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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간을 갖자

- 사랑은 어렵다.사람도 어렵다.관계가 어렵다.

by 시오




어느 날 남자친구가 나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 우리 서로의 사정을 생각해 볼 시간을 갖자고. 그 말을 들은 나로서는 뭐랄까... 비가 내리는 거리에 우산도 없이 서있는 기분이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뜬금없이 그가 나에게 시간을 갖자고 말을 했다. 도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이며, 그 시간은 무슨 의미란 말인가.


나는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었고, 그는 이야기를 중단하고 싶어 했다. 나는 그에게 십 분만 더 이야기를 하자고 했고 비로소 그는 승낙하였다. 십 분. 나는 그 십 분 동안 이 상황을 어떻게든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단지 좀 이 상황을 이해하는 데만이라도 그 십 분을 할애하고 싶었다. 그에게 말했다. 왜 그러느냐고.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애초에 그에게 시간을 좀 가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 건 나였다. 유학생활을 하면서 나는 한국에 있을 때 보다 더 많이 외로움을 탔다. 그래도 한국에 있을 때 보다는 서로에게 돈도 안 쓸뿐더러 서로에게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는 아주 수학적인 공식을 대며 나는 이렇게 한 시간 정도 통화하는 게 어떠냐고 응석을 부리곤 했다.


하지만 그의 대화가 줄어들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쉼 없이 말하고 있었고 그는 딴 일을 하기 일쑤였다. 나는 그게 싫었다. 나에게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 그의 모습에 서운해지기 시작했다. 사랑받고 있지 않다는 그 느낌이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헤어져야 하는 건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헤어지면 그 후에는 어떻게 되는 거지?라고 나 자신에게 물었지만 이 관계를 지속하는 것도 헤어지는 것도 그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잘못하는 것도 그가 잘못하는 것도 그 어느 쪽의 잘못이 더 크다, 작다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저 지치고 있는 것이었다. 그저 좀 힘이 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만나서 안아주면 그만인 일을 우리는 모든 대화로 풀어야 했고 오해가 생길 때마다 우리는 시간을 들여야 했다. 그게 힘이 들곤 했다. 만나지 못하므로 우리는 어떻게든 합리적인 방법을 찾으려 애썼다. 그러다가 한계가 온 것이다.


남자친구는 집안일로 힘들어했고, 나는 내 공부로 힘들어했다. 하지만 나는 남자친구와 있음 힘이 났고 남자친구는 나와 있는 것을 힘들어했다.


어느 날은 부재중 전화가 분명 떴을 텐데도 나에게 전화를 걸어오지 않았다. 문자를 보내도 확인하지 않았다. 다음 날 어렵게 된 통화에서 남자친구는 해맑게 전화를 받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기가 생겨서 걸었던 열 통의 전화가 허무함과 함께 파도처럼 쓸려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누가 봐도 집착하는 여자의 모습을 미련 없이 보여준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느낌이 지속될수록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고 나를 고립시켰다.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구나라고 여겼다. 우리에게 사랑은 식었구나. 아니, 그에게 나는 더 이상 사랑하는 대상이 아니구나라고 말이다.


그에게 물었다. 아직도 나를 사랑하느냐고.

그는 대답했다. 응.


다시 물었다. 아직도 나를 소중히 생각하느냐고.

그는 대답했다. 응.


마지막으로 물었다. 아직도 내가 보고 싶냐고.

그는 대답했다. 응.


나는 사랑한다고 말했고,

그 역시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아니 그에게 필요한 건 정말 시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내가 싫어서 떠나는 것도 내가 질려서 떠나는 것도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주변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고

자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그 시간을 내가 방해하는 건 우리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꼴 밖에 되지 않는 것이라고 나는 느꼈다. 시간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믿으니까, 시간을 주겠노라고. 그는 고맙다고 했다. 하필 300일을 맞이한 날에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이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300일은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고. 내게 중요한 건 너니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는 고맙다고 했고. 우리는 그 이후로 연락하지 않았다.


김삼순의 마지막회였던가?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김선아가 현빈과 정려원의 이별여행을 허락했던 것을. 그리고 한동안 연락이 없었던 것을. 마치 그런 기분을 느꼈다. 어딘가 사라져버린 느낌. 내 손을 잡고 있던 그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느낌. 허무함이 밀려오고 침대에 누워서 나오지도 않고 생각에 잠겼다. 잘한 일인가? 우리 이대로 헤어지는 건가? 아님 정말 돌아오긴 돌아오는 걸까? 연락을 다시 해볼까? 셀 수도 없는 생각들이 머리에 들어앉아서 나를 괴롭혔다. 단지 쿨한 척한 것뿐이라고 나는 나를 못났다고 여겼다. 하..... 한숨이 나의 방을 가득 메우고도 나의 숨통을 조르는 느낌. 공기가 필요했다. 창문을 열고, 문득 눈에 들어온 책장에 꽂힌 책을 꺼내 들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책을 펼치고 눈에 들어오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동굴에 들어가고 싶다는 대목이 나를 사로잡았다.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한다고 말이다. 그럴 때 여자는 묻지 않고 그에게 시간을 주어야 하고, 그가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갖지 않도록 여자는 자신의 삶에 만족스럽게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남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갖지 않으면 오히려 더 무기력해진다고. 여자는 문제가 생기면 같이 나누는 습성이 있지만, 남자는 문제가 생기면 자신만 공유하려는 습성이 있다고 말이다. 나는 내가 썩 괜찮은 대화를 그와 나누었다고 느꼈다. 더 묻지 않았고, 그 이후로 잘 지냈다. 아니, 아직도 잘 지내고 있다.


그와 연락하지 않은지 오늘로 3일째.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자기의 일들을 적었고, 그의 사진과 그의 글들을 업데이트가 될 때마다 보곤 한다.


어제였나? 그가 나의 블로그에 와서 글을 남겼다. 미안하다고. 너무 심한 말을 한 건 아닌지. 혹 내가 울고 있진 않은지 걱정이 된다고. 그래도 믿어줘서 고맙다고.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사랑은 어렵다.

사람도 어렵다.

관계가 어렵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말했다. 연인 사이에서도 사랑이 전부가 아니라고. 신뢰도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우리에게 신뢰가 없다면 사랑만으로는 어렵다고. 나는 그를 믿는다. 그가 나를 믿는 만큼.


언젠가 나는 그에게 물은 적이 있다.

우리 오래 사귀지 않겠냐고.

그가 나에게 답했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그거면 되지 않겠는가. 그거면 말이다. 일주일을 기다려야 할지 이주일을 기다려야 할지. 혹 한 달을 기다려야 할지 나는 잘 모르겠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생활을 잘 하는 것. 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그가 보고 싶다. 하루라도 빨리 그에게 안겨 그가 들려주는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 언제 들어도 좋은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언제 보아도 좋은 그의 얼굴을 보고 싶다. 그리고 들려주고 싶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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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그리울 때마다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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