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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서윤 Sep 10. 2017

소년은 시인에게 시가
시인은 소년에게 출발이 되었다

[브런치무비패스] 시인의 사랑 & The Poet and The Boy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으시는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출처 = 시인의 사랑


감독 : 김양희 

제작 : (주)미인픽쳐스 , 영화사진

배급 : CGV 아트하우스 

배우 : 양익준, 전혜진, 정가람, 원미연, 방은희, 이난, 김명진, 김종수, 백지원 등 


시인의 사랑 영화 정보 




시인의 현실 

제주도에 사는 한 시인이 있어. 시를 쓰고, 자신이 쓴 시를 사람들 앞에서 읽고, 평가를 받지. 하지만 그의 시는 늘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그가 하는 유일한 밥벌이는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쳐주는 일이야. 한 달에 30만 원을 벌며 사는 시인의 삶은 아주 평범해. 평범한 그 삶이 시인의 현실이지. 영감 없는 그 모든 것들 말이야. 


출처 = 시인의 사랑




소년의 현실

제주도에 사는 한 소년이 있어. 도넛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픈 아버지와 시장에서 돈을 버는 어머니를 둔 소년이지. 소년에게 현실은 가난이야.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든 제약과 한계가 그에게 현실이지.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제주도조차 그에게는 수많은 제약 중 하나야.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 그것의 소년의 현실이야.  


출처 = 시인의 사랑




시인과 소년 1

시인이 소년을 만나. 도넛을 사기 위해 긴 줄을 기다리다가 만나지. 하지만 이 만남은 사실 그들의 진짜 만남이 아니야. 도넛을 먹기 위해 들렀던 그곳에서, 현실을 마주하며 시를 쓰던 시인이 소년을 처음 만난 건 소년이 지나가는 노인을 보며 혼잣말을 할 때였어.


"할아버지도 고아구나." 


시인이 소년의 목소리를 듣고, 소년을 바라보았을 때, 그들의 첫 만남이 시작돼. 그리고 소년과의 만남 이후, 시인의 현실은 시가 되기 시작해. 평범하던 그의 일상이 시로 변하고, 시인은 비로소 진짜 시인이 돼. 소년은 불쑥 자신의 삶에 들어온 시인에게 의지하고, 마음의 문을 열어. 하지만 이들의 감정이 단순히 '사랑'이라는 표현으로 말하기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어.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동성애'로단정짓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지.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어. 저 두 사람의 감정은 무엇일까. 왜 저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하게 되었을까. 그러니까 흔히 이야기하는 남녀 간의 사랑과 무엇이 다를까. 시인이 느끼는 저 감정은, 소년이 느끼는 저 감정은 무엇일까. 사랑일까, 연민일까, 관심일까, 호기심일까...? 


시인은 남자여서 소년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교감할 수 있었기에, 시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바로 소년이었기에 사랑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에게 필요한 건, 자신을 평범한 일상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아내가 아니라, 평범함이 옳은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친구가 아니라,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상대가 필요했던 거라고 생각해.


소년은 시인에게 현실을 벗어나게 해주었고, 시인은 소년을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어. 하지만 그들의 현실은 그렇게 쉬이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어. 그들이 나누는 감정을 비웃고, 두려워하고, 멀리하려 했지. 그들의 감정을 부정하는 그들의 또 다른 현실이 그들을 다시 현실로 돌아가게 만들었어. 서로를 구원해줄 수 있으리라 믿었던 그 모든 것들이 사라졌지. 


출처 = 시인의 사랑




시인과 소년 2

소년과 함께 떠나고자 했던 시인. 그것이 소년을 구원하는 길이라 믿었던 시인은 필사적으로 소년에게 매달려. 하지만 소년은 시인과 함께 떠나지 않아. 소년 역시 시인이 필요했지만, 소년은 자신의 구원을 포기하고 시인이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가기를 바랐지. 그렇게 소년이 시인을 놓아줘. 그리고 시간이 흘러 우연히 소년과 시인이 재회했을 때, 시인은 다시 한번 소년에게 떠나라 이야기해. 갑갑한 이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기를 바랐지. 소년은 시인에게 같이 떠나자 이야기하지만, 이번엔 시인이 소년을 놓아줘. 


지나간 모든 것들을 간직하기 위해 그들은 헤어져. 소년은 시인에게 시가 되었고, 시인은 소년에게 새로운 출발이 되었어. 그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던 현실에서 벗어나, 서로가 상대방을 위해 만들어준 현실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들만의 이별을 해. 


그들은 서로 상대방이 가지고 있던 현실을 벗어나게 해줌으로써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나누고, 서로의 새로운 현실을 위해 자신의 이기심을 버리며 그들만의 이별을 해.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내 생각은 그들의 이별을 통해 비로소 바뀌었어. 내가 보아왔던 방식과는 조금 다를 뿐,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지. 맞아, 그건 사랑인 거야. 



** 해당 리뷰는 브런치무비패스를 통한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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