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서윤 May 08. 2017

상담, 상담 그리고 또 상담

- 국민건강보험공단 상담원과 나눈 이야기



건강보험료가 연체됐다. 자동이체로 걸어놓은 계좌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엄마에게 관리를 맡겼으나, 나에게까지 전달되지 않았다. 독촉 안내장이 아마 날아왔을 텐데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3개월이 밀렸고, 그제야 내 손에 독촉 안내장이 들어왔다. 왜 그전에 나에게 말하지 않았느냐고 따지기에는 이미 늦었고, 연체금이 더 증가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해결하는 게 급선무였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전화를 걸었다. 1577-1000. 길고 긴 안내멘트가 쏟아진 후에, 나는 그쪽에서 안내해주는 대로 번호를 몇 개 눌렀고, 드디어 상담원과 연결이 됐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상담원은 내게 가상계좌를 안내해줬고, 오늘까지 부과되는 금액 또한 안내해주었다. 다만, 가상계좌로 입금을 하게 되면 혹여라도 중복 이체가 될 수도 있으니 그 점만 주의하라는 이야기를 했다. 중복 이체가 되는 건 그쪽 시스템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 싶었지만, 상담원이 너무 열심히 설명을 하는 통에 그냥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국민연금이 한 달이나 연체됐다는 고지서가 날아왔다. 국민연금을 내고 있는 통장에는 잔고도 있었고, 이미 한 달 전에 국민건강보험 연체 때문에 머리가 아팠던 나는 이게 또 무슨 일인가 싶었다. 연체.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다. 그런데 연달아 계속 연체됐다는 독. 촉. 장. 이 날아오다니.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1577-1000. 그러고 보니 건강보험과 연금은 한 군데서 관리하지? 이름이 두 개라 다른데서 관리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 한 번 길고 긴 안내멘트가 이어졌고, 번호 몇 개를 다시 눌렀다. 상담원과 연결 0번을 눌러도 다시 또 이어지는 안내멘트에 답답함이 더해졌다. 


'제발 누구라도 전화를 그냥 좀 받아주면 안 되겠니?'


마침내 연결된 상담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통장에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자동이체가 왜 안 됐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독촉장이 날아왔는데 나는 그걸 이제야 확인했다. 무슨 일인지 확인을 해달라. 상담원은 확인 후 다시 나에게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전화가 왔다. 


"지난달에 상담원과 통화하실 때, 고지서를 요청하신 기록이 있네요. 그때 고지서를 요청하시면서 자동이체가 일시적으로 막아졌습니다." 


응?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다시 설명을 요청했다. 내가 지난달에 고지서를 왜 요청했지? 기억을 더듬었다. 한 달 전이면, 건강보험료 때문에 상담원과 통화를 한 날이다. 그런데, 내가 건강보험료 고지서를 요청해서, 자동으로 국민연금 자동이체가 중단되었다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나는 영수증의 목적으로 고지서를 요청한 것 같다. 그런데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봐도 그 고지서를 받으면 국민연금 자동이체도 같이 중단된다는 안내를 받은 기억이 없다. 게다가 건강보험료와 국민연금을 내는 계좌는 다르다. 나는 상담원의 안내에 따라 기억을 더듬어보았지만, 정확하지 않은 기억으로 따지기에는 그냥 지금 이 상황 자체가 황당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황당하네요."라는 말을 내뱉고, 일단 알았으니 연체금 포함해서 밀린 국민연금을 내겠다고 이야기했다. 자동이체로 처리를 부탁했고, 상담원은 연체금이 포함하여 이만큼 돈이 빠져나갈 거라는 안내를 했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샤워를 하는데 괜히 억울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잘못이 아닌데, 상담원의 안내에 따르면 마치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하지 않은 기억으로 따지기에도 억울하고, 사실상 안내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쪽에서야 매번 고객과의 대화를 자동 녹취하겠지만, 나는 매번 통화마다 자동 녹취를 하지 않는다. 자동 녹취를 할 이유도 딱히 없고. 한 달 전 일을 기억하기란 어려웠고, 게다가 나는 한 달 전 나에게 이런저런 안내를 해준 상담원이 일을 꽤 잘한다는 인상을 받은 터였다. 신속했고, 정확하다는 기억. 그러니 뭔가 억울하지만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라는 쪽으로 귀결됐다. 


그런데 자동이체 처리가 되지 않았다. 연체. 일단위로 연체금이 부과된다. 그런데 처리가 완료되지 않은 거다. 연휴가 많은 5월은 한 번 일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으면 2 ~ 3일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3일을 기다리고 나는 오늘 일어나자마자 전화를 했다. 또 길고 긴 안내멘트. 하... 한숨이 나왔다. 하물며 안내멘트는 나에게 25일부터 10일까지는 상담전화가 많으니 홈페이지를 통해서 업무를 보라는 이야기를 했다. 홈페이지에서 볼만한 업무가 아니니까 전화를 한 거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정해진 대사를 또박또박 읊을 뿐인 안내멘트에게 말해 무엇하리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상담원과 연결이 됐고, 나는 또 길고 긴 이야기를 꺼냈다. 일이 몇 개씩이나 꼬이다 보니, 이걸 제대로 설명하는 것조차도 짜증이 났다. 


"자동이체로 처리를 해달라고 요청하셨다면, 자동이체는 5월 10일에 진행이 됩니다, 고객님." 

