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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서윤 Sep 28. 2019

오랫동안 내가 직면하지 않았던
나의 재정상태를 직면했다


사업이란 건 그냥 사업자등록증만 내면 다되는 줄 알고 시작했던 30살의 문은지(그땐 문은지였음/32살에 문서윤으로 개명함)가 33살의 문서윤에게 남겨준 것은 아주 많다. 너무 다양하게 일해서 포트폴리오를 한 장으로 만들기 어려울 정도로 이력이 넘쳐난다. 다양하게 일한 건 하고 싶은 게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내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렇게 뭐든 했다. 돈 되는 일도 하고 돈 안 되는 일도 하고. 그냥도 해보고. 하다가 잘하는 거 같으면 한 번 더 하고, 해봤는데 못한다 싶으면 안 하고. 일을 정말 일로 배우면서 하나씩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쌓아갔다. 그렇게 지금은 웹툰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이 분야에서 뭔가 만들어보자, 라는 생각으로 내가 생각하는 나의 업의 본질에 대해서도 생각하며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고 있다. 


그런데 30살의 문은지는 사업을 어떻게 굴려야 하는지 전혀 몰랐고, 얼마를 벌어야 본인이 먹고살 수 있는지도 계산하지 못했고(그냥 늘 월 1억을 목표수익으로 이야기하곤 했음), 오로지 가지고 있는 건 4년 반 동안 일하고 생긴 퇴직금 1,300만 원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호주에서 40일, 태국에서 30일 동안 여행을 하면서 퇴직금을 빠르게 소진했고, 출판사를 차리고 나서는 더욱 빠르게 소진했다.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신용도를 하나하나 내려가며 대출을 하나둘 늘려갔다. 대출금은 점점 늘어나면서 부담감도 함께 늘어났지만 나는 그걸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고 나는 내가 얼마의 대출금을 가지고 있는지 무뎌지는 경험을 했다. 빚이 있었으나 그 빚이 내게 있다는 사실을 직면하지 않았고 회피하는 삶을 오랫동안 살아왔다. 빚을 또 다른 빚을 내어 갚기도 하면서. 


그러다가 올해는 '아 이렇게 돈을 버는구나'라는 걸 깨닫게 됐고 그 결과로 작년에 비해 매출이 올랐다. 나는 드디어 30살의 문은지는 몰랐지만 33살의 문서윤은 아는 돈 버는 법을 드디어 알게 됐다는 생각에 기뻤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하면, 그러면 30살의 문은지가 몇 년 동안 차곡차곡 만들어놓았던 채무를 갚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설레었던 것도 잠시, 내가 회피하고 있던 대출금과 카드빚은 그런 나의 기분은 전혀 상관하지 않은 채로 매일매일 정직하게 대출금 만기일을 향해 걸어왔다. 


그러던 어느 날 랜드마크 리더십 과정에서 나의 재무를 들여다보는 과제가 주어졌다. 나의 재무. 아주 오랫동안 회피해오고 있던 나의 재무사정을 마치 생선을 해부하듯이 봐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내가 가장 책임지어야 하고, 가장 온전하게 운영했어야 하는 비즈니스의 운영상태 등을 직면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과정은 가히 끔찍했다. 오랫동안 직면하지 않았던 것을 직면하는 순간 말 그대로 멘붕이었다. 내가 잘되고 있다고 생각했던 수익은 내가 그동안 만들어놓은 적자를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미미한 수준이었다. 당장 다음 달까지 갚아야 되는 빚의 액수를 눈으로 직접 보니 막막해지기만 할 뿐 어떤 방법도 어떤 가능성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액수들을 직면하지 않았음에도 그동안 잘도 버텨왔구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우선 통장별 잔고가 얼마큼이 있는지부터 구글스페레드시트에 기재했다. 그리고 내가 일으킨 대출의 대출금액, 조건, 이자율, 만기일 등을 세세하게 표로 만들었다. 그리고 월별 고정비를 계산했다. 개인/기업 모두 분류하여 정리해서 엑셀에다가 모두 정리한 후 어떤 채무를 먼저 갚아야 하는지, 어떤 채무가 먼저 만기가 끝나는지, 더 연장할 수는 없는지, 카드 결제일을 미룰 수는 없는지부터 최악의 경우 내가 어떻게 신용도를 회복할 수 있을지까지 모두 확인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들어올 미래의 수익은 얼마이고, 내가 유통할 수 있는 돈은 얼마인지 등등 나의 많은 시간을 그것을 해결하는 데 썼다. 



