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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서윤 Feb 20. 2016

독립출판물 어때요?

[리뷰] 제2회 상상BOX 어쿠스틱 책방 




한국, 춘천 

Korea, Chuncheon

February 2016 


새벽 5시까지 글을 쓰다가 잠이 들었어. 하지만, 춘천에 가려면 일어나야 했지. 다행히 알람도 맞추지 않았는데, 오전 10시에 눈이 떠지더라고. 밤 10시가 아닌지 다시 한 번 확인했어. 정말 피곤했거든. 누가 가라고 떠밀어도 못 갈 것 같은데, 나는 피곤함을 잔뜩 껴안고 샤워를 했지. 어디를 갔다 왔냐고? KT&G 상상마당 춘천에 다녀왔어. 너도 알지? 내가 요새 독립출판물에 관심이 많다는 걸 말이야. 지금 KT&G 상상마당 춘천에서는 제2회 상상BOX 어쿠스틱 책방 전시를 하고 있거든. 그런데 며칠 전부터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못 가고 있었어. 심리적으로 춘천까지 대중교통으로 가기가 너무 먼 거야. 물론, 실제로도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 우리 집에서 춘천까지 가려면 3시간 30분 정도 걸리거든. 



너무 피곤해서 지하철에서 입 벌리고 잔 것 같아. 다행히 같은 칸에 사람이 많이 없었지만, 아주 오랜만에 너무 창피했어. 남춘천역에 내려서 택시를 탔어. 남춘천역에서 KT&G 상상마당 춘천까지 가는 버스가 있기는 한데, 화요일만 운행을 한다지 뭐야...  춘천이 무척이나 생소하여, 이 곳을 과거에 온 적이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봤어. 그런데, 그 어떤 기억도 나지 않더라고. 첫 춘천 여행이라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조금 설레었어. 물론, 전시만 보고 다시 서울로 돌아갈 거지만 말이야. 



KT&G 상상마당 춘천 외관은 날씨 탓인지 굉장히 쓸쓸해 보였는데,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자 따듯한 기운이 넘쳐났어. 마치, 벽난로 안에 들어와있단 생각이 들었지. 전시는 A전시실과 B전시실로 나뉘어 있고, A전시실에서는 독립출판물을, B전시실에서는 인디레이블을 소개하고 있어. 



벽에는 독립출판물에서 발췌한 문구들이 써져 있었어. 벽에 쓰여 있는 글을 읽으면서 생각한 건, 어느 것 하나 마음이 깃들지 않은 게 없다는 거야. 마음이 깃드니 벽에 써져 있는 글귀들이 모두 살아있다고 느껴지더라고. 글로 만든 책, 사진으로 만든 책, 어린이를 위한 책 등 카테고리를 구분해 놓았는데  그곳에 전시된 책들은 모두 정성스럽게 전시되어 있었어. 만든 사람도 전시한 사람도 작품의 가치를 올릴 줄 아는 사람들 같았지. 곳곳에 의자가 놓여있어서, 전시된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어. 나는 대략 4시간 정도  그곳에서 머문 것 같아. 물론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의 책들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 하지만, 어마어마하게 좋은 글, 그림, 사진이 있었지. 




오늘 내가 읽은 책들을 얘기해줄게. 


01. 돼지씨의 옷장 / 김성라 

제목 그대로 돼지씨의 옷장을 구경하는 책이야. 돼지씨는 매일 그 날의 콘셉트에 맞게 옷을 골라. 그리고 돼지씨 얼굴에 자신이 오늘 입은 옷을 그려보라며 여백을 만들어 놓았지. 처음에는 그저 귀여운 돼지  그림이네,라고만 생각했어. 하지만, 작가가 만든 다른 책에 써놓은 글을 보니, 단순히 귀여운 돼지 그림이 아니구나, 라는 걸 깨달았지. 구제역 때 살아있는 돼지들이 구덩이에 묻히는 영상을 보고  나서부터는 사람들이 하나, 둘 돼지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거야. '돼지와 우리는 뭐가 다른 걸까'라는 물음으로 시작된 예술활동인 거지. 어떠한 경험은 그 전과 다른 삶을 살도록 만들어 놓기도 하는 것 같아. 

