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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서윤 Jan 01. 2017

나는 나를 믿어주기로 했다

- 분명 그곳은 나를 위한 곳일 테니까 말이다



쉼 없이 달려오던 어느 날, 나는 내가 무작정 달리고만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달리고 또 달리다 보니 힘은 드는데, 목적지가 눈 앞에 바로 보이지 않으니 내가 잘 달리고 있는 것인지 점점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나는 종종 가던 길을 멈추었고, 달리다가도 속도를 줄이곤 했다. 멈칫거리는 발걸음이 계속될수록 나는 조금씩 느려졌다. 지금이라도 방향을 다시 틀어야 하는 건 아닌지 생각이 많아졌다. 생각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나는 느려졌고 결국 어디까지 왔는지도 모를 그 어딘가에 서서 황량하게 펼쳐져있는 눈에 비친 모든 것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로 가든 상관없을 만큼 길은 많았다. 하지만 길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는 어딘가로 가야 할지 몰랐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에 대한 책임도, 결과도 모두 내 몫이었다. 남 탓을 할 수 없는 인생은 때론 억지로라도 변명을 만들고 싶을 만큼 치사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우연히 15년 동안이나 꾸준히 영화감독으로 살아온 이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는 꾸준히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마다 그에게 아직도 애니메이션을 만드냐고 물었다. 그렇게 해서 밥은 먹고 사냐고 묻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영화를 만들고 나서 영화제마다 출품하였지만, 제대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정말 어느 날 갑자기 그에게도 기회가 찾아왔고, 그때부터 그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영화는 2016년 천만 영화 중 하나로 화제를 모았다. 바로 부산행을 제작한 연상호 감독의 이야기다.


주변을 둘러보면 모두가 잘 되는 이야기뿐이었다. 그들의 사업은 모두 잘 되고 있었다. 실제 그들의 삶이 어떤지를 알 수 없으니, 그저 보이는 대로 믿자면 그들의 삶은 언제나 가파른 상승 그래프를 보는 거 같았다. 그에 반해 내가 그리고 있는 그래프는 조금 더뎠다. 그래프를 그리고 있는 건지 점만 찍고 있는 건지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내려고 한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되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믿었고, 그 믿음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결과는 때론 너무 정직해서 요행을 바랐던 나의 마음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운이 따라주던 따라주지 않던, 그 마음이 부끄러워지지 않도록 내가 걸어가던 그 길로 계속 가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나를 믿어주기로 했다. 마음이 망설이지 않는다면, 내가 내딛는 걸음 역시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걷기로 했다. 나를 믿고, 그리고 내 걸음을 믿고 걷기로 했다. 내가 닿게 될 곳이 어떤 곳일지 아무도 모르겠지만, 분명 그곳은 나를 위한 곳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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