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laneur Jun 01. 2023

생의 첫 주택

 당연하게도 처음부터 미국에 우리 집은 없었다. 나라에서 보내 준 것이지만 따로 기숙사라던가 군인 숙소 같은 게 없으므로 거주지는 따로 구해야만 했다. 그래서 처음 한 2주 정도는 집을 구하기 위해 부모님이 돌아다니셨는데 그 사이 우리는 피오네 집에 얹혀서 지내고 있었다. 


 나도 들은 거라 정확한 바는 아니지만 조금 웃겼던 부분이 분명 나라에서 교육 차원으로 보낸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원되는 금액이 너무나 적었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은 합리적인 집을 구하고자 생각하셨고 여기에 아버지가 약 반년 가량만 있다가 다시 돌아가셔야 하므로 그 기간에 맞춰 집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처음 고려된 것은 당연히 Apartment 소위 국내에서 아파트라 불리는 집이었다. 미국에서는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보통 가난한 축에 속한다. 물론 뉴욕이나 땅이 작고 인구 밀집도가 있음으로써 땅값이 비싼 동네야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버지니아주에서 아파트에 산다? 뭐 어쨌든 형편이 좋은 타입은 아니란 소리이기는 하다. 


 그리고 나는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주택을 되게 좋아했다. 뭐랄까 오직 나만의 소유 같은 느낌? 아파트는 어찌 되었든 다세대 아니겠는가. 그래서 내가 단독 주택을 어필했다. 어차피 반년만 살 거라면 한 번쯤 주택에서 살아보고 싶다 한국에서는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라고.


 그렇게 어느 정도 내 말에도 설득이 되고 아파트는 그래도 대한민국 군인에게 가오가 조금 죽지 않겠느냐고 부모님은 주택을 하나 구하셨다. 지금도 정확히 기억하는 주소지 '2430 Cedarlane, Vienna, Virginia'

당시 우리 집 주소였다. 복층 구조에 1층이 도로 아 맞닿아 있었고 반지하까진 아니나 저층이 한 곳 그리고 garage까지 포함된 집이었다. 집 안에는 불난로가 있었고 방은 총 3개였는데 그 뭐라 해야 하지? 여하튼 원래 집 구조에 그 한 부분을 붙여서 만든 방이 한 개 더 있는 그런 구조로 총 4개의 방이 있었다. 그리고 아래층에도 화장실과 방이 2개 있는 총 6개의 방이 딸린 그 당시 나에겐 거의 대저택 같은 수준의 집이었다. 


 미국 주택의 특징 중 하나가 꽤 다닥다닥 붙어있는 우리가 영화에서 종종 보는 뭐랄까 연속 주택? 같은 컨셉이 많다. 그런 것들이 좀 뭐랄까 주택이기는 한데 나 혼자 사는 느낌은 아닌지라 크게 끌리지 않았지만 우리 가족은 그와 다르게 좀 동떨어진 어느정도 거리가 있는 주택을 구했다.

 만족스러웠다. 생에 처음으로 살아보는 주택 그것도 미국에서 게다가 기분 좋게도 앞집에는 커다란 리트리버 한 마리를 기르고 있어서 가끔이지만 녀석이 우리 집 쪽으로 달려와 반겨줄 때도 있던 집이었다. 

당시 집이다. 사진을 보관해 둔 게 없어 모월드에 있던 과거 사진을 챙겨 왔다.

 그렇게 미국에서 우리 집이 생기게 되었다. 한국과는 확실히 다른 부분이 많았다. 이웃사촌들이 생각보다 반겨주었고(아시아인임에도 반겨준 것인데 이유인즉 그 동네가 원래부터 백인촌이었다.) 동네 경치는 아주 좋은 풍경이었다.


 한국과 달라 신기한 게 많았다. 우선 첫 번째로 우체통. 한국에서는 늘 그 쇳덩이 같은 우체통에 우편물을 받았고 보내려면 무조건 우체국을 가던가 해야 했지만 이곳에서는 우편함이 영화에서나 보던 바로 그런 것들이었는데 여기에 깃발이 달려 있었다. 이 깃발을 올리게 되면 내가 보낼 우편물이 있다는 표시로 우체부들이 보고 가져가고는 해서 굳이 우체국으로 갈 필요가 없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저 빨간 걸 올리면 보낼 우편물이 있다는 표시이다.


 또 다른 것은 난방 시스템. 한국이야 대부분 온돌이 베이스인데 미국은 온돌이 없었다. 라디에이터 비슷한 게 집 전체에 깔려 있지만 그보다 확실한 건 Fireplace, 바로 불난로였다.


 거실이라고 부를만한 위치에 불난로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서 불을 때면 집안 전체가 따뜻해졌다. 물론 그만한 장작이 필요했는데 우리는 마침 겨울에 집을 구했기 때문에 난로를 쓸 일이 많았고 뒤늦게 캐나다에서 합류한 내 동생과 나는 이 장작을 구하고자 온 마을을 돌아다니며 부러진 나뭇가지를 주웠고 간혹 어떤 집에 안 쓰는 듯한 장작이 보이면 그 집 문을 두드리고는 장작을 얻어오고는 했다.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인 거 같은 게 왜 남의 집 물건을 탐낸 건지 ㅋㅋㅋ 이해는 가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그저 불을 때는 게 즐거워서 장작을 구하러 이리저리 다니고는 했다. 거기에 고구마와 감자도 포일에 싸서 구워 먹고 놀았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구하러 다녔었다.

일부로 원본도 그대로 가져와봤다... 그 당시 어린 내 감성이니 부끄러움은 참아주시길...

 그리고 garage 그러니까 차고지가 주택인만큼 따로 있었는데 이게 참 편리하긴 했다. 한국도 주택을 보면 따로 주차장이 있거나 차고지가 있는데 미국은 대부분 주택에는 딸려 있고 여기를 창고 겸 주차장으로 쓰는 게 참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가끔 길을 가다 보면 'Garage Sale'하며 적혀있는 팻말들이 있는데 이럴 때 그 집에 가보면 차고지 안이나 앞에 물건들을 갖다 놓고 벼룩시장처럼 판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안 쓰는 물건들을 파는 것인 만큼 중고가 대부분인데 그 당시 내게 탐이 나던 제품들은 주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cd 뿐이긴 했다. 다만 나는 플스가 없어서 산 적은 없지만...


 여러 의미에서 처음으로 살아본 주택이었다. 비록 차후에 반지하의 세를 내주었지만 그래도 온전한 나의 집이란건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다. 굳이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큰 개를 한마리 직접 기르지 못한것 정도? 옆집의 이름이 기억 안나는 리트리버가 그나마 그 아쉬움을 달래주기는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유와 기회의 땅 미국으로 떠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