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건 네가 미안할 일이 아니야
그 날은 밖에 나가지도 않고 집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음 날 일정이 많은 탓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밤 10시가 조금 넘었을 때, 친구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친구가 아니었다. 내 이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름을 연신 부르시더니, 정말 아니냐고 한 번 더 물어보셨다. 나는 전화를 잘못 거셨다며 전화를 끊었지만, 친구 이름으로 걸려온 전화이기에 나는 마음에 걸려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 번호를 바꾼 것인지, 아니면 핸드폰을 잃어버린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핸드폰 번호도 바뀌지 않았고, 나에게 전화를 건 적도 없다는 걸 보니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친구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그러면서 갑자기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되어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나는 내일 시간을 내어 찾아가겠노라고 전하고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친구는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뀐 해부터 알게 된 친구였다. 우리는 비슷한 키 때문에 늘 앞뒤로 앉곤 했다. 하지만, 늘 그 친구가 더 컸고 달리기도 더 빨랐다. 중학교까지도 친하게 지냈었는데, 고등학교 때 다른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연락하지 못하고 지냈다. 그러다가 몇 해 전에 경주로 여름휴가를 보내러 혼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때마침 그 친구도 경주로 혼자 여행을 오게 되어 우리는 그곳에서 다시 만났다. 아주 오랫동안 보지 못했지만, 우리는 편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래된 친구는 늘 이런 것들이 좋다. 우리는 다시 그때로 잠시 돌아갔고, 너무 오래돼서 기억은 안 나지만 우리는 분명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사이였다는 걸 상기시키는 하루였다.
일정이 많은 날이었지만, 나는 시간을 쪼개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절은 어떻게 하는 건지, 조문 예절에 대해서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아직은 장례식장을 가는 일이 많지 않다. 그래서 늘 장례식장을 갈 때마다 긴장하게 된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였지만, 친구는 보이지 않았다. 상주 역할을 하고 있어야 할 친구의 오빠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접수를 받는 사람이 내게 방금 전에, 입관절차 때문에 자리를 비웠다고 했다. 한 시간 정도 걸릴 예정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장례식장에서 혼자 앉아있었다.
친구가 아버지 임종 소식을 전해주었을 때,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친구는 이제 아버지의 손이 아니라 오빠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입장하겠구나 라는 것이었다. 나는 예전에도 고모부가 돌아가셔서 울고 있는 사촌동생을 보며, 똑같은 생각을 했다. 이제, 이 아이는 결혼식장에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가지 못하겠구나. 그게 나는 무엇보다도 슬펐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식장에 있을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슬픈 감정에 휩싸였다. 그 사이 사람들이 상주를 기다리면서 자리를 잡고 밥을 먹었다. 나는 가만히 있는 것이 어색하여 귤을 몇 개 까먹었다. 친구가 돌아왔고, 사람들이 차례차례 인사를 나눴다. 언제 왔냐고 물어보는 친구의 말에, 좀 전에 왔다고 대답하면서 안아주었다. 이렇게 소식을 전하게 되어 미안하다고 친구는 또 한 번 이야기했다. 친구는 울먹거렸다. 나는 미안해하지 말라며 한 번 더 안아주었고, 그리고 놓아주었다. 친구와 인사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 나는 짧게 인사를 전하고 장례식장을 나왔다. 검은 상복을 입은 친구를 보고 있자니, 나 역시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밖으로 나왔다.
며칠 있다가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장례식장에 와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또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건 미안할 일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미안해할 필요 없다고 말이다. 친구의 미안함이 오히려 미안했다. 그 날 나에게 전화를 잘못 걸었던 건, 친구의 큰 아버지였다. 친구의 큰 아버지가 잘못 누른 버튼 하나로 내게 전화가 걸려왔고,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불과 몇 시간 되지 않았음을 알게 된 것이다. 만약, 친구의 큰 아버지가 전화번호를 잘못 누르지 않았다면, 친구는 내게 부친의 임종 소식을 전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안해하는 친구를 떠올려 보니, 연락하지 않았겠구나, 라는 생각에 머물렀다.
어렸을 때,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뵙던 친구의 아버지는 이제 정말 그 기억 속에서 밖에 살아있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님을 나는 다시 한 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