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국에서 만난 개
태국, 치앙마이
Thailand, Chiang Mai
March, 2016 (มีนาคม 2559)
밤 12시. 정확히 이 시간이 되면 동네 개들의 하울링이 시작된다. 처음엔 이게 무슨 난린가 싶어서 창문을 내다보기도 하였지만, 나중에는 그저 그들의 동네 반상회 정도로 여기게 되었다. 방콕에서의 개들이 밤 12시에 하울링을 했다면, 치앙마이에서는 한 시간 정도 빠른 밤 11시 정도에 하울링이 시작되었다.
편의점에 가서 차가운 커피음료를 몇 개 집어 들고 돌아오는 길. 대여섯 발자국만 더 걸어가면 숙소가 나오는데, 아무리 봐도 그 대여섯 발자국을 더 걷기 힘들어 보였다. 동네 개들과 대치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왜 이렇게 늦게 까지 돌아다니느냐고 혼내는 것 같았다. 부모님한테도 늦게 돌아다닌다고 혼난 적 없는 나였는데, 난데없이 치앙마이에 와서 동네 개들에게 혼나는 모양새라니...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따라 그림자처럼 숙소로 숨어들까 생각하고 나는 기회만 엿봤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쉴 새 없이 지나다니던 오토바이도 그런 순간에는 보이지 않았다. 개들은 짖고, 나는 나무가 되고 싶은 사람처럼 그렇게 거리 위에서 우뚝 멈춰 섰다. 슬금슬금 나에게 걸어오는 개 한 마리에게, '저리 가, 저리 가'라고 이야기했지만, 한국말이라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아니, 알아들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저리 가지 않았을 것 같다.
내 곁으로 다가왔던 개는 잠시 내 손에 들려있던 봉투를 코로 만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그리고 다른 개들도 흥미가 없다는 듯이 다시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대여섯 발자국을 걸어 숙소로 들어갔다. 어찌나 긴장했는지, 왼 손에 들고 있던 봉투도 파르르 떠는 것 같았다.
태국에서 개들은 어디에나 있다. 편의점에 들어가도 카운터 앞에서 드러누워있고, 길을 지나가도 한 마리 정도 내 곁에 와서 냄새를 맡고 가고, (샤워를 매일 하는 데도, 잘 씻고 다니는지 검사하는 것 같다) 카페에 들어가도 개 한 마리 정도는 테이블 옆에 누워서 선풍기 바람을 독차지하고 있고, 사람들은 그런 개가 귀여워서 쓰다듬는다. 나는 종종 개와 대치상황이 되어 거리의 나무가 되기 일쑤였고, 개들은 그런 나를 지켜보다가 흥미가 떨어지면 다시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다.
태국에서의 개는, 사람이 되기 직전의 존재로 상징되기 때문에 개에게 위협을 가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마치, 언젠가 사람이 되어 만나게 될 친구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개들은 어디에서나 뛰어놀고, 짖고, 사람에게 다가오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이렇게 벌벌 떨기는 하지만, 나는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원래 이 곳에 살던 개들이 이방인인 나에게 경계심을 품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간혹 그들과 친해질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큰 개들이 너무 거리에 많아서 자주 놀란다. 나에게 같이 놀자고 뛰어오는 것 같기는 한데, 그럴 때마다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우뚝 서거나, 지나가는 오토바이의 그림자를 자청하여 같은 속도로 뛴다. 말이 안 통하니, 내가 왜 이렇게 태국에서 쇼를 하는 건지 자세히 그들에게 설명하기도 어렵다. 그냥 개들도 가던 길 가고, 나도 가던 길 가도록 놔두었으면 좋겠다.
이상하게 태국 개들은 내가 조금이라도 늦게 숙소에 들어오면 왜 이렇게 늦게 다니냐고 묻고, 하울링을 하면서 통금시간을 알린다. 나는 요새 일찍 집에 귀가한다. 개가 무섭냐고?
그렇다. 나는 알고 보면 개 무서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