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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neur Jan 20. 2023

1. 왜 작가가 되려 했는가?

수많은 시행착오와 내 이름이 박힌 한 권의 책을 위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글을 쓰기로 했었던가?


 20대의 나는 정확한 목표도 없고 의지도 없는, 말 그대로 시체와 같은 상태의 젊은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매사에 흥미가 없고 전공은 더더욱 흥미가 없었고 그저 놀고 술 마시기 바쁜 그저 그런 20대 청춘

 그래도 대학에 처음 입학 했을 때나 중간중간 뭐랄까 내 의지와는 조금 거리가 멀었지만 그래도 가졌던 목표가 있었다. 시작은 아무래도 내 의지와는 크게 관계없는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그랬을법한 바로 '부모님의 소망'이었다.


 제일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편입을 고려했었다. 뭐랄까 그냥 내 학벌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여기에 학과도 영 시원찮은 느낌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생명공학이나 생물 관련해서 전공을 선택하고 싶었기에 그리고 부모님 역시도 내가 의대 같은 곳으로 가기를 원하셨었기에 여러모로 편입이나 의학 전문 대학원을 고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가 그렇듯 처음 들어간 대학과 자유의 맛은 그런 내 의지를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놀라운 괴력을 발휘해 냈다. 그렇게 어영부영 보낸 2년, 남자라면 어쩔 수 없는 군대라는 도피처를 향해 나는 발걸음을 옮겼고 그 안에서만큼은 이런 큰 고민 없이 1년 9개월을 보내고 건강하게 전역하였다. 다시 나온 사회에서는 가장 처음 든 생각이 '교수'였다. 아무리 봐도 매력이 넘치는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적절한 자유 시간, 적절한 페이, 적절한 인간관계, 높은 사회적 지위 등 여기에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교수직을 하게 된다면 상당히 괜찮을 거 같았다. 그렇기에 나는 박사 진학을 목표로 하였고 당시 내 전공은 쓸모가 없다고 판단, 복수전공으로 유전공학을 하기 위해 돌입했고 결과는 중실패.

 하필 대학원 진학을 꿈꾸던 시기에 집안의 형편이 많이 안 좋아지는 추세였었다. 박사 진학 거기에 해외 유학을 꿈꾸던 내 입장에서는 금전적인 압박이 극에 달하는 상황. 연 1억 이상씩 꼬박꼬박 부모님께 손 벌려 진행하기에는 너무 큰 부담감이었고 솔직한 이야기로 진학 자체에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이 핑계 저 핑계로 학업을 포기하고는 다른 루트를 찾았고 거기서 두 번째로 선택한 건 '변리사'였다. 이것도 이래저래 전문직으로 많은 조건이 만족스러운데다가 더불어 부모님이 대학 입학 초기부터 노래를 부르시던 직업이었다. 1년 반 정도 준비를 해보았으나 결론은 이것 역시 실패. 원인인즉 그냥 내가 공부를 안 했다 너무 하기 싫더라. 그렇게 보낸 시간이 대학 입학부터 약 7년 나는 7년이란 시간을 그대로 풍선처럼 하늘로 날려 보내었고 결국엔 터져서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어린 시절의 내 꿈은 단 하나 '과학자'였다. 이상하리만큼 과학이 신기하고 재밌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내가 무언가 새로운 걸 발견하는 것 그것이 내 꿈이었다. 그렇게 중학생까지 살아왔는데 어느 날 우리 집에서 친구 녀석들과 공부를 하던 도중 약간 뭐랄까 감회가 남달라 져서? 뭐 그런 기분으로다가 서로의 장래 희망을 이야기하는데 한 친구 녀석이 한 말이 있었다. "대한민국 역사에 내 이름을 남기는 것

