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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서윤 Aug 27. 2017

우리에게는 딴짓이 필요하다

딴짓하는날 x 고작수요일 리뷰



그냥 하는 거예요


딴짓하는날을 만들게 된 건 아주 사소한 이유 때문이었다. 8월까지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되는 스페이스클라우드 크레딧이 있었고, 공간을 대관하기에도 크레딧은 충분했다. 우선 공간은 대관하기로 결정하고, 그 공간에 어떤 콘텐츠를 채울 것인가를 고민했다. 보통은 행사 주최 목적에 따라 공간을 대관하는데, 이번 경우에는 반대였다. 금방 주제를 정하지는 못했다. 딱히 모임을 해야 할 이유도 없었고, 마침 얼마 전에 큰 행사를 치룬뒤라 조금은 피곤했다. 사람들을 모집하는 것, 수익을 고민하는 것 등등 공간을 대관하고 나니 갑자기 부수적인 일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꼭 수익을 내야 하나?' 


공간 대관도 거의 무료로 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 기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즉, 누군가의 기대를 채우지 않아도 됐고, 공간 대관료를 내기 위해 끙끙거릴 필요도 없었다. 그 공간을 나 혼자 쓴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다양한 행사 기획을 했지만, 이번처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행사를 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무언가 주제를 정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에는 정말 많은 모임과 행사가 있다. 무언가를 배우거나, 네트워킹을 목적으로 하거나, 발표를 하는, 모두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은 행사들이다. 물론 모르는 사람들끼리 그런 배움 없이, 목적 없이 모임에 참석할 사람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나는 좀 '쉬는 모임'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딴짓하는날' 


8월 한 달은 내게 정말 바쁜 한 달이었다. 진행하는 프로젝트, 출판해야 할 원고, 강연 등, 검토해야 할 것들도 많았고 신경 써야 할 것들도 많았다. 틈틈이 쉬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머리를 온전히 식히는 날은 없었다. 자연스럽게 나만 이렇게 바쁜 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혹은 나보다 더 바쁜 삶을 살고 있다. 우리에게는 강제적으로라도 휴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휴식'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너무 아름다웠다. 그때 떠오른 단어가 바로 '딴짓'이었다. '딴짓'의 훌륭함을 주장할 필요는 없었다. '딴짓'은 '딴짓'이다. 그렇게 '딴짓하는날'이 탄생했다.


딴짓하는날 SNS 홍보 콘텐츠
딴짓하는날 SNS 홍보 콘텐츠



우선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했다. 오랜만에 사람들이 보고 싶었다. 모임을 빙자하여 지인들의 안부를 물어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오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일정을 보겠다는 사람, 그리고 일정이 맞지 않아 참석이 어렵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다들 이름이 재밌다는 반응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홍보를 마친 후에, 온오프믹스와 페이스북에 '딴짓하는날'을 알리기 시작했다. 관심을 보이는 페이스북 친구들이 있었다. 한 명, 두 명 신청하기 시작했다. 최소인원이 없는 모임이다 보니, 홍보를 하는 것에도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았다. 모객을 하면서 스트레스받지 않는 행사는 처음이었다. 


어느 날 지인이 나에게 물었다. 페이스북에서 '딴짓하는날'을 봤다고. 그런데 그 행사를 왜 하는 거냐고. 나는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그냥 하는 거예요."


행사를 앞두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온오프믹스에서 '딴짓하는날'을 보았는데 어떤 행사인지 궁금해서 연락했다는 것이다. 나는 취지 그대로를 설명해드렸다. '딴짓하는날'은 모두가 모여 딴짓도 하고 식사도 하는 행사입니다. 행사 기획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번 행사는 수익을 남기려고 하는 행사가 아니라 그냥 하는 행사입니다. 전화를 걸어주신 분은 나중에 이런 행사소식은 어디를 통해서 볼 수 있는지 궁금해하셨고, 나는 내 개인 페이스북을 알려드렸다. (진지하게 행사소식을 알리는 웹사이트를 운영할까 고민 중이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행사소식을 확인하고 싶다고 하셔서.) 




딴짓하는날


그리고 오늘. 상수동에 있는 고작수요일에서 '딴짓하는날'이 진행됐다. 나를 포함하여 총 9명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각자 테이블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보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생각을 하는 사람, 글을 쓰는 사람, 일을 하는 사람 등등, 모두 다양하게 자신의 시간을 보냈다. 2시간이라는 시간은 조용히 흘러갔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책을 읽고 참가자들에게 줄 손편지를 썼다. 누군가에게 손편지를 쓰는 게 오랜만이었는데, 평소에는 하지 않을 일이었다. 메시지를 보내는 게 더 빠른 시대에 손편지라니. 내 일상에서는 없을 손편지를 쓰는 일이 나에게는 첫 번째 딴짓이었다. 다행히 참가자가 너무 많지 않아 손편지를 쓰는 일은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최근 바쁘다는 이유로 못 읽었던 책을 읽었다. 


