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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서윤 Mar 28. 2020

이번엔 운이 아니었다


나의 말 습관 중에는 "운이 좋았어"라는 게 있다. 굳이 겸손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쓰는 말이 아니라, 정말 '운'이 아니라면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이 나에게는 많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더욱 '운'에 매달렸는지도 모르겠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듯이 70%의 운에 매달리느라 30%의 실력은 늘 등한시되었다. 아니 어쩌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들을 계속 마주하거나 성과가 나지 않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더 '운'이라는 것에 매달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일이 잘 되면 "운이 좋았어"라는 말을 했다. 노력을 안 했던 건 아니었지만, 나 스스로 내가 하고 있는 노력을 저평가했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 나는 처음으로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에 "운이 좋았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번엔 운이 아니었다. 모든 게 하루하루 쌓아 올린 나의 노력들이 만들어낸 결과로 물든 하루였다. 


오전 10시 30분 업무 미팅을 하러 A업체에 갔다. 해당 업체와는 여러 번 일을 했지만, 이번 부서와 일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다른 부서에서 우리 회사를 소개해주었고, 덕분에 쉽게 일이 진행되었다. 우리 회사가 가지고 있는 포트폴리오도 좋았고, 해당 업체와 과거 일을 했던 경험 또한 좋았기에 이번 부서에서 우리와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리스크가 없었다. 미팅을 하러 갈 때는 계약을 검토하기 위한 미팅이라고 생각했는데, 자리에 앉아 미팅을 하다 보니 이미 계약이 되었다는 전제하에 작업을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 지에 대한 미팅이었다. 일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성사되어있었다. 


-> A업체와 과거 일을 할 때 뉴캄웹툰컴퍼니에서는 최대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A업체에서는 웹툰 제작이 처음이었고, 주어진 예산도 적었지만 조건을 따지지 않고 그냥 했다. 그리고 결과를 만들어냈고, 예산 이상으로 일을 했다. 일이 끝났을 때, 의뢰를 준 부서에서 전체 부서에 우리 회사를 소개하고 홍보해주었고 지금도 소개를 계속해주고 계신다. 운이 아니었다. 정말 제대로 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내고자 했고 그래서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하나의 포트폴리오가 다른 의뢰를 불러들였고, 부족한 부분은 보강해 나가면서 그렇게 성장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일은 70%의 운이 아니라 30%의 실력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오후 2시 50분 남자 친구와 통화를 했다. 예비창업패키지에 넣었던 사업계획서가 1차 서류평가에 통과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사업계획서는 거의 한 달 넘게 남자 친구와 함께 사업 아이템을 함께 고민하고, 사업계획서를 다시 엎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아가며 정말 한 자 한 자 완성한 케이스였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예비창업패키지 지원사업 기간이 연장되었는데 덕분에 마지막까지 고민하고 고민하여 서류를 제출하였는데 서류평가에 통과된 것이다. 물론 발표평가가 남았고, 누구 앞에서 발표라는 걸 해본 적 없는 남자 친구는 벌써부터 울렁증으로 청심환을 찾고 있지만 우리는 목적지로 가기 위한 한 단계를 넘은 것에 서로 축하해주었다. 


-> 개인적으로 사업계획서를 몇 번이나 썼는지 모른다. 그리고 붙은 것보다 떨어진 날이 더 많았다. 그래서 이번에 남자 친구가 사업계획서를 쓸 때는 주변에 많이 물어봤다. 과거에 나는 혼자서 내가 구상한 사업 아이템에 빠져서 열심히 작성하고 열심히 떨어지기 바빴다. 이번에 남자 친구와 나는 열심히 주변에 사업 아이템에 대해서 알리며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나씩 찾아가며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과거에 했던 방식대로 한 것이 아니라 주변 지인부터 전문가의 의견까지 고루고루 수취해가며 많은 시간을 투입하여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우리 회사 사무실에서 나와 남자 친구는 백분토론을 방불케 하는 질문과 답변으로 다 작성한 사업계획서를 엎어버리고 새로운 아이템을 다시 구상한 것이 효과적이었다. 운이 아니었다. 더 뾰족하게 아이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이번 일은 70%의 운이 아니라 30%의 실력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오후 4시에 B업체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급하게 일을 진행해야 하는 건이 있고, 영상제작업체를 소개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나는 바로 나와 같이 협업하고 있는 영상제작업체 대표에게 연락하여 해당 건을 이야기하고 견적서와 회사소개서를 받아 B업체에 전달했다. 다행히 영상 제작업체도 스케줄에 맞춰서 진행하는 것이 가능했고, B업체 역시 영상제작업체의 견적을 바로 오케이 했다. 서로가 만족스러운 조건에서 계약이 체결되었고, B업체와 영상제작업체 모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들을 수 있었다. 