작가: 김성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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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나무와 나방 이야기 / 나호준 / 쏘덱

어느 날, 벼락을 맞은 나무에 나방이 찾아와. 하지만, 이미 나방은 많이 지쳐 있었어. 나무는 나방을 걱정하고, 나방은 나무에게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해. 그리고 나무는 기나긴 이야기를 시작해. 씨앗이었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말이야. 하지만, 나무의 이야기를 마쳤을 때, 나방은 이미 죽어있었어. 죽어버린 나방을 대신해서 그녀의 알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지. 그리고 나방의 이야기가 시작돼. 나무와 나방으로 시작된 이야기지만, 내용 자체는 우리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느껴졌어. 어느 것 하나 보잘 것 없는 생명이 없고, 신비롭지 않은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었어. 

작가: 나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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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대륙의 시작 / 글: 이세미 / 그림: 전진희 / 일본어 번역: 조경 / 영어 번역: 이영주 / 디자인: 송민선 / 재미공작소

이 책은 내용보다도, 영어와 일본어 번역을 동시에 한국어와 같이 기재했다는 것이 신선했어. 한국어와 영어로 동시에 적혀있는 책들은 볼 수 있었지만, 삼개국어를 동시에 한 페이지에 넣는 것은 보지 못했거든. 나중에 나도 책을 만들 때 참고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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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검은신 / 이부록, 안지미 디자인 

검은신은, 고무신을 이야기하는 거야. 검정 고무신을 기억하는 사람도, 신는 사람도 없어지고 있지. 하지만, 작가들은 마치 잊어버리면 안 된다는 듯이 검정 고무신을 아주 많은 사물들과 연결시켜서 디자인을 만들어 냈어. 오브제. 그들이 디자인한 검은신은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하지. 

작가: 이부록, 안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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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초콜릿 친구 / 박일진 / gumbook 

초콜릿을 아주 다양하게 표현한 책이야. 친구를 표현할 때, 나는 한 번도 초콜릿에 비유한 적이 없었는데, 작가는 초콜릿을 아주 예쁘게 사용했더라고. '든든하게 의지할 수 있는 속 깊은 다크 초콜릿 같은 친구', '작은 몸짓에도 부드러움이 묻어 나는 화이트 초콜릿 같은 친구' 등, 재미있는 표현들이 많아. 그리고 그림도 정말 예뻐.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작가야. 

gum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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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Banana / 홍찬미 / gumbook 

바나나에 대한 이야기야. 조금 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바나나를 좋아하는 원숭이가 바나나를 키우며 생기는 일을 알파벳 B로 이야기하는 카드북이야. 껌북의 카드북 시리즈가 매력적이라고 느낀 건, 아주 얇은 책에 아주 예쁜 이야기를 너무 잘 담아냈다는 거야. 선물해주기 아주 좋은 책 같아. 원숭이도 너무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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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엄마! / 임선화 / gum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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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아빠! / 임선화 / gum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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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빠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겨있는 카드북이야. 임선화 작가는 아주 다양한 종류의 카드북 작업을 했더라고. 바구니에 잔뜩 담아놓은 장난감들이 쏟아지듯, 좋은 책들이 많아. 




09. 커피북 / 최정미 / gumbook 

나는 그림을 좋아해. 물론, 글도 좋아하지. 그래서 나는 그림책을 좋아해. 아기자기한 그림들, 그리고 그 그림 안에 작가가 담아 놓은 상상력과 창의력을 접하는 순간, 나는 두근거려. 커피북이 내게는 그랬어. 작가의 창의력을  들여다볼 수 있었지. 초콜릿 친구처럼, 커피를 다양하게 표현했어. 글을 보고,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글에 색깔이 입혀져 그림이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야. 

gum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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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내가 30대가 됐다 / 이랑 / 소시민워크 

읽는 내내 너무 공감돼서 깔깔 거리고 웃다가, 친구들한테 메시지를 보냈지. 장이 움직일 정도로 한바탕 웃을 수 있는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내고 나니, 모두 나처럼 공감하더라고. 삼십이 되길 잘했어. 이 책을 읽고, 누구보다 공감했으니까 말이야. 이랑이라는 작가는 책도 만들고, 음악도 하고, 영화도 하더라고. 그래서 집에 와서 작가에 대해서 조사하다가 그녀가 만들었던 음악도 들어봤어. 욘욘슨이라고 들어봤어? 그녀의 1집 앨범이야. 올해 상반기에 2집이 나온다고 하니까, 같이 기다려 보자고. 

