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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서윤 May 11. 2017

시 쓰는 시간
기획 뒷이야기 2

2017.04 통영 함께 떠나볼래요? 기획 뒷이야기


시를 쓰다 


통영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내가 가장 많이 참고했던 책은 남해의봄날에서 출판한 '통영을 만나는 가장 멋진 방법 예술기행'이었다. 내가 원하는 내용들이 알차게 들어있는 책이었기에 그 책을 늘 가까이했다. 약간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하물며 태국 행사를 위해 비행기를 탔을 때도, 내 캐리어에는 '통영을 만나는 가장 멋진 방법 예술기행'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태국 행사는 생각보다 너무 바빴고, 통영 프로젝트를 생각할 여유는 1도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건 참으로 신기한 게 그 시간은 또 정해진대로 흘러갔고, 태국 행사도 모두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 나는 캐리어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책을 손에 들고 카페를 찾았다. 


카페 스텝은 내가 꺼낸 책과 지도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물었고, 나는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고 대답해주었다. 가끔 프로젝트도 기획하고 있다고도. 카페 스텝은 내가 행사를 하는 동안 아주 많은 도움을 줬던 친구였다. 나는 그녀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 하고 싶었고, 무엇이 좋을지 고민하던 순간 책에 수록되어있는 청마 유치환 선생님의 ‘행복’이라는 시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엽서에 그 시를 옮겨 적었다. 아주 오랜만에 시를 써본다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오랜만이라 언제 내가 시를 써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내가 시를 써본 적은 있던가? 나는 마치 다른 생을 사는 사람처럼 생소한 그 느낌에 놀랐다. 그리고 그 시를 그녀에게 선물했다. 그녀는 나보다 더 놀랐다. 한글이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그 시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고, 나는 시를 설명해주었다. 지난해 남자 친구를 다른 별로 떠나보낸 그녀는 그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안아주었다. 



행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그 느낌이 너무도 선명하게 남아, 나는 '통영 함께 떠나볼래요' 프로젝트에서 내가 한 시간 정도 프로그램을 맡아서 진행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과 다 같이 시를 써보면 어떨까? 그런데 문제는 나는 한 번도 누군가와 시를 써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누군가에게 시를 가르쳐본 적도 없었다. 시인이 아닌 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시’를 권할 수 있을까. 그런데 다른 게스트를 부르기에는 이미 예산 초과였다. 욕심을 내려놓고 수업을 빼던가 욕심을 부려서라도 내가 준비하던가.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개였다. 결국 한번 해 보기로 했다. 무슨 용기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것이, 나는 그저 사람들이 나처럼 그 생경한 느낌을 가진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를 같이 읽는 것만으로도 분명 좋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친구를 기다리며 가방 속에 들어있는 포스트잇에 시를 적어보기도 하고, 집에서는 노트에 시를 써보기도 했다. 좋은 시가 정말 많았다. 적으면 적을수록 손끝으로 시가 내게 들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이동진의 빨간책방' 팟캐스트에서 이런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날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다루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설 첫 세 문장이 너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학생들에게 앞의 세 문장 다음을 이어서 소설을 써보게 하는 수업을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진행자들이 주고받고 있었다. 나는 그때 하던 일을 멈췄다. 


‘이거다!’ 




시를 이어 쓰다 


통영을 사랑했고, 살았고, 그 흔적을 작품으로 남겼던 많은 예술인들. 시인도 정말 많다. 도서관을 찾아가 여러 시인들의 시집을 꺼내 들었고, 그중에서 백석, 김춘수 그리고 김상옥 시인의 시를 참가자들과 나누기로 결정했다. 두꺼운 시집들을 빌려 집으로 돌아와 미리 사두었던 노트에 옮겨 적었다. 한 사람 당 노트 한 권. 그리고 그 노트 한 권에 나는 4편의 시를 적었다. 백석 1, 김춘수 1, 김상옥 1. 그리고 랜덤 1. 랜덤으로 선정된 시는 참가자들이 이어 써야 하는 시였다. 예를 들어,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라고 까지만 적혀있는 시를 참가자들이 이어서 쓰는 것이다. 바로 자신의 글로 말이다. 각 참가자들이 받은 시는 모두 다르다. 그리고 맨 뒷장에는 원래 그 시인이 썼던 시를 적어 두었다. 시인의 시와 나의 시. 나는 총 40개가 넘는 모두 다른 시를 참가자들을 위해 적었다. 시를 좀 줄일걸 그랬나, 참가자가 너무 많았으면 큰일 날 뻔했네,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꼬박 밤을 새웠다. 시험기간도 아닌데 나는 아주 오랜만에 새우잠을 잤고, 한 시간 겨우 잠을 잔 뒤에 버스 터미널로 이동했다. 날씨가 좋았고, 사람들은 조금씩 들뜨기 시작했다. ‘시를 쓰는 시간’ 프로그램은 통영 우도에서 진행했다. 원래는 우도에서 수채화 수업을 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수채화 수업을 하기에는 적합한 장소가 없었고,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다. 버스킹을 섬에서 할까?라고도 생각했지만 짐이 너무 많아져 결국 ‘시를 쓰는 시간’이 섬에서 진행된 것이다.  