지인들과의 만남은 모두 취소하고, 사업과 관련된 미팅 시간을 늘렸다. 가족들과 남자 친구에게 내가 지금 얼마의 빚이 있고 당장 갚아야 될 빚은 얼마인지, 그래서 내가 월 얼마를 벌어야 안정적으로 빚을 최대한 빠르게 갚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사실 가족과 남자 친구에게 이야기하는 과정은 너무.... 쪽팔렸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야, 라는 걸 증명하는 것 같아서. 하지만 그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여러 가지 대안이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염려하는 목소리를 안 들은 것은 아니다) 


너무 짧은 시간에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하지 못했던 액수를 갚고 나자 왜 그동안 이런 부분들을 더 빨리 가족들에게 의논하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그동안 맏이로서 가지고 온 여러 부담감과 아무도 나에게 책임지라고 말한 적 없는데 이 가족을 책임질 거야, 라는 나만의 생각과 이야기로 나의 어려운 부분들을 가족들과 나누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사실 가족들은 나에게 나무라거나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지 않았고 진심으로 염려해주었으며, 향후 나의 계획에 대해서도 물어봐주었다. 


코치님께 코칭을 받으면서도 나의 재정적인 부분에서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있지 않은지에 대해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내가 요청하면 사람들이 거절할 거야, 영업전화를 걸면 나의 전화를 스팸 처리해두면 어쩌지? 등등의 오만가지 생각을 하느라 자유롭게 영업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내가 모른다는 걸 들키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자문을 구하지도 못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일단 행동했고, 요청했고, 그리고 결과를 얻었다. 


30살의 문은지는 33살의 문서윤이 이렇게 고군분투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대박을 칠 거야, 라는 판타지만 가득했다. 정확히 돈을 끌어들일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늘 그런 환상을 가지고 살았다. 이번에 내가 얻은 건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건 환상이 아니라, 어떤 행동이 빠져있는가를 들여다보고 그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렇게 재정을 운영하다간 난 파산할 거야, 실패할 거야,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나의 미래에 '실패'를 적어두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가능하다' '나의 미래는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라는 것을 적어두고 행동하자 나는 더 이상 실패한 사람이 아니라 가능성이 넘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매일 아침 나의 재정상태를 눈으로 확인하고 통장잔고도 한 번씩 더 확인한다. 그래서 대비할 수 있는 것들을 대비하고, 그리고 행동한다. 사업이란 건 그냥 사업자등록증만 내면 다되는 줄 알고 시작했던 30살의 문은지가 33살의 문서윤에게 남겨준 것은 아주 많다. 경력과 경험도 주었고, 채무도 주었다. 33살의 문서윤이 34살의 문서윤에게 남겨줘야 하는 것은 플러스인생이다. 



2019년 12월 31일 성취문 

지난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동안 내가 벌어들인 수익의 평균은 내가 늘 말로만 이야기하던 월 1억 원이었다. 34살을 하루 앞둔 오늘, 나는 은행에 가서 모든 대출금을 상환했다. 은행 직원은 채무를 갚아서 너무 기쁘겠다며 축하해주었고, 나는 직원에게 적금을 추천해달라고 하여 적금통장을 만들었다. 부모님에게는 그동안 드리지 못했던 용돈으로 각각 천만 원씩을 현금으로 드렸고, 남자 친구와는 앞으로 우리가 결혼해서 함께 살 집을 분양받자고 이야기하며 집 정보를 알아봤다. 나는 34살의 문서윤에게 플러스인생을 선물해줬다. 그리고 35살의 문서윤에게 선물하고 싶은 것들을 차분히 성취문으로 적어내려 갔다. 기쁘고 또 기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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