작가: 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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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욘슨 앨범 




11. 리얼제주 매거진 iiin[인]

제주 이야기를 담은 잡지로, 제주에서 일어나는 많은 이야기들을 전해 주고 있어. 여행을 가기 전에 한 번 보아도 좋을 거 같아. 제주도에 사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제주도, 정말 괜찮지 않아? 글, 그림, 사진에 애정이 담겨 있으니까 말이야. 또한, 지켜야 할 제주의 자연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어. 제주 곶자왈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하여 자연이 훼손되고 있다는 거야. 자연이 있어야 할 곳, 그들이 머무를 곳을 계속 헤치는 것은 정말 좋지 않다고 생각해.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어. 안 그럼, 우리는 금세 아름다웠던 제주도를 잃어버리고 말 거야. 

리얼제주 매거진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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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장기여행자 잡지 / 사만키로미터 

나는 여행을 참 좋아해.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기회만 있다면 어디로든 떠나라고 이야기하지. 매번 잡지를 발행할 때마다 키워드를 뽑아서 키워드에 적합한 글을 싣고 있었어. 우연히, 친구 지윤이의 글도 잡지에서 보게 되었지. 지윤은 엄마와 인도 여행을 다녀와서 자신만의 책을 만들었어. 하지만, 아빠가 보고 싶었다던 그녀의 글이 나의 마음을 붙잡았어. 사람들은 왜 그렇게 떠날까. 나는 왜 그렇게 여행을 가느냐고? 그 질문에 대해서 나도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는데 말이야. 나는 정말 내가 살고 싶은 곳을 찾아 헤매는 것 같아. 내가 정말 머물고 싶은 곳을 찾기 위해 계속 헤매는 거지. 언젠가는 찾겠지. 장기여행자 잡지는 기고글도 받고 있으니까, 너의 여행 이야기도 언젠가 잡지에서 만나보기를 바랄게. 

사만키로미터 

장기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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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도쿄맑음 / 방지연 / 램램 

다음으로 소개할 책은, 도쿄맑음이라는 표지도 예쁘고, 내용도 예쁜 책이야. 작가가 2006년부터 2008년 여름까지 도쿄에서 보낸 이야긴데, 카페, 자카, 그리고 빵에 대한 도쿄 안내서야. 사실 이 책만 보고 있어도 도쿄에 있다고 착각하게 돼. 알고 보니, 방지연 작가는 osanpo 시리즈로도 워낙 유명하더라고. 그리고 이미 여러 종류의 여행책을 내면서 여행을 사랑하는 독자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거 같아. 그리고 지금은 제주도에서 동생과 함께 빵집을 운영하고 있다고 해. 이미 입소문이 많이 나서, 그녀가 만든 베이글을 먹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모양이야. 제주도에 가서 베이글에 커피 한 잔 할까?  

시스베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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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전시실에 가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독특한 앨범들이 많았는데, 만든 사람의 개성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앨범이 많았지. 가사가 아니라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주욱 적어놓은 것 같았어. 읽는 것도 듣는 것도 재미있는 앨범이 많아. 




관람을 마치고 1층에 있는 댄싱카페인으로 들어갔어. 바게트 피자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지. 카페에 앉으면, 의암호를 볼 수 있어. 사람들은 모두들 창가 쪽 테이블에 줄지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고, 많은 생각들이 공유되는 저녁이었어. 




아주 많은 예술가와 함께 같은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는 게 기뻤어. 멋지지 않아? 누군가는 글을 쓰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또 어떤 이는 노래를 부르며, 그렇게 사는 거지. 


맞아... 그렇게 사는 거지. 

그게 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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