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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서윤 Feb 24. 2017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 글을 쓰는 방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나는 글을 쓰지 못했다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글을 쓰는 방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나는 글을 쓰지 못했다. 내게 글을 쓰는 행위는 그저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울음을 터뜨리는 일과 다르지 않다. 잘 우는 아이는 없다. 기가 막히게 잘 울어서 누군가를 감동케 하는 아이는 없다. 그처럼 나에게 글이란, 잘 쓰고 못 쓰고를 논의하기보다는 터져 나오는 감정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면밀히 이야기하자면 글은 써왔다. 누군가에게 전달해야 하는 공지사항을 써왔고, 하루에도 수십 통의 메시지를 보내는 일들을 해왔다. 하지만 내 안에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감정이라는 놈을 밖으로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아이처럼 울어도 볼까 하였으나, 우는 법 또한 잊은 사람처럼 점점 더 고요해졌다. 감정은 점점 침전하였으나, 그렇다고 온전히 가라앉지도 않았다. 


나는 내 안에 들어가 있는 감정이 엉뚱한 순간에 튀어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맨얼굴을 비추게 될까 점점 불안해졌다. 감정이라는 놈의 맨얼굴은 생각보다 제멋대로여서 그것을 마주한 순간 나조차도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어렸을 때의 감정도, 나이가 들어 만나게 된 감정도, 그들은 마치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타인처럼 굴었다. 어떤 식으로든 글을 쓰고 싶었으나, 그저 몇 줄 끄적일 뿐이었다. 그저 멍하니 간밤에 쌓인 눈을 바라보듯 모니터를 응시했다. 그 순간에도 감정은 쌓이고 있었다. 나는 감정의 눈밭에 발자국 하나 남기지 못하고 노트북을 덮었다. 죄 없는 탁상달력만 한 장 넘겨 보았다. 3월. 이렇게 쉬이 봄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종이 한 장 넘기듯 쉽게 감정이 녹아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는 법을 잊은 대신에 나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상대방은 고개를 끄덕거렸고, 끄덕거린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또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이야기가 잘 전달되었는지를 가늠할 겨를도 없이, 다음 상대를 찾아 또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는 그 자리에서 소멸되듯이 사라져 갔다. 몇몇 감정들도 이야기와 함께 소멸되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이야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어둑어둑해진 감정의 그림자가 내 발자국 끝에 따라붙었다. 그림자는 발바닥에 붙어버렸고, 나와 함께 잠이 들었다. 감정이 문제일까.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이 문제일까. 풀리지 않는 고민을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오랫동안 잠을 청해왔던 사람처럼 나는 깨지도 않고 잠들었다. 꿈속에서의 나는 누군가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다음 날이면 내가 무슨 꿈을 꾸었더라.. 하고 중얼거릴만한 꿈들을 꿨다. 그런 수많은 꿈들이 이어졌고, 어느 순간 글을 쓰지 못하는 나의 모습 또한 그 꿈속의 하나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다음날이면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그런 꿈 말이다. 깊은 잠에서 깨어났고, 내게는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다. 


노트북을 켜고 간밤에 꾸었던 꿈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동안 글을 쓰지 못해 괴로워하던 일에 대해서 쓰기 시작했다. 눈처럼 쌓여있던 감정을 마주하던 그 순간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꿈이었노라 적고 있는 나를 쓰기 시작했다. 발바닥에 붙어있던 그림자는 햇빛에 지워졌다. 햇빛을 듬뿍 받은 발은 뽀드득 소리를 내며 쌓여있던 감정의 눈밭을 거침없이 걷기 시작했다. 내가 걸어간 그 자리에 봄이 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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