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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neur Jun 22. 2023

미국에서도 꼰대는 꼰대더라

나이가 벼슬이더라

 짧은 8개월의 미국 생활이지만 지금 이렇게 글을 써서 남길 정도로 내게는 많은 스토리가 있었다. 당연히 즐거운 일도 슬픈 일도 있었지만 지금 할 이야기가 나한테는 꽤 큰 기억으로 남았던 좋지는 않았던 그런 이야기다.


 한국에서는 당연히 학교 선배는 무서운 존재였다. 참 웃기게도 우리는 학창 시절 어른들의 말보단 오히려 고작 한 살 위인 선배 형, 누나들이 더 무서운 존재였었다. 이상하게 위압감이 있었고 무언가 겁에 질리게 하는 그런 아우라가 그들에게는 있었는데 당연히 나도 선배들을 무서워하고는 했다.


 그러나 미국은 달랐다. 분명 선배는 맞지만 어차피 언어에 존대가 없었으며 딱히 그런 문화도 아니기에 서로 친구를 먹는 경우도 허다하고 굳이 '내가 선배니까 후배인 넌 내 말을 들어야 한다'식의 마인드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역시도 굳이 선배의 눈치를 보거나 그런 경우는 없었는데 역시나 적시나 한국인들에게는 유교사상이 남아 있어 여전히 그런 문화가 있었다.


 발단은 단순했다. 내가 처음 전학 온 날 학교 측에서는 당연히 한국인 한 명을 불러 내게 안내를 도와주었다. 그들 입장에선 당연히 내가 영어가 부족할 것이고 한국어 소통이 수월하니 그렇게 진행했는데 그때 나를 도와준 친구는 수업 장소를 옮겨가며 알려주었는데 중간에 카페테리아가 껴있었다. 미안하게도 지금은 도저히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친구가 카페테리아를 설명해 주면서 매일 오전 9시 20분(이 즈음에 약 40분 정도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보통은 이때 못 먹은 아침 끼니를 대충 해결하거나 혹은 안 한 과제를 하거나 혹은 단순히 담소를 나누는 등의 휴식시간이다) 여기 카페테리아에서 한국인 모임이 있다고 나도 참석하라고 알려주었었다. 나는 당연히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나는 외국인 친구만 사귀어야겠다 그래야 영어가 조금이라도 늘어서 가지'라고 생각해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를 제외하고는 한국인과는 누구와도 교류를 만들지 않았었다.


 그렇게 학교를 다니면서 그 시간대에는 주로 나는 미리 다음 수업 강의실로 가서 과제를 하거나 딴짓을 하거나 주로 가만히 있는 걸 택했는데 이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소문이 퍼졌었다.


 '왠 건방진 녀석이 하나 새로 왔는데 여기 모임에도 안 나오더라. 좀 아니꼬운 놈이다'


 라는 소문이 퍼져있었다. 이마저도 소문이 돌던 당시에는 몰랐고 차후에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는데 당시 그 모임에는 적어도 나와 안면이 있는 무관 아저씨의 딸인 몇 번 본 누나가 있었고 나와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들 몇 명이 그곳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니 내가 어찌 알겠으며 적어도 누군가는 오해를 풀어주지 않았을까 싶긴 하지만 뭐 이미 박힌 생각은 뿌리 뽑기 어렵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는 전혀 모른 채 몇 달을 잘 지내왔었고 그들도 딱히 나를 건드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가끔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먹을 때 같은 수업을 듣는 한국인 친구를 만나 인사할 때 옆에 있어서 같이 인사하는 정도?


 그러던 어느 날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내가 가장 많은 한국인을 만나던 수업이 Biology 수업이었다. 나를 포함해 총 4명인가 5명이 있었는데 그중 한 친구가 축구를 좋아했었다. 그래서 우리 둘은 축구 이야기로 대화의 꽃을 피웠고 어느 정도 이 친구와는 일주일에 두 번 만나지만 나름 친하게 지낸 친구였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친구가(얘도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수업 쉬는 시간에 내게 하소연을 해오는 것이었다.


 "아 형들이 너무 나한테 뭐라 하고 자꾸 뭐 시킨다. 아 하기 싫은데"

 "? 그럼 하기 싫다고 말해. 그게 뭐 어려운 거라고 네가 뭐 부하도 아니고"

 "아니 그럼 뭐라 하잖아. 맞기도 싫고"

 "아니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냥 네가 하기 싫은 건데 그걸 시키는 사람이 문제지."

 "그걸 어떻게 말해. 괜히 말했다가 뭔 일 날라"

 "아니 무슨 친형도 아니고 선배면 다야? 막 시켜 먹게? 나 같으면 안 한다. 뭐 알아서 해"


 대충 이런 내용의 대화였었다. 나는 당연히 아무리 그래도 그냥 선배랍시고 막 부려먹는 게 말이 되나 싶어 이야기했지만 그 친구는 울며 겨자 먹기로 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나는 굳이 실랑이할 생각이 없고 나와 관련된 일이 아닌지라 그냥 저쯤에서 이야기를 회피했었다. 그런데 다음날 나도 얼굴만 아는 한 형이 나를 쉬는 시간에 찾아왔다.


 "너가 □□□야?"

 "네 맞는데요"

 "야 너 ○○○한 테 사과해라"

 "네?"

