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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서윤 May 12. 2017

그녀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행동들

- 나는 그녀를 이해할 자신이 없다.



그녀는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표현을 말과 몸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 말은 ‘나는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건 이해해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마치 선전포고 같은 그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잘 몰랐지만, 그런 행동에도 나는 점점 익숙해졌다. 그녀와 같이 지내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더욱 그녀는 그것이 자기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했기에, 나는 그녀의 행동이 가끔은 이해되지 않더라도 저것은 그녀의 의지가 아니니까,라고 생각하며 넘어갔다. 하지만 종종 나의 습관들이 그녀를 불편하게 했고, 나에 대한 불만은 다른 사람을 통해 들려왔다. 나는 노력했으나 그럼에도 그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때로는 화가 나고, 때로는 비참했다. 하지만 이렇게 화를 내는 것도 그녀의 의지가 아니니까, 라는 생각으로 나는 나의 비참함과 화를 억눌렀다. 


우리는 종종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녀가 즐거워할 때 나는 안심했고, 그것이 우리 사이를 평화롭게 했다. 그녀의 밝은 목소리는 그날의 힘듦을 없애줄 만큼 좋았다. 하지만 불쑥불쑥 그녀가 이야기하는 ‘내 의지가 아닌’ 행동들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녀는 때때로 소리를 지르고, 때때로 울었다. 울음 섞인 소리를 내기도 했고, 소리가 섞인 울음이 그녀의 뺨을 적시기도 했다. 나는 그것에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그것은 그녀의 ‘의지’가 아니었으므로, 그저 가만히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걱정이 커져갔지만, 그녀에게 뭐라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었고, 그녀의 행동을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우리를 불안하게 했다. 차라리 그냥 두는 게 제일 좋지 않을까? 차라리 우리의 귀를 닫는 게 좋지 않을까? 최대한 마찰을 피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그대로 두자고 암묵적으로 합의했지만, 우리도 사람이었다. 그녀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행동들이 우리를 불편하게 할 때, 우리의 ‘의지’는 힘들어했다. 상처받고 있었다. 불편해하고 있었다. 알고는 있지만 그 알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감정을 짓눌렀다. 짓눌린 감정이 언제 터져 나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그게 불안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감정을 달랬다. 그녀의 저런 모습은 그녀의 의지가 아니야… 


그리고 어느 날. 아주 사소한 문제가 우리 사이에 터졌다. 누가 들으면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라고 할 만한 일. 그래서 선뜻 그것 때문이었어,라고 이야기하기에도 머쓱한 사건이었다. ‘사건’이라는 단어가 가장 적절하지만, ‘사건’이라는 단어도 사실 그 이야기를 포장하기에는 너무 과하다. 하지만 그런 사건이 하나 터졌다. 그녀와 내가 싸운 것이다. 언성이 높아졌고, 서로가 자기 말을 내뱉기에 바빴다. 내가 먼저 이야기할 거야, 내 목소리가 더 커, 내가 더 잘났어, 네가 잘못한 거야. 너는 틀렸고 나는 옳아. 우리의 말은 이런 감정을 바탕으로 서로를 공격했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진 것도 아닌 싸움.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고, 서로의 상처를 버젓이 눈으로 보면서도 어루만져주지 않았다. 그 뒤로 우리는 서로를 마주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말을 걸까? 그런데 뭐라고 말을 걸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말을 걸면 될까? 근데 말을 왜 걸어야 하지? 우리의 관계는 좋아질 수 있을까? 좋아져야만 하나? 


나는 그녀가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건 내 의지가 아니야.’라고 하는 말에 이미 수차례 상처받았음을 그제야 더 명확히 알게 되었다. 사실 그때 그녀에게 당신의 말에 상처받았음을, 앞으로 그렇게 나에게 대하지 말아줬으면 한다는 말을 했었어야 했는데, 나는 그 일을 억지로 덮으며 마치 상처받지 않은 척,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했던 것이다.  마음은 쓸데없이 기억력이 좋았고, 나는 그것을 해결하지 않는 한 우리의 관계는 더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그녀를 이해하는 게 생각보다 많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내가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녀보다 더 오래 살았으니까 보듬어주면 될 거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그녀를 보듬어줄 능력이 없었다. 우리는 달랐고, 그 다름이 서로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애써 외면했다. 그녀가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이야기한 것만큼 나 역시 ‘나는 저런 사람이야’라고 그녀에게 줄곧 이야기하고 있어왔음을 깨달았다. 그녀 역시 나보다 나이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그녀를 더욱 힘들게 했고, 나는 그것을 몰랐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각자가 생각하는 ‘당연함’을 요구했다. 그 요구는 억지스러웠고, 억지스러움은 결국 불편을 낳았다. 그리고 그 불편은 우리를 멀어지게 했다.  


“너는 왜 네 상처만 봐? 나도 이렇게 아픈데. 나는 이렇게 참잖아. 근데 왜 너는 참지 못해?” 


나는 줄곧 그녀에게 이런 태도로 일관했다. 나 역시 힘들었다. 그런데 그녀는 너무나 자유롭게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 놓고 아프다고 이야기했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받아주지 못했다. 왜 아프냐고 오히려 물어봤으니까. 왜 그 아픔을 감당하지 못하냐고, 그래서 그 아픔을 왜 드러내느냐고 타박했다. 나의 말은 이기적이었다. 강압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지 못했다. 나의 태도가 얼마나 그녀를 더욱 아프게 하는지 말이다. 


'나는 그녀를 정말 이해했을까?' 


아니, 아니었다. 아니다. 지금도 사실 잘 모르겠다. 그녀를 배려하고 있다는 나의 거만한 태도는 그녀를 더욱 힘들게 했고, 배려하고 있다는 그 생각은 그녀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행동들 때문에 나를 더욱 거칠게 만들었다. 그 배려도, 그 이해도, 모두 내 기준이었다. 어쩌면 나는 단 한 번도 그녀를 제대로 이해한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늘 누군가에게 이해받기를 바랐으니까… 


그녀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행동들. 그리고 나의 ‘의지대로’ 하는 행동들은 점점 더 그 사이를 갉아먹었다. 그녀와 마주칠 때마다 때때로 나는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 하나?라고 생각한다. 또는 그녀가 먼저 내게 말을 걸면 나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줘야 할까?라고도 생각한다. 쿨하게 (도통 쿨한 게 무엇인지도 모르겠지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받아줘야 하나? 아니면 진지하게 서로의 상처를 꺼내놓고 이야기해야 하나? 


아무것도 모르겠다. 처음엔 내 상처만 커 보였기에 오히려 이 문제가 쉬워 보였는데, 이제는 상대방의 상처도 커 보여 감당하지 못하겠다. 이대로 어느 누구도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면, 어느 누군가 우리 사이를 중재하고 나서지 않는다면, 아니 혹은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사실 그녀와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그녀를 이해할 자신이 없다. 그녀 역시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그 사실을 우리가 언성을 높여 말다툼을 하던 그때 명확하게 알았다. 


우리는 정말 다르구나.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겠구나. 

그러니까..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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