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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서윤 Dec 12. 2016

1년 전 오늘, 1년 후 오늘

- 나는 부지런히 헤엄을 친다 



나는 작년 이맘때쯤 집에 누워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오래도록 아팠고, 그 아픔은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내 안에서 모든 것들을 쏟아내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모든 것을 쏟아냈기 때문인지 가늠하기 힘든 그런 고통의 무엇이었다. 그래서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1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때 왜 아팠으며, 왜 힘들어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못한다. 그저 힘들었노라, 그때의 감정을 얼버무리는 정도다.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 일을 시작했고, 처음으로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하면서 사회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매일같이 느끼며 바들바들 떠는 생선처럼 살았다. 생물로 팔딱 거리던 시기를 지나, 어쩔 때는 소금에 절여졌으며, 어쩔 때는 구워졌고, 어쩔 때는 빨간 고춧가루를 온몸으로 받으며 무와 함께 찜이 되기도 하였다. 


바다로 돌아가기에는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작년 이맘때쯤 침대에 누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시 돌아가기에는 늦었다고 말이다. 그렇게 소금기 가득한 채로 원룸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 지나온 시간들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그때의 나는 내가 보기에도 안타까웠다. 폴짝 뛰면 닿을 듯한 천장이 멀어 보였고, 침대에 누워 손을 내밀어 천장을 더듬어보려 했으나 아득히 먼 미지의 곳처럼 느껴졌다. 소금기 가득한 어항에 갇힌 물고기가 되어 나는 그렇게 뻐끔뻐끔 숨만 쉬고 있었다. 


무기력했던 시간이 흘러, 호주행으로 가는 비행기가 약속한 시간에 도착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되어있었던 호주행 비행기에 올라탔을 때, 나는 분명 내가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바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금 더 아가미를 벌려 숨을 내쉬었다. 더 많은 숨이 바다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건 너무나 본능적이었다. 어항을 나온 물고기가 바다로 떠나기 위해서는 적어도 숨이라도 더 크게 내쉬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더 힘차게 꼬리를 흔들어야 하지 않을까. 


비행기 안에서 나는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고, 잠이 깨었다가 다시 또 잠이 들었다. 멜버른에 도착했을 때, 생각보다 날씨가 추워서 옷을 여미었다. 숙소에서 샤워를 하고, 소금기 가득했던 몸을 폴짝폴짝 뛰면서 털어냈다. 차를 한 잔 마셨다. 몸을 녹일 수 있는 차 한 잔을 마시고, 동네를 산책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다시 들이쉬고, 내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이 좋았다. 너무 많은 것들을 하던 날들을 뒤로하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을 보냈다. 날이 좋은 날에는 빨래를 했고, 책을 읽었으며, 고양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산책을 했고, 또 산책을 했다. 동네는 조용했고, 10분 거리에 캥거루가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무언가를 하는 날도, 무언가를 하지 않는 날도, 나는 아프지 않았다. 지나고 보니 아주 힘든 꿈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렇지 않았다. 호주에서의 시간이 끝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나의 방은 더 이상 소금기로 가득 차지 않았다. 좁은 어항이 아니었다. 나는 나의 방에서 다시 헤엄을 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었다. 


1년 전 오늘 나는 누워있었다. 

1년 후 오늘 나는 부지런히 헤엄을 친다.

나만의 바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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