 말 그대로 섹시했다 듣자마자 나는 뿅 가는 수준이었다. 중학생이 말했기에 유치한 거 같으면서도 구체적이었고 그 포부가 상당히 컸다. 나와 다른 무언가가 느껴지는 멋있는 멘트였다. 그렇게 우리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성장했고 어느덧 30줄에 들어서며 각자의 길로 잘 나아가고 있는 채 서로 가끔 만나 술 한잔 기울이는 여전한 친구 관계로 지내고 있다. 다만 그 친구는 어느새인가 자신이 뱉은 말의 무게감을 견디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당시의 호기로움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을 까먹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게 잘못되었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저 한 사람으로 사회의 평범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과거 그가 했던 말의 무게를 나 역시 체감하게 되었다. 반면 나는 당시 그의 말을 통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어떻게 해야 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을까? 그리고 최대한 상류층에 더 가까이 도달할 수 있을까라고 늘 고민하고 생각하다 보니 조금은 진부하면서 뻔한 전문직이나 좋은 직업들로만 생각이 닿아 내가 원치 않더래도 그것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원치 않는걸 하니 재미가 없고 하기가 싫어서 점차 손을 놓게 되고 시간만 허비하는 마치 한량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이다.


 그렇게 보낸 허송세월 이후로 다시금 찾기 시작한 내 삶의 이정표는 정답이 없었다. 그저 방향과 관계없이 무작정 걸어가고만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녀석과 pc방을 갔다가 커피를 한잔 하며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이제 뭐 하게 너 시험공부는?"

 "때려쳤음 재능 없는 듯 못함 나 공부"

 "그럼 뭐 하게"

 "모르지 나도 그냥 맨날 망상만 하고 있음"

 그렇게 이야기를 짧게나마 풀었고 그 녀석은 내게

 "오 그럼 글이나 써라 아니면 만화책 그리던가"

 짧지만 단호했던 친구의 한마디가 지금 이 길로 오게 만든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도 그림 실력이 부족해 유일하게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꿈 중 하나가 바로 '만화가'였던 내게 새로운 접근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더불어 당시에 이래저래 인터넷에 짤막한 글들을 조금씩 적었는데 그게 예상외로 반응이 괜찮아서 즐거워하고 있던 찰나였다.

 그렇게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비록 지금은 내가 생각했던 소설과는 다르지만 어쨌든 꾸준히 글을 작성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내 지도가 어느 정도 잘 그려지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 친구에게 늘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물론 놀랍게도 그 녀석은 자기가 그런 말을 한 줄도 모르고 있다는 건 비밀이 아니다.

 그렇게 나는 내 삶의 최종 목적지로 향하는 방향을 얼추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종종 서점을 들르고는 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서점 한 곳이 있다. 바로 제주도에 있는 '구들책방'. 함덕 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작은 중고서점으로 크지는 않지만 뭐랄까 정말 옛날 책방 같은 스타일의 서점이다. 제주 한 달 살기를 하던 때에 두어 번 방문했고 그곳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구매했었는데 처음 갔을 당시엔 사람이 없었지만 두 번째 방문 때에는 사람이 정말 많더라 아마 주말이라 그랬던가?

 여하튼 각설하고 꽤 유명한 책들이 주를 이루는 옛 서점으로 대부분 알만한 작가들의 책이 판매 중이었다. 기욤 뮈소, 베르나르 베르베르, 무라카미 하루키, 파울루 코엘료, 김진명 등 소설을 좀 읽었다하면 알만한 작가들의 책이 많이 있었고 그 외에도 어릴 때 읽었던 삼국지 60권짜리도 있었었다. 

 물론 그곳에는 내 이름이 박힌 책은 없었다. 당여하게도 아직 출간조차 된 적이 없는데 있을리가 만무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언젠가 앞으로 30년 뒤 혹은 50년 뒤 내가 늙어서 가족들과 혹은 홀로라도 제주도를 방문했을 때 이 서점이 여전히 존재하고 그리고 그곳에 내 이름 석자가 적힌 책이 있다면 그것이 내 삶의 최종 목적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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