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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서윤 Oct 05. 2017

나 오늘 조금 설레었어

-우리 친구로 지낸 지 정말 오래되었는데



시간 되면 얼굴 한 번 보자는 말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늘 하는 말인데, 나는 그 말을 놓치지 않았고, 너 역시 빈 말이 아니었지. 그렇게 약속을 잡을 땐 아무렇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너를 만나기 하루 전부터 뭔가 긴장되더라. 알고 지낸 지도 꽤 오래되었는데, 새삼스레 설렐 것도 없는데, 그러니까 우리 너무 편한 사이인데, 왜 나는 살짝 설레었을까. 너를 만나기 전날 미리 어떤 옷을 입을지 고르고, 셔츠를 다리고, 신발을 준비했어. 너무 꾸미고 가면 우리 사이에 이상할 거 같고, 그렇다고 너무 편한 차림으로 가는 것도 아닌 거 같아서, 꼭 이런 날이 되면 입을 옷이 하나도 없는 옷장을 한참 들여다봤지. 자수무늬가 있는 하얀 셔츠와 찢어진 청바지를 고르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을 쓸 거라고 생각도 못했지만, 그게 최선이었어. 그런데 추워진 날씨에 걸쳐야 할 외투를 깜빡했지 뭐야. 그래서 너를 만나러 나오는 길에 몇 번이나 외투를 바꿔서 걸쳤는지 몰라. 결국 너와의 약속시간을 늦고야 말았지만, 그래도 아무 거나 입고 나가기 싫었는 걸. 


조금이라도 덜 늦으려고 조금은 뛰었어. 너를 만나고서도 조금 설레었던 건, 분명 내가 뛰었기 때문이겠지? 너와 식사를 하기 위해 들어간 곳은 사람이 많아 음식을 한참 기다려야 했지. 그래도 괜찮았어. 너의 근황을 좀 더 차분하게 들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소문난 그 집의 음식은 너무 짜서 우리 둘을 당황하게 만들었어. 그 음식을 우리는 컴플레인도 걸지 않고 먹었다가 결국 짠맛을 좀 진정시키려고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시켰지. 물론 커피로도 그 짠맛이 모두 가시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너는 이야기를 하고, 나는 듣고. 내가 이야기를 하고, 너는 듣고. 만나지 못한 사이의 일들을 하나하나 풀어내고, 만나지 못하는 동안 생길 일들을 하나하나 풀어내면서 그렇게 사람 많은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눴지. 잠시 이야기가 끊길 때면 조금 긴장되기도 했어.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머리를 굴리기도 했지. 그냥 자연스럽게 술술 이야기를 하던 때가 있었는데, 오늘은 유난히 내가 긴장한 것 같았어. 커피가 다 사라질 때까지 그렇게 내 얘기, 니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지. 영화라도 한 편 같이 보자고 할까? 이야기를 꺼내려다가 나는 꺼내지 못했어. 글쎄... 하지만 뒤돌아오는 길에 영화라도 한 편 같이 보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지. 


너는 새로 시작한 일을 이야기했어. 그 일이 잘되기를 진심으로 빌어. 그리고 떠나온 회사 이야기를 했지. 내가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도, 너는 내 이야기를 참 열심히 들어주었어. 힘들 땐 누군가의 귀가 참 필요해. 내 이야기를 들어줄 귀. 그리고 눈도 필요해. 나를 보면서 같이 위로해줄 눈. 입도 필요하지. 내가 상사 욕하면 같이 맞장구쳐주면 정말 힘이 나니까. 그게 참 힘이 되었어. 그게 벌써 2년 전이다. 맞아. 그러고 보니 우리 정말 오늘 오랜만에 만났네. 그동안 서로 바빠서 시간 내지도 못했는데, 우리 정말 오늘 오랜만에 얼굴 본 거였어. 오늘 나는 너의 귀가 되고, 눈이 되고, 입이 되어주기로 너를 만나기 전부터 결심했는데 그 역할을 잘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네가 그랬던 것처럼 너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했어. 


그런데 말이야.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네가 예전에도 그렇게 내 눈을 잘 못 마주쳤었나? 오늘 나는 네 눈을 조금 더 또렷이 보고 싶었는데, 너의 눈은 아주 많이 나의 눈을 제대로 못 쳐다본다는 느낌이 들었어. 너도 나를 만나기 전에 설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 우리 친구로 지낸 지 정말 오래되었는데, 네가 의지가 되던 순간이 종종 있었어.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아무렇지 않게 또 웃으며 인사하고, 잘 가라는 인사를 던지고 내가 뒤돌아섰을 때, 나는 순간 너무 빨리 뒤돌아섰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조금 더 네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봐 둘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 


아는 선배한테 오랜만에 연락했다가, 너와 나중에 같이 보자는 메시지를 받았어. 내가 오늘 너와 만났다고 하니까, 선배가 그러더라. 네가 나 없는 곳에서 내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어떤 이야기를 했을지 궁금했지만 더 묻지 않았어. 오늘 말이야. 나 조금 설레었어. 다음에 언제 또 볼지 모르지만, 네가 하는 일을 언제나 응원할게. 다음에 누군가의 귀가, 누군가의 눈이, 누군가의 입이 필요할 때 연락해. 들어주고, 봐주고, 네가 하는 말에 맞장구쳐줄게. 다음에 또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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