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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서윤 Aug 19. 2019

나는 더 이상
피해자로 살고 싶지 않다

한 명의 엄마가 떠났고 아주 많은 어른들이 나를 키웠다



어제 고모를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고모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그녀의 삶에 머물다 갔는지 들었다. 많은 사랑을 받던 어린 시절부터 꿈이 좌절되던 사춘기, 많은 가족들에게 기여하는 삶을 살았던 시기, 남편을 잃고 슬픔에 잠겨있던 시기, 그리고 다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이야기를 나는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그리고 고모의 인생에는 나도 있었다. 고모가 나를 만났던 첫 번째 순간은 나의 첫 번째 엄마가 나를 낳고 병원비가 없어 퇴원도 못하고 있었을 때 아빠의 부탁으로 고모는 병원에서 나를 만났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 날 할머니의 긴급한 전화를 받고 달려왔을 때는 나의 첫 번째 엄마가 남긴 편지와 넋이 나가 있는 할머니의 품에 안겨있는 내가 있었다고 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지 100일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할머니는 나를 혹독하게 키웠다. 이 아이가 세상에서 미움받지 않고 자라기 위해서는 잘 키워야 한다는 게 할머니의 생각이었고 고모는 그런 할머니와 부딪혔다. 고모의 눈에 나는 항상 안쓰러운 조카였다. 이 아이가 더 사랑받으면서 자랐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늘 고모에게는 자리 잡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아빠가 두 번째 부인을 데리고 와서 나를 키우겠다고 하였을 때, 고모는 반대했다고 했다. 나의 두 번째 엄마는 너무 어렸고 고모의 염려는 엄마의 어린 나이에 비례하여 커져만 갔다. 하지만 할머니는 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나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렇게 나는 두 번째 엄마를 나의 첫 번째 엄마라고 생각하며 자라왔다. 


나는 엄마를 잘 따랐고 젊은 엄마가 좋았다. 공교롭게도 나의 첫 번째 엄마가 나를 낳았을 때가 23살이었고 두 번째 엄마가 나를 만났을 때의 나이도 23살이었다. 


나는 한 번도 두 번째 엄마가 나의 첫 번째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엄마를 너무나.. 그러니까 너무나 사랑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13살 끝무렵에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더없이 슬펐다. 사고처럼 그 소식을 들었고 사고를 당한 듯 아팠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에게 스치듯 첫 번째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 뒤로 어느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다. 그 어린 나이에도 사고를 덮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언제나 나는 버려졌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피해자처럼 살았다. 


그리고 최근 나는 피해자처럼 살지 않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나의 어린 시절이 나를 흔들지 않기를 바랐다. 게다가 그 사고로 나는 두 번째 엄마와의 관계에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걸 발견했다. 사람들이 두 번째 엄마와 나와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반응했다. 사람들이 엄마에게 '정말 딸 맞아요?'라고 물었을 때는 우리만 아는 그 사고가 들킨 거 같아서 화가 났고, 누군가가 우리에게 '정말 닮았어요'라고 말할 때는 입에 발린 소리라고 생각해서 화가 났다. '나를 낳은 엄마가 아닌데 우리가 어떻게 닮았겠어'라는 생각에 나는 늘 반응했다. 


나는 이 사고를 다시 들춰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그 사고를 알고 있는 어른들과 이야기를 한 후에 첫 번째 엄마를 찾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어제 고모를 만나 첫 번째 엄마에 대해 물었다. 고모는 나에게 그녀의 인생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황과 젊었을 때의 아빠의 모습과 가족들이 '가난'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했는지, 얼마나 희생하며 살아왔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한걸음 한걸음 내딛고 있는지를 말해주었다. 그리고 고모는 같은 상황이었고 같은 시대였어도 모두가 기억하는 것이 다르며 각자의 입장이 모두 다름을 이야기해주었다. 나에게는 고모의 길고 긴 이야기 속의 배경들이 그때의 일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고모는 내게 아빠와 이 대화를 나눌 것을 추천했고 나 역시 아빠와 이 대화를 나눌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나는 또 다른 사실을 발견했다. 한 명의 엄마가 나를 떠났지만 아주 많은 어른들이 나를 키우기 위해 관심과 애정을 쏟았음을 깨달았다. 고모는 6살 때까지 나에게 예쁜 옷을 사 입혔고,  할머니는 나를 6살 때까지 세상에 나가 미움받지 않도록 혹독하게 훈련시키셨으며, 그런 할머니의 혹독함 속에서 할아버지는 나를 따뜻하게 보살펴주셨고, 6살 이후부터는 나의 두 번째 엄마가 나를 여태까지 키웠고, 아빠는 나에게 단 한 번의 체벌도 없이 나를 키우셨다. 


고모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어린 시절의 내가 사실은 짠했다. 사랑받기 위해서 나는 늘 고군분투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아빠가 두 번째 엄마와 함께 나타나 나를 데려간다고 했었을 때, 나는 더없이 기뻤다. 나는 늘 아빠와 엄마를 기다려왔었다. 아직도 아빠와 두 번째 엄마가 시골에 내려와 할머니를 만나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리고 의정부에 올라와 살면서 두 번째 엄마는 나를 카메라에 담아주기 시작했다. 나의 끊겨있던 어린 시절이 사진으로 추억할 수 있었던 건 모두 두 번째 엄마 덕분이다. 


내가 첫 번째 엄마를 찾겠다고 결심한 건 다름 아닌 두 번째 엄마 때문이다. 두 번째 엄마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첫 번째 엄마에게 버려졌다는 이야기를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았다. 한 번도 두 번째 엄마의 사랑이 부족해서 불행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친엄마에게 버려졌어'라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살고 싶지 않았다. 


남자 친구와도 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첫 번째 엄마를 찾아갈 때 같이 가달라고도 요청했다. 남자 친구는 기꺼이 그러겠노라고 답했다. 내가 상처 받을까 봐 걱정하던 남자 친구는 나와 함께해주기로 하였다. 


어떠한 결말을 정해놓고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는 잘 살고 있습니다. 엄마도 잘 살고 있지요?'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아주 많은 어른들이 나를 아껴주었고 보살펴주었다고. 그러니 혹여나 마음속에 나를 버렸다는 죄책감이 있다면 그것을 남김없이 버려버리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첫 번째 엄마를 만나 안아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23살의 그때의 엄마를 안아드리고 싶다. 그리고 그 힘든 상황에서도 나를 낳아줘서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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