월이 되었다. 나는 아직 학생의 신분이기에 당연하게도 학교에 다녀야 했는데 2월에 입학이 예정되어 있었다. 


 미국은 한국과 다르게 연초에 시작하는 학기가 2학기, 여름에 시작하는 학기가 1학기로 고로 나는 2학기에 입학하는 전학생으로 입학 전 간단한 시험을 통해 내 영어 능력과 현재 학습 능력을 테스트하였고 그렇게 평범하게 고등학생으로 입학이 예정되게 되었다.


 굳이 추가 설명을 하자면 미국 고등학교는 4개 학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Freshman, Sophomore, Junior, Senior 이렇게 구성되어 있었다. 이 호칭들이야 뭐 대학교에서 쓰느니 마느니 그냥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사용되었는데 원래라면 나는 고등학교 신입생이므로 Freshman이 되어야 했었다. 그러나 이는 한국에서는 중학교 3학년 신분이고 나는 고1의 신분으로 입학을 한 셈이라 무언가 꼬였는지 수업은 Freshman의 수업을 듣는 반면 학년은 Sophomore로 배정되었다. 즉, Sophomore 2학기로 들어간 셈이니 사실상 한 학기를 다니고 나면 바로 3학년이 되어버리는 것에서 약간의 괴리감이 있었다. 만약 내가 쭈욱 미국에서 학교 생활을 하게 될 거였다면 유급이나 무슨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차후에는 들었지만 당시엔 그저 아무 생각 없는 일개 고등학생이었기에 그저 신기한 마음으로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내 모교의 이름은 James Madison High School, JMHS였다. Warhawk이라는 새가 트레이드마크였는데 당시 우리 집에서 스쿨버스로 약 20분 정도 가면 나오는 학교였다. 첫 등교는 당연히 부모님과 함께 갔는데 그때 본 학교의 풍경이 잊히지 않는다. 붉은 벽돌로 구성되어 한국의 고등학교와 달리 낮은 층의 건물이었고 주차장에는 차가 상상이상으로 많았으며 기본적으로 '교복'이라는 것이 없었다. 중학교 때만 해도 교복을 입고 다녔던 나였기에 교복을 입지 않는단 걸 알고 있지만 교복을 안 입은 것이 상당히 어색했다. 물론 이제와 드는 생각이지만 교복은 참으로 편리한 아이템으로 매일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게 해주는 것이지만 당시엔 옷을 입는다라는 개념이 없이 그저 교복이 싫다는 생각뿐이었기에 교복을 입지 않는 미국의 학교가 신기했다.

 

JMHS 전경, 이곳으로 첫 입장을 했다.

 그렇게 도착한 학교에서 사무실로 들어가 입학 수속을 밟았다. 수업은 어떤 것들을 듣게 될 것이며 기억나는 걸로 Geometry, Physical Education, History, Biology 그리고 ESOL(English for speakers of other languages)이란 수업을 듣게 되었다. 앞의 수업들은 차후에 설명하고 ESOL이란 타 언어 사용자들을 위한 영어 수업이라 보면 편할 것이다. 보통은 이민자나 나처럼 유학 온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수업으로 처음 테스트해 본 영어 실력을 통해 수업 반이 정해지므로 학년에 관계없이 듣는 수업이었다.

 

 나는 그럭저럭 영어를 해서 중간 정도의 반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곳에는 나를 제외하고도 많은 친구들이 있었는데 스웨덴,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네팔, 타이완 등 다양한 국가 출신의 학생들이 수업에 있었다. 당연히 이들은 주로 영어로 의사소통을 했으며 아직 영어 실력이 부족한 나는 대화에 참여하기가 어려웠었다. 아마 일주일? 그 정도를 혼자 지냈으며(누가 먼저 말을 걸어주지는 않더라...) 점심 식사를 하는 것도 부끄러워서 그 기간 동안 점심 식사를 거르고는 했었다.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하루는 큰 마음을 먹고 점심을 먹고 있는 수업의 무리에게 다가갔고 내가 먼저


 "Do you want to know Korean bad words?"라고 물으며 이야기를 꺼냈고 당연하게도 상대는 호기심을 가지고는 내게 대답을 해주었다. 그렇게 나와 그 친구들은 그날부터 친구가 되었고 Reynaldo, Santos, Walter, Joel이라는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모두가 축구를 좋아해 축구의 불모지인 미국에서 더욱 친해지기가 쉬웠고 서로 외국인이라는 공통점에서 더더욱 친해지기가 용이했었다. 그렇게 내게 남은 한 학기 약 4개월 정도의 기간 우리는 서로 친구로 지냈다.


 문득 당시에는 참 향수병 같은 것이 있어서 늘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만을 기다렸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보다 귀한 시간이 있을까 싶다. 유학을 경험해 보아도 미국의 고등학교를 다녀본 경험을 지닌 한국인은 드물 텐데 나는 그 소중한 시간을 조금 헛되이 보내었다는 생각이 종종 들고는 한다. 대표적인 후회로 당시의 친구들과 연락처를 교환하지 않고 학기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온 나였는데 그때 msn이었나? 그런 메신저 혹은 적어도 이메일이라도 서로 교환해서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았더라면 적어도 내가 미국이나 해당 국가로 놀러 가거나 그들이 한국에 놀러 오거나 하는 교류가 한 번쯤 있지 않았을까라는 후회가 남아있다. 어렸기에 했던 행동이었고 지금에서야 후회는 되지만 그게 또 삶의 한 방향이자 방식이 되지 않았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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