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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서윤 Feb 24. 2016

누구도 아닌
우리의 아픈 이야기

[리뷰] 귀향 & Spirits' Homecoming




한국, 서울 

Korea, Seoul 

February 2016 


귀향 포스터


감독/각본/제작: 조정래 

제작: 제이오엔터테인먼트

배우: 강하나, 최리, 손숙, 황화순, 정무성, 서미지, 류신, 임성철, 오지혜, 정인기, 김민수, 이승현, 박근수, 차순형, 홍세나, 김시은, 박충환, 지윤재, 노지용, 윤정로 등 


귀향 공식 홈페이지

귀향 영화 정보

귀향 페이스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우리의 아픈 이야기


꽃무덤에 나비가 내려앉아. 그리고 그들을 어루만지듯 모시나비가 그 위로 훨훨 날아. 훨훨 나비가 날아가는 데 눈물이 났어. 미안한 마음이 계속 남아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검은 화면을 계속 응시했어. 나는 어쩌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 지도 몰라. 그래서,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아. 영화 한 편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의무를 다하는 거라고 말이야. 어쩌면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도 몰라. 그래서 우리는 생각보다 너무 많은 것들을 놓치고, 쉽게 단정 지음으로 인해서, 그들의 상처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지도 몰라.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 없어. 그러니까 절대 그들의 슬픔을 쉽게 추측하지도, 가볍게 평가해서도 안 돼. 우리는 그들을 보고 있지만, 말 그대로 보고 있을 뿐이니까. 


처음에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다행히도 상영관과 상영일이 늘어나서 많은 사람들이 '귀향' 영화를 볼 수 있게 됐어. 평일 낮이었는 데도 불구하고, 내가 찾은 상영관에는 사람들이 자리를 많이 채워주었지. 서로 잘 모르는 사이지만, 나는 왠지 그들도 나와 같이 감정을 나누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어. 어쩌면 영화 한 편 보는 것일 뿐이지만, 어쩌면 그건 경험을 나누고, 마음을 나눌 준비를 한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하니까 말이야. 


사실, 영화가 시작되면서 나오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곧이어 나올 잔혹한 장면과 대비될 것이 너무 예상되어, 첫 화면부터 마음이 불안했어. 소박하게 웃고 동무들과 재밌게 노는 여자 아이들의 모습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기에 더욱 마음이 아파왔어. 누군가 스크린 속으로 달려가 어디라도 좋으니 제발 도망치라고 이야기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제발 어디라도 도망가서, 이런 건 모르고 살라고 말이야. 


끌려가는 딸을 지켜주지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면서, 정민의 어머니는 정민에게 괴불 노리개를 쥐어줘. 부적처럼 쥐고 있으라고 말이야. (괴불은 오래된 연뿌리에 서식하는 열매 이름으로, 주로 부녀자나  어린아이들에게 부적의 의미로 삼재를 잘 이기라고 세모 모양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어디로 끌려가는 지도 모르는 여자 아이들의 나이는, 고작 열넷에서 열여섯  정도밖에 되지 않았어. 그럼에도 그들은 끌려온 아이들 중에서 가장 어린 정민을 지휘관에게 바치고, 나머지 아이들도 일본군에게 짓밟혔지. 일본군들은 정말 여자 아이들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았어. 황군을 위한 암캐로 생각했고, 그런 그들의 생각은  더욱더 여자 아이들을 끝없는 지옥으로 몰아넣었지. 진심으로 역겨운 장면들이 많았어. 집단으로 이뤄지는 잔혹한 행동들 속에서, 아이들이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생각이 많아졌어. 


지옥에서  살아남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에 의해, 1990년대 한국에서는 정신대 신고 접수를 하기 시작해. 그 소식을 듣고, 할머니가 된 영희는 동사무소에 가서 신고를 하려고 하지. 하지만 망설이다가 뒤돌아섰어. 분명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테니까 말이야. 그런데, 돌아서는 영희 뒤로 동사무소 직원들끼리 수군대는 말이 들려와.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이런 걸 신고하겠냐고 말이야. 


"내가 그  미친년이다! 우짤래!" 


지옥에서 살아 남아 왔지만, 여기라고 천국일까. 고향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하는 이 곳이 과연 그들에게는 돌아오고 싶던 '집'이 맞을까란 생각을 했어. 그렇게 돌아오고 싶었던, 돌아가야만 했던 곳이었는데, 그들을 우리와 다른 집단으로만 생각한 건 아닌지 반성이 많이 됐어. 한국 정부의 일방적인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 제대로 막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바꾸지도 못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워졌어. 스크린 속에 나오는 동사무소 직원이 나의 모습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그런데도 불구하고, 굿을 하던 중에 은경의 몸에 깃들어 만나게 된 어린 정민은, 할머니가 된 영희를 보며 이렇게 불러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이야기를 해. 그 말을 듣는 나는 미안해졌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한 분, 한 분 세상을 떠나시고, 생존해계신 할머니들이 몇 분 계시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늦은 건 아닌가 하고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심 가져 줘서 고맙다는 그 말의 울림은 그 어떤 대사보다 컸어. 


귀향 굿을 하고, 아이들의 영혼과 시신이 버려진 꽃무덤 속에 묻혀있던 어린 정민은 고향으로 돌아가. 엄마가 있고, 아빠가 있는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가. 영화가 시작되고 계속 반복됐던 그 대사. 집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그제야 끝이 나. 


영화가 끝난 후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그림을 볼 수 있었어.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깊숙한 곳에 남아 있었단 사실을 알 수 있었지. 하지만, 많은 작품들이 유작이라는 것이 마음 아팠어. '태워지는 처녀들'이라는 작품을 보며, 제발 허구이기를 희망했어. 사실이 아니라, 누군가 만들어낸 아주 잔인한 허구라고 말이야. 믿어지지 않은 일이 과거에 벌어졌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우리는 쉽게 그 일을 잊은 건 아닌가 놀라웠어. 누군가는 하루라도 빨리 이 일을 동사무소 직원처럼 실적이나 내려고 해치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누군가는 피해자들을 모두 죽여버리면, 그 현장을 모두 없애버리면, 역사가 사라질 것이라고 아주 단순하게 생각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 하지만 더 놀라운 건, 그 단순한 생각을 아직도 가진 채 지워 버리고 싶은 역사의 한 페이지 정도로 생각하는 게 정말 믿기지 않아. 


영화를 객관적으로 놓고 보자면, 영화를 만든 짜임새와 구성력은 정말 높게 평가하고 싶어. 맞물려가는 스토리와 배우들의 연기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만들어진 것이 없었어. 영화를 보기 전부터 잘 만들어 줬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어. 단순히  그때의 일을 세상에  끄집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 의미와 작품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을 때, 분명 더 많은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자신이 서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고, 본인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줬으면 좋겠어. 누군가는 글을 쓰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좋은 작품에 투자를 생각하며, 약자를 위한 프로그램과 정책을 세우는 거지. 누군가의 아픔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해두거나 잊어버린다면, 나의 아픔 역시 타인에 의해 너무 쉽게 잊힐 거라고 생각해.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많을 거야. 그리고 뜻이 맞는다면 같이 한 번 해보는 거지. 의미 있고, 재미있게 말이야. 


지금은 2016년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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