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하루까지 말끔하게 잘 쓰고 싶다
나에게 남은 2016년 마지막 목표는, 남아있는 일을 하나라도 더 끝내고 2017년을 시작하는 것으로 정했다. 목표를 정하기 전에도 끊임없이 일을 했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추가하여 남아있는 48시간은 미친 듯이 일을 마무리하고 있다. 미뤄놨던 일들을 3개를 나란히 처리하고 잠시 달력을 쳐다봤다. 사실 올해 나의 목표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게 나의 목표였다. 매년 무언가를 계획하고, 그대로 실천하는 삶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처음으로 무계획을 선물했다. 지난 5년 동안 나에게 연말은 그리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 매년 종무식 때마다 성과보고를 하기 위한 자료, 그리고 또 자료를 만들면서 보냈다.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보고를 위한 보고가 되기 일쑤였다. 새해가 시작되면 사업계획에 맞추어서 움직여야 했고, 그렇게 개인보다는 회사 계획에 맞추면서 살았다. 그것이 당연하게 생각되면서도, 당연한 것으로 느껴지는 게 때때로 힘이 들기도 했다.
회사를 나왔을 때, 나는 아. 무. 것. 도. 하기 싫었다.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나의 인생을 다시 계획해보려고 했지만, 사업계획서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무언가 해야 할 거 같은 압박감에 시달리면서 이것저것 들춰보다가, 나는 이렇게 마음을 먹었다.
'아무것도 계획하지 말자. 무언가 하고 싶을 때, 그때 그것을 하자'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은 채, 1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던 나의 16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대로 흘러갔다.
01월 : 호주 여행
02월 : 독립출판물, 독립 책방에 대한 공부
03월 : 태국 여행, DNX 디지털 노마드 컨퍼런스 참가, 치앙마이 인연 시작
04월 : 전자책 제작, 출판에 대한 공부, 나는 1인기업가다 팟캐스트 출연
05월 : 더심플북스 사업자 등록, 10인10색 강연, 첫 번째 책 작업
06월 : 모바일 여행 가이드북: 치앙마이 & 태국여행 준비 전자책 출간, 서점 계약
07월 : 로그디노 : 디지털 노마드 in 서울 컨퍼런스 준비, 저자 섭외 및 프로젝트 별 미팅, 부가세 신고
08월 : 웨딩사업 검토, 1인 기업 협업 프로젝트 검토, 더홀스 프로젝트 시작
09월 : 치앙마이가 옵니다 전시&토크 콘서트 준비, 치앙마이 카페 스토리 프로젝트 시작, 나는 네가 그리울 때마다 글을 썼다 출간
10월 : 로그디노 : 디지털 노마드 in 서울 컨퍼런스, 지원사업 수행, 치앙마이 카페 스토리 1 출간, 이사
11월 : 치앙마이가 옵니다 전시&토크 콘서트, 통영 인연 시작, 인터뷰
12월 : 셀프웨딩가이드북 : 결혼합니다 출간, 나는 네가 그리울 때마다 글을 썼다 일본어판 출간, 치앙마이 카페 스토리 여행 프로그램 준비, CMOVINGTEAM 준비, 통영 예술 기행 준비
하나의 주제로 묶어서 이야기하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카테고리에 들어가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나는 사람들에게 '처음 하는 일이에요'라고 말하는 버릇이 생겼다. 사실 모든 일들이 처음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너무 빈번하게 사용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말버릇처럼 느껴졌다.
정신없이 지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예 무분별하게 일을 하지는 않았다. 매월 집중해야 하는 주제가 나름(?) 있었다. 게다가 스케줄을 잡을 때도, 집중을 요하는 작업을 해야 할 때에는, 말 그대로 칩거하면서 수행하듯 시간을 보냈다. 지난여름 어마 무시하게 더웠던 그 여름, 원룸에서 진짜 땀 흘리며 일했던 기억이 다시금 떠오른다.
4월의 나의 스케줄은 거의 교육에 관련된 일들이 많았다. 무역 쪽에 있었던 내가 출판 쪽에 눈을 돌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다년간 그 분야에서 일을 하셨던 분들이 워낙 많았고, 내가 모르는 건 더 많았다. 5월부터는 한 번 책을 만들어보자, 라는 마음으로 외출을 삼갔다. 지금도 책 작업을 할 때는 자고, 일하고, 밥 먹고. 이 세 가지밖에 하지 않는다. 6월에 첫 번째 책이 나오고 나서 그와 관련된 홍보활동과 온라인 서점과 계약을 체결하는 데 집중했다. 7월에는 새로운 기획을 하기 위해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녔고, 명함을 가장 많이 뿌리고 다닌 시기였다. 당시 거의 집에 붙어있지 않았고,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8월에는 출판이 아닌 새로운 분야의 사업들을 검토하는 시기였다. 내가 다 알면 좋겠지만, 내가 다 알기 힘들기 때문에 서로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잘 활용해보자는 의미에서 협업성 사업을 많이 검토했었다. 10월에는 디지털 노마드 컨퍼런스를 서울에서 열었고, 컨퍼런스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것 외에는 정신없던 시기였다. 사업자를 내고 혼자서 일을 하다가 처음으로 누군가와 같이 일을 하고 그 일을 마무리지었던 첫 케이스였다. 준비부터 실행까지 정확히 99일간의 여정을 마무리지었다. 11월에는 치앙마이가 옵니다 전시&토크 콘서트를 열었다. 컨퍼런스보다 약 40일 뒤에 준비를 시작한 전시 & 토크 콘서트는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진행했다. 치앙마이 인연이 빛을 발했던 행사로,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만들어낸 행사였다.
그리고 마지막 12월에는 벌려놓았던 일들을 하나하나 검토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미 17년도 상반기에 진행해야 할 몇몇 프로젝트 기획이 마무리 단계이기 때문에, 검토할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16년도에는 다행히 운이 좋았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진행하는 프로젝트마다 좋은 성과를 이뤘다. 하지만 아직까지 안정적인 수익을 만들었다,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말 그대로 가지고 있는 곳간의 쌀로 하고 싶은 일들을 정말 원 없이 책도 만들고, 행사도 했던 한 해였다. 물론, 그 과정은 생각보다 아주 많이 힘들었다. 아무리 좋아서 시작한 일이라고 해도, 쉽게 얻어지는 건 없다는 걸 깨닫고 또 깨달았다.
올해는 그때그때마다 하고 싶은 일들을 했고, 그 속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우고 얻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서 많이 느꼈다. 즉흥적으로 어떤 일을 시작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꾸준히' 하기는 어렵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을 '꾸준히' 사람들에게 알리고, '꾸준히' 콘텐츠를 만들며, '꾸준히' 공부해야 한다는 것.
사업을 시작했을 때, 1년만 방황하자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방황이라는 뜻은 안정적인 수익을 위한 토대를 1년 안으로 만들어내자는 뜻이다. 지난 8개월 동안 다양한 카테고리에 들어가서 일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혼자 일하는 것과 같이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훈련을 했다. 그 과정에서 나만의 시스템을 만들고, 같이 일을 하기 위한 여러 조건들을 검토했다. 17년에는 이런 실험들을 더욱 본격화할 예정이다. 움직이는 팀을 만들어서 본격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일하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할 예정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바로 그것. 수익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에 더욱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4개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내가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방황하고 싶지는 않다.
2016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 하루까지 말끔하게 잘 쓰고 싶다.
그리고 돌아올 2017년은 나에게 오래오래 기억될 좋은 한해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