배에 탄 많은 사람들이 연화도에 내렸다. 몇몇 사람들만 우리와 같이 우도에서 내렸다. 섬은 조용했다. 우리를 반겨주는 유채꽃에 신이 났고, 얼마 남지 않은 동백꽃을 발견할 때마다 흥분했다. 바다 색깔은 오묘했고, 햇살은 따뜻했다. 둘레길을 걸으며 모두가 깔깔거렸고, 그 웃음은 사라지지 않고 모두의 귓속으로 들어갔다. 나의 웃음이 다른 사람의 귓속으로, 다른 사람의 웃음이 나의 귓속으로 들어와 서로를 간지럽힐 때 우리는 바다를 만났고 그것이 온전히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시인이 되다 


“실례합니다.” 


바다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빈 집. 우리는 아무도 없는 그곳에 인사를 하고 조용히 들어갔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그곳에서 잠시 쉬며 통영라이더 이승민 님이 만들어주는 드립 커피를 기다렸다. 그 사이 나는 ‘시를 쓰는 시간’을 시작했다. 준비한 노트와 펜을 사람들에게 전달해주었고, 그중에서 세 명에게 노트에 적혀있는 시를 읽어달라 부탁했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시는 좋았다. 때마침 집 앞에 있던 대나무들이 사악 사악 거리는 소리를 냈다.


“지금 여러분들이 받은 노트에는 각기 다른 시가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적어드린 시는 여러분들이 이어서 쓰셔야 하는 시입니다. 마치 자신이 시인이 됐다고 생각하고 한 번 써보세요.” 


사람들은 어렵다, 막막하다, 라는 말을 하면서도 금세 집중하여 자신이 받아 든 노트에 펜을 들고 무언가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준비된 커피를 서빙하는 건 내 몫이었다. 그때 참가자 중 한 분이 눈가를 훔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무엇이 잘못된 건가 싶어 마음이 찰랑했는데, 다행히 그 눈물은 무언가 잘못돼서 흘린 눈물이 아니었다. 그 순간의 벅차오른 감정이 가슴에 머무르지 못하고 터져 나온 것이었다.


촤-. 촤-.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사악 사악 대나무 잎들이 서로의 몸을 비비며 소리를 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 바다와 대나무 숲을 어루만지는 사이, 커피 향이 빈집을 채우기 시작했다. 작은 돌멩이 하나 햇살이 머무르지 않는 곳이 없었고, 툇마루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어느새 시인이 되었다. 커피가 모두 준비되었을 때, 나는 참가자들에게 각자 쓴 시를 읽어달라 부탁했다. 한 사람씩 차례대로 시를 낭독했다. 바다와 대나무 숲을 스치며 돌아다니던 바람은, 시를 낭독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실어 날랐다. 아마도 누군가의 시는 바다에 빠졌을 것이고, 누군가의 시는 대나무 숲에 숨어들었을 것이고, 누군가의 시는 민들레 홀씨를 건드렸을 것이다. 사람들의 시가 봄을 더 재촉하는 기분이 들었다. 




“저는 유명한 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자신에게 좋은 시라면 그 시가 제일 좋지 않을까요? 제가 선물해드린 노트에 앞으로 여러분들의 시로 채워 가보세요.” 


우리는 빈집을 빠져나와 다시 선착장으로 걸어나갔다.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자연을 그렇게 가까이한 게 오랜만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를 가까이한 게 아주 오랜만 인지도 모른다. 잊고 있던 감정이 그곳에서 풀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그 순간이 좋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시가 좋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른 참가자들 역시 그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면 좋겠다. 그 기억으로 통영을 추억하면 좋겠다. 그 추억으로 모두가 시인으로 살아가면 좋겠다.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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