"저는 5월 4일에 처리를 해달라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리고 5월 10일에 내는 거면 연체금이 더 부과되는 거 아니에요? 그러면 가상계좌를 안내해주셨어야죠." 


학습의 효과였다. 지난달 건강보험료가 연체됐을 때 처음 나를 대응했던 상담원은 연체금이 하루마다 부과되니 가상계좌를 통해 오늘 안으로 입금하라는 안내를 해줬다. 그때는 자동이체로 연결됐던 계좌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상담원이 안내해준 대로 가상계좌를 통해 해결했다. 그런데 국민연금이 연체됐을 때는 자동이체 계좌에 문제가 없으니 자동이체로 바로 해결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당연히 그날 바로 처리가 완료된다고 생각한 것이고, 상담원 또한 가상계좌라던가 연체금이 더 부과될 것이라던가 그런 말이 없었다. 이건 분명히 기억한다. 바로 3일 전의 일이니까. 그리고 억울한 기분으로 샤워를 한 날이니까. 


"그렇다면 상담원이 제대로 안내를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상담했던 그 상담원에게 전화를 요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샤워를 하고 기다릴까 하다가 또 언제 전화가 올지 모르니 우선 다른 일을 하면서 기다렸다. 한참 후에 전화가 걸려왔다. 3일 전 나를 안내했던 상담원이었다. 상담원은 자신이 신입이고 그래서 안내를 제대로 못했다며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먼저 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화가 넘칠 대로 넘친 상태였고, 그럼 그 사이 연체금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물었다. 상담원은 연체금은 납부되지 않도록 자신이 처리해주겠다고 이야기하며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한 달 전 상담받은 것도 그냥 넘어가려 했으나 그 상담원과도 다시 통화를 해야겠다고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나는 제대로 안내를 받은 적이 없다, 그리고 그 일 때문에 이 사태가 벌어진 것이 아니냐. 상담원은 자신이 그럼 그때의 상담원에게 전화를 요청하겠다고, 그리고 자신의 실수는 다시 한번 사과한다고 했다. 


제가 초보입니다, 제가 신입입니다, 라는 말은 때로는 통용되고 때로는 통용되지 않는다. 나 역시 초보였고, 어느 분야에서는 아직도 초보다.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실수가 있다. 그걸 알기에 기다려주기도 한다. 사회에서 만나는 많은 신입들에게 늘 매정하게 굴 수는 없다. 나 역시 많은 신입들의 어버버함을 기다려준다. 버벅거림이 저 멀리서 들려오고, 나의 상담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나는 기다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돈이 왔다 갔다 하는 일에서 신입은 사실 기다려주기 어렵다. 나는 너무 오랜만에 흥분한 탓에 목소리까지 떨리고 있었다. 상담원이 안내하는 연체금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얼마 되지 않음이 누군가에게 누적되고 있지는 않을까?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닌데 내가 낼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나는 매번 길고 긴 안내멘트를 기다리며, 내 시간을 계속해서 쓰고 있지 않은가. 기다려달라는 만큼 기다린 후에야 상담원과 연결이 되는 이 상황에서, 상담원의 실수는 쉽게 용인되기 어렵다. 어쩌면 나는 그 길고 긴 안내멘트가, 홈페이지를 이용하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던 그 안내멘트가 나를 더 참을성 없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시간이 흘러 이번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다른 상담원의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한 달 전 상담했던 상담원이 아니었다. 그 상담원의 팀장이라는 사람이었다. 전화요청이 접수되었고, 그들은 한 달 전 녹취되었던 나의 상담내용을 검토하여 전화를 걸었다. 그쪽은 이미 어떻게 나를 대응할지 모두 준비를 마친 상태였고, 나는 그 녹취에 내가 어떻게 말을 했던가, 하는 생각으로 전화를 받았다. 나는 그때 안내를 제대로 받았을까? 혹여 내가 지워버린 것은 아닐까? 조금은 불안했고, 조금은 긴장됐다. 


"죄송합니다. 그때 상담내용을 확인해보니, 저희 쪽에서 제대로 상담안내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현재 국민연금 연체금은 모두 저희 쪽에서 다시 환급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많은 상담원과 통화를 한 탓에 나는 최종적으로 팀장이라는 사람과 상담내용들을 거듭 정리했다. 팀장이라는 사람은 고객이 어떤 부분을 해소해줘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사실 가장 따져 물어야 하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전혀 흥분도 하지 않았고, 통화 내용은 간단했다. 혹여라도 문제가 생기게 되면 자기에게 다시 전화를 달라, 우선 이 건을 마무리짓기 위해서 다음 주에 자신이 다시 한번 전화를 걸겠다. 팀장은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이야기하며 모든 것을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나의 억울함은 풀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연체금도 문제지만, 감정적으로 남아있었던 게 아무래도 더 컸다. 누군가는 그 돈 얼마나 된다고,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야기한다. 그 얼마밖에 안 되는 돈도 제대로 확인하고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누군가 나와 같은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고.


결론적으로 신입에게는 화를 내고, 팀장에게는 흥분조차 하지 않았지만, 나는 결국 그 신입이 이 건에 대해 책임지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분명 안내를 잘못해준 것은 맞지만, 그것은 엄밀히 따지면 그 신입이 겪지 않아도 되는 상담을 한 것이었으니까. 상담은 끝났고, 억울했던 그 감정들도 모두 종결됐다. 이제 그 길고 긴 안내멘트를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