-> B업체와 좋은 관계를 맺은 것은 B업체에 웹툰을 납품하면서이다. 뉴캄웹툰컴퍼니에서는 항상 해달라고 하는 것 이상의 것을 찾는다. 첫 번째 작업의 피드백이 긍정적이었고, 이후 진행했던 다른 일들 역시 잘 마무리되었다. 그랬기에 나에 대한 신뢰와 우리 회사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영상제작업체 또한 마찬가지였다. 매번 협업을 하며 다양한 일을 하다 보니 급하게 이런 요청을 받아서 토스하더라도 그것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그 일이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더라도 일단 나를 통해서 전달받는 일들은 오케이 하는 사이. 운이 아니었다. 나는 B업체와 영상제작업체 모두 오랜 기간 신뢰를 쌓아왔고 이를 통해 누구의 요청이라도 빠르게 해결해줄 수 있는 입지가 되었음을 확인한 사례였다. 그래서 이번 일은 70%의 운이 아니라 30%의 실력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오후 11시 17분에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 회사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냈다. 직원들이 그 시간까지도 일을 하고 있었고 업무 보고가 계속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자 친구는 직원들이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도 열심히 일해줘서 고맙지 않으냐고 물었다. 하지만 나는 이 시간까지 일하는 건 업무량이 많거나, 아니면 업무를 처리하는 데 아직 업무 속도가 느리거나, 업무를 늦게 시작했거나 또는 내가 파악하지 못하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어찌 되었든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걸 원치 않는다고. 그래서 나는 직원들에게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업무를 중단하고 월요일에 이어서 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직원들은 알겠다는 답변을 보내오고 그 이후 업무보고 릴레이는 이어지지 않았다. 남자 친구는 재택근무임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이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건 어쩌면 직원들이 일이 재밌어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복 받은 거라고. 하라고 해도 안 하는 직원들이 넘쳐나는데, 지금 직원들은 이렇게 늦은 시간에도 일을 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라고. 


-> 코로나 19가 퍼지기 전부터 뉴캄웹툰컴퍼니는 재택근무로 돌아가던 회사였다. 재택근무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해서 플로우, 구글드라이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카카오톡 대신에 플로우 메신저를 활용하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시스템 안에서는 누가 언제 어떤 일을 어디까지 했는지에 대한 내용들이 실시간 공유된다. 그래서 직원들의 업무보고가 실시간 댓글로 올라오기에 전 직원이 늦게까지 일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 회사는 매주 월요일마다 주간회의를 통해 효과적인 것/효과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서 다룬다. 2주 전에 한 직원이 효과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업무 시간이 꼬여 스스로 정한 시간 이후에 업무를 마무리한 것은 효과적이지 못했다. 루틴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시간 관리에 힘쓰기로 함'이라는 내용을 전달한 바가 있다. 남자 친구의 말대로 일이 너무 좋아서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대표로서 직원들이 늦은 시간까지 업무를 하거나 휴일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을 하는 건 원치 않는다. 그래서 업무를 끊었고, 그것에 대한 책임은 내가 가지고 가기로 했다. 


나는 운이 좋아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이 들어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직원을 뽑을 때 30명이 지원했고, 그중에서 20명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고, 서면 인터뷰에 통과된 10명의 사람들과만 대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대면 인터뷰에서 나는 모든 면접자들에게 '평생직장은 더 이상 없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게 창업이라면 여기서 어떻게 하면 창업할 때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며 일을 배우세요, 당신이 원하는 게 경력직으로 더 나은 조건에서 일하는 것이라면 우선 여기서 경력을 쌓으세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올해 2월에 졸업한 2명의 신입사원들과 같이 일하고 있다. 


직원들을 감시하지도 않고 감시할 필요도 없다고 느낀다. 다만 효과적으로 서로가 일하는 경험을 나누기를 바란다. 그런 조직을 만들고자 했고, 그런 시스템 안에서 누가 들어와도 효과적으로 일하기를 원했기에 직원들을 뽑기 전부터 조직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썼다. 지금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을 만난 것은 운이 아니다. 이번 일 역시 70%의 운이 아니라 30%의 실력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운칠기삼: 사람이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성패는 운에 달려 있는 것이지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


나는 늘 70%의 운에 매달리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목표한 것에는 늘 닿지 못한다는 생각에 좌절하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더 운에 매달린 것이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을 기점으로 나는 내가 아주 큰 걸 놓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70%의 운이 있다고 하더라도 30%의 노력이 없다면 그것은 절대 100% 나의 것이 되지 않는다는 것. 30%의 기반은 내가 만들어놔야 한다는 것. 그것에 절대 소홀하지 말 것. 어떤 일은 성과가 나려면 시간이 필요한 일이 있고,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서 쌓아야 하는 지식이 있다는 것. 꾸준함을 이길 수 있는 건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것. 나는 30%의 노력의 진가를 깨달았다. 


지난 금요일 좋은 일들이 연달아 생겼을 때, 나는 잠시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생각했다. 아마 내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운'이었다면 나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불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어쩐지 운이 좋더라니...라고 하면서 나에게 갑자기 닥친 어떤 일에 맥없이 씁쓸한 웃음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불안하지 않았다. 어느 것 하나 단순히 '운'으로만 이뤄질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운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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