 "그냥 사과해 괜히 큰일 만들지 말고"

 "제가 왜요?"



 나를 찾아온 형은 내게 사과를 하라고 말했고 나는 이유를 몰랐다. 상황을 보니 무슨 일이 생겨서 내가 사과를 하고 일을 쉽게 처리하고자 나를 찾아온 형은 호의적인 의도였겠지만 나는 순간적으로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개겼다. 사실 왜 개겼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순간적으로 욱했었던 거 같다. 내가 갑자기 왜 사과하지? 잘못한 게 없는데 특히 저들과는 내가 엮인 적이 없는데 왜 갑자기라는 생각이었던 거 같다. 내가 저렇게 말하자 호의로 찾아온 형도 기분이 나빴는지 그냥 "에휴 알아서 해라"라며 자리를 떴고 다음 쉬는 시간에는 ○○○형이 나를 찾아왔다.


 "야 너 오늘 수업 끝나고 남아라"

 ""


 나도 너무 쿨하게 대답했지만 사실 그때 마인드는 싸우면 내가 이기지란 마인드였다. 중학교 때도 사실 제대로 된 맞짱 한번 해본 적 없는 나였지만 미국에 가서부터는 덩치가 조금씩 커졌고 그 당시 기준으로 그 형과 나는 10cm 이상 차이가 났기 때문에 어디선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아올라 나는 맞짱을 뜨면 이기겠다 싶은 생각으로 쿨하게 수락했다.


 결국 그날 하루 동안 나는 온전히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고 시간은 흘러 대망의 팬미팅이 시작되었다. 방과 후 그러니까 딱 Biology 클래스가 끝나고 나서였다. 해당 수업에는 많은 한국인들이 있었지만 그날따라 유독 내게 말을 걸어오는 친구는 없었고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이미 문 앞에 대기하고 있는 그 형과 그 패거리를 보니 아차 싶었다(근데 어떻게 먼저 나왔지?)


 그들은 나를 화장실로 데리고 갔고 몇몇 외국 애들이 망을 보고 있었다. 사실 나는 1대 1로 붙을 줄 알고 자신감에 차있었던 건데 어라? 들어가니 3대 1이었다. 다행히 빠른 계산이 돌았고 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올랐던 꼬리를 내리며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했다.


 그래 사실은 2대 1 까지는 커버가 되리라 생각했다. 당사자 형과 그 친구인 또 다른 잘생겼지만 키 작은 형이 있었는데 사실 그 둘 정도는 쉽게 이기겠거니 싶었는데 나를 말리러 왔던 호의적인 형이 옆에 서있었던 게 너무 치명적이었다. 왜냐면 덩치가 내 2배는 되었으니까... 여기는 도저히 승산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연신 사과하고 그 형이 왜 화났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다시 한번 사과하고 죄송하다고 빌었다. 수치스러웠느냐면 음 처음엔 그랬는데 대화를 하다 보니 좀 억울한 상황이란 걸 그 형도 인지했다. 약간의 오해가 빚어낸 상황으로 서로 어느 정도 풀었지만 그 형은 그래도 건방지게 군 모습 때문에 그랬던 것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하며 마무리가 되었다. 


 망을 보던 녀석들은 안 싸우는 모습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고 그렇게 이 사건은 일단락되며 마무리가 되었다. 이미 스쿨버스는 다 떠나간 뒤라 딱히 집 가는 버스도 모르고 택시도 탈 줄 모르는 나는 그냥 매번 스쿨버스가 다니던 길을 걸어서 돌아갔다. 거의 한 시간 걸렸나? 먼 거리를 걸어가며 참 허탈하고 어처구니없는 이 상황에 조금 혐오감을 느끼게 되었다. 다행히 이 사건 이후로 저들과 내가 접촉하는 일 없이 학기가 끝났고 나는 귀국 그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을 들어보지도 못했기에 이제는 한낱 해프닝에 불과한 이야기이지만 그 당시에도 지금도 한국의 이런 꼰대 문화가 혐오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한국에서도 싫어했는데 미국에서마저 경험하게 되니 더욱 싫은 느낌. 나는 그래서 지금도 최대한 이런 부분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차 내게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느냐 하면 참 이게 또 사람이 간사하다 싶다. 내게 하소연을 했던 친구가(이하 A라고 칭하겠다) 당연히 한국인 모임에 꾸준히 나가던 사람이므로 하소연 바로 다음날에도 모임을 나갔더랬다. 그래서 형들이 시킨 일을 안 하고서는 내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그걸 또 뭐 말했던 대로 전달했으면 저 새끼 뭐야? 정도로 끝날 문제였는데 A가 말을 이상하게 전달한 것이다. 기억나는 바로는

 '자기가 형들이 시킨 거 하려 했는데 얘가 막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뭐 형들 말을 듣냐고 무시하라고 말했다'라고 이야기를 해버린 것. 당연히 형들은 화가 났고 그 화살이 내게 온 것이다. 자기가 하지 않고선 마치 내가 하지 말라고 시킨 듯한... 그렇게 A와는 학기가 끝날 때까지 서로 말을 더 이상 섞지 않았고 거의 수업이 끝날 마지막 즈음에 한 번 말을 걸어오길래 그냥 웃으며 받아주었었다. 굳이 감정 소모하기도 싫었고 어차피 떠나는 마당에 안 좋은 기억, 이미지 심고 올 필요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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