하나 둘 모여 딴짓중
참가자분들에게 줄 손편지



오후 12시 50분. 식사시간이 되기 전에 나는 참가자분들에게 찾아가 어떤 딴짓을 하는지 물었다. 딴짓하는날 덕분에 사놓고 사용하지 못한 색연필을 개시했다는 분이 1명, 딴짓하는날에 참석하기 위해서 새 색연필을 샀다는 분이 1명. 이 두 분은 그림을 그리고 컬러링을 하셨다. 어떤 분은 그저 이런저런 생각을 하셨다는 분도 계셨다. 그 옆의 분은 무언가 딴짓을 하려고 했으나 막상 딴짓을 하려니 어려워 책을 보다가 글을 쓰는 일을 번갈아가며 하셨다는 분도 계셨다. 모두 다양한 딴짓을 하다가 식사시간이 되어 한 자리에 모였다. 




고작수요일


우리는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기다리며 자기소개를 했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식사를 하는 시간이 어색할 법 하지만 다들 편하게 그 시간을 즐겨주셨다. 고작수요일에서는 런치메뉴 첫 개시일이라며 정성껏 식사를 준비해주셨는데, 예쁘게 플레이팅 된 음식들은 맛도 자극적이지 않고 산뜻했다. 좋은 재료를 사용한다는 직원분의 말이 음식에서 느껴졌다. 음식이 나올 때마다 우리는 모두 음식을 나눠먹으며 서로가 느끼는 맛을 공유했다. 음식은 이야기가 되었고,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져갔다. 


출처 = 메이타야 (http://maitaya.blog.me)
출처 = 메이타야 (http://maitaya.blog.me)
출처 = 메이타야 (http://maitaya.blog.me)
출처 = 메이타야 (http://maitaya.blog.me)
출처 = 메이타야 (http://maitaya.blog.me)


무화과가 들어간 샐러드는 그 맛이 산뜻해서 입맛을 돋우기에 좋았다. 감자튀김과 나쵸는 손이 심심할 때마다 집어먹기 좋았고, 연이어서 나오는 비트 샐러드는 우리가 모두 건강한 맛이라고 이야기했는데, 노란 비트와 빨간 비트가 어우러져 식탁에서 단연 돋보였다. 바게트 빵에 잼과 무화과가 어우러진 샌드위치는 달콤한 맛이 진하게 느껴졌다. 뒤이어 나온 토마토와 베이컨의 조합은 나오자마자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두었다. 두툼한 베이컨과 토마토를 알맞게 썰어 같이 먹으면 베이컨의 무거운 맛이 토마토의 상콤함으로 덮어지고, 씹는 그 느낌 또한 좋았다. 마지막으로 나온 샌드위치는 그 안에 들어간 고기와 야채의 조합이 부드러운 빵과 같이 어우러져 폭신하게 씹혔다. 이미 배가 불렀는데도 불구하고, 하나 더 집어 들어 먹고 싶을 정도였다. 다홍빛의 에이드는 입안에 넣자마자 상콤하게 입안을 가득 채웠고, 모두 한 번씩 에이드 맛을 칭찬했다. 직원분은 판매해도 될지 물었는데, 판매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내가 여태 마셔본 에이드 중에서 가장 끌리는 맛이었다.


** 음식 사진은 같이 행사에 참석해준 메이언니의 사진을 사용했다. 나 역시 음식 사진을 안 찍은 것은 아니었으나.. 내 사진은 전혀 안 맛있어 보이므로 모두 삭제. 




이게 바로 딴짓 아닌가요?


식사하며 딴짓중


오늘 참석해주신 분들은 나와 이미 알고 지내는 사이도 있었고, 모르는 분도 있었다. 페이스북을 통해서만 보던 페친도 있었고, 몇 년 전 독서모임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도 있었고, 한 달 전에 진행한 '통영함께떠나볼래요' 시즌2 참가자로 오셨던 분도 있었고, 1년 전 내가 진행한 행사에 참가자로 오신 분도 계셨고,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팀원들도 있었다. 처음 본 사이였지만, '딴짓하는날'이라는 주제 자체가 너무 좋아서 참가신청을 하셨다는 분도 있었고, 내가 만든 '모바일 여행가이드북 : 치앙마이' 전자책을 구매했던 독자분도 있었다. 우연히 내 이름을 검색했다가 행사가 있어 오셨다는 분도 있었다. 만남은 참 신기하다. 그래서 재밌다. 음식이 천천히 준비되는 동안 우리도 천천히 알아갔다. 어색함이 점점 즐거움으로 전환될 때, 아쉬운 마음을 갖고 행사를 종료했다. 참가자분 중에 한 분이 말했다. 


"모르는 사람들과 이렇게 식사를 같이 하는 것. 이게 바로 딴짓 아닌가요?" 


오늘은 딴짓하기에 너무 좋은 날이었고, 행사가 끝나고 밖으로 나왔을 때는 쨍한 햇살이 모두를 비추기 시작했다. 조금 전의 시간이 마치 오래전 일처럼 느껴졌다. 딴짓하기 좋은 날. 우리에게는 딴짓이 필요하다. 





고작수요일 정보


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수동 93-109 2.5층 (상수역 1번출구) 

전화 : 010-8574-4006

네이버지도 : http://naver.me/5fqY43kv


가격 

1. 고작수요일 대관 : 25,000 원 / 시간 

2. 고작수요일 런치 패키지 : 15,000 원 / 1인


참고사항 

1. 식사만 하실 예정이라면 대관없이 식사 예약만 하시고 이용 가능합니다. 

2. 대관예약은 스페이스클라